자동차 역사에서 V12 엔진은 단순한 기술 사양이 아니었다. 부드럽고 정숙하며 압도적인 그 감각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세련된 이동 방식이라는 인식을 수십 년간 뒷받침해 왔다. 메르세데스-마이바흐가 이번 S클래스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유럽 시장에서 그 V12를 라인업에서 제외하기로 한 결정은, 그래서 단순한 엔진 교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메르세데스-마이바흐는 신형 S 680의 유럽 사양에서 6.0리터 V12 트윈터보 엔진을 빼기로 했다. 유럽연합의 배출가스 규제가 강화되면서 이 엔진을 규제 기준에 맞추는 데 드는 비용이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른 것이다. 실제로 2024년 독일 시장에서 S 680의 판매 비중은 전체의 14%에 그쳤다. 상징적 가치는 컸지만, 시장에서의 무게는 그만큼 크지 않았던 셈이다.

벤틀리 역시 W12 엔진을 최근 단종시킨 마당이어서, 이제 유럽에서 V12 리무진을 고집하는 고객은 사실상 롤스로이스 쇼룸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게 됐다. 한 시대의 막이 조용히 내려지고 있다는 표현이 결코 과하지 않다. V12는 미국과 중동 등 일부 시장에서는 계속 판매되며, 630마력과 최대토크 900Nm의 성능을 유지한다.

유럽 라인업의 최상위 자리는 개선된 4.0리터 V8 엔진이 맡는다. 마일드 하이브리드 기술이 더해진 이 엔진은 612마력, 850Nm를 발휘하며 여전히 S 680 배지를 단다. 숫자만 놓고 보면 손색이 없지만, 12기통이 주는 묵직하고 매끈한 감각을 8기통으로 온전히 대체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선뜻 답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수치가 아닌 감성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기술적 변화의 핵심은 메르세데스-벤츠 오퍼레이팅 시스템, MB.OS의 도입이다. 마이바흐 모델에 처음 탑재되는 이 플랫폼은 4세대 MBUX와 결합해 대형 슈퍼스크린을 전면에 배치했다. 처음에는 마이바흐 특유의 단아하고 절제된 실내와 어울릴까 싶었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마이바흐의 화려함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인상을 준다. 후석 승객을 위한 13.1인치 디스플레이 두 개도 새롭게 설계된 리모컨과 함께 제공된다.

이번 모델에서 가장 인상적인 기술 변화를 하나 꼽으라면, 필자는 주저 없이 AI 어시스턴트를 선택하겠다. MBUX 버추얼 어시스턴트는 OpenAI의 ChatGPT 4o와 구글 제미나이를 결합한 생성형 AI 기반으로 작동한다. 자연스러운 대화는 물론, 복합적인 명령까지 처리할 수 있어 기존의 음성 명령 시스템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자동차가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디지털 비서의 역할까지 흡수하는 흐름이 마이바흐에도 본격적으로 상륙한 것이다.

주행 안락감을 위한 기술도 한 단계 진화했다. 신형 AIRMATIC 서스펜션은 차량 간 통신을 통해 전방의 노면 상태를 미리 파악하고, 차량이 요철에 닿기 전에 이미 감쇠력을 조정한다. 후석에서 신문을 읽거나 업무를 보는 오너 드리븐 고객에게 이 기술이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닐지는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는다.

외관에서 가장 도드라진 변화는 프론트 그릴이다. 기존 대비 20% 확대됐으며, 발광 프레임과 조명이 들어오는 'Maybach' 레터링이 더해졌다. C필러의 마이바흐 로고와 후드 위 별 엠블럼에도 조명 적용이 가능하다. 브랜드 정체성을 차체 곳곳에 각인하려는 최근 럭셔리 업계의 흐름을 충실히 따른 결과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지점이지만, 밤거리에서 마이바흐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브랜드 전략으로서는 분명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20인치·21인치 단조 휠에는 주행 중에도 항상 수직을 유지하는 '플로팅 스타' 센터캡이 적용됐다. 볼베어링 구조를 활용한 이 디테일은 여타 브랜드에도 사례가 있지만, 마이바흐의 대형 그릴과 함께할 때 그 시각적 존재감은 한층 강렬해진다.

파워트레인 다양성도 넓어졌다. S 580은 537마력 V8 엔진에 통합형 스타터 제너레이터가 더하는 23마력 부스트가 추가되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인 S 580 e는 직렬 6기통 가솔린 엔진 기반으로 시스템 출력 585마력, 750Nm를 발휘하며 전기만으로 최대 92~98km 주행이 가능하다.

실내에서는 브랜드 최초로 비건 소재 옵션이 등장한다. 리넨과 재활용 폴리에스터를 혼방한 'Mirville' 텍스타일과 합성 가죽 ARTICO를 조합한 구성으로, 지속가능성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마이바흐 오더 시트에도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변화다. 물론 전통적인 럭셔리를 원하는 고객을 위한 '마누팍투어 메이드 투 메저' 프로그램도 건재하다. 수백 가지 도장 색상과 사실상 무제한에 가까운 가죽 조합이 기다리고 있다. 로베 & 베르킹의 은도금 샴페인 플루트와 10리터 냉장고 역시 후석 옵션의 자리를 지킨다.

신형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클래스는 2026년 3월 25일부터 유럽 주요 시장에서 주문이 가능하며, 독일 진틀핑겐 56공장에서의 양산은 4월부터 시작된다. 공식 가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으나, 기존과 마찬가지로 최소 18만 유로, 한화로 약 3억 원 이상에서 시작할 것으로 전망된다.

V12 엔진의 퇴장과 생성형 AI의 등장. 이 두 가지 사건이 같은 모델에서 동시에 일어났다는 사실은, 럭셔리 자동차 산업이 지금 어떤 갈림길에 서 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마이바흐가 선택한 방향이 옳은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그러나 변화를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마이바흐다움을 잃지 않으려 한 이번 페이스리프트의 방향성은 납득할 만하다.

Copyright © 구름을달리다.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 학습 이용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