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해킹 사태로 촉발된 위약금 면제 조치가 번호이동 시장에 미친 영향과 구조적 문제를 살펴봅니다.

KT가 해킹 사고 보상 차원에서 위약금 면제에 나서자 번호이동 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다. 면제 조치가 시작된 2025년 12월31일부터 엿새 만에 약 8만명이 KT를 떠났다. SK텔레콤(SKT)과 LG유플러스는 이 기간을 기회로 삼아 유심 교체 번호이동 장려금을 과거 대비 2배 이상 끌어올리며 가입자 확보에 나섰다.
수세에 몰린 KT 역시 기기변경 보조금을 상향하며 이탈 방어에 나서는 모양새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기회'지만 현장 곳곳에서 혼선도 빚어지고 있다.
SKT·LGU+ "KT 고객 잡아라"…장려금 2배
KT 위약금 면제 발표 직후 온라인 커뮤니티와 이른바 '성지'로 불리는 일부 판매점에는 KT 가입자를 겨냥한 마케팅 게시물이 쏟아졌다.
한 온라인 판매점에서는 "KT 보상안 위약금 면제! 쓰던 폰 그대로 통신사 변경, 유심 이동 최대 40만원"이라는 문구를 내걸었다. 가족 동반 시 2명 80만원, 3명 120만원, 4명 160만원까지 현금을 지급한다는 안내도 함께 올라왔다. 새 휴대폰을 구매하지 않고 기존 폰에 유심만 교체해도 이 정도 금액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대리점에서는 유심만 이동해 SKT로 개통한 고객에게 1년 약정과 결합상품 가입을 조건으로 45만원의 페이백을 지급한 사례도 확인됐다.
LG유플러스 역시 공격적 마케팅에 나섰다. '너겟' 등 온라인 요금제 가입 시 첫 달 요금을 전액 환급해주거나 고가 요금제 이용 시 기기값 지원 외에 수십만원의 현금성 페이백을 지급하고 있다. 갤럭시 S25 기본 모델이 무료를 넘어 현금까지 얹어주는 수준으로 풀리고, 아이폰17도 사실상 무료 개통이 가능할 정도로 보조금이 올랐다.
일부 판매점에서는 "해킹 사태를 겪은 KT를 떠나라", "위약금 면제 받고 LG유플러스로 이동하세요" 등 경쟁사를 겨냥한 자극적인 문구도 등장했다. 이에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위약금 면제·해킹 이슈를 이용한 공포 마케팅, 과도한 지원금 홍보 등에 대해 시장 질서 교란 소지가 있다며 통신사들에 주의를 요청한 상태다.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관계자는 "유심만 교체하는 번호이동 장려금이 평소 10만~15만원 수준이었는데 지난해 SKT 해킹 사태 이후 30만원까지 올랐고 이번 KT 사태로 50만원 선까지 치솟았다"며 "장려금이 이 정도로 오른 건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런 혜택은 주로 온라인 채널이나 일부 성지 매장에 한정된다. 일반 오프라인 대리점에서는 이 정도 금액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KT도 맞불…보조금 상향
이탈이 가속화되자 KT 역시 대응에 나섰다. 업계에 따르면 KT는 이달 3일 대부분의 휴대폰에 대해 번호이동 판매장려금을 5만~15만원가량 상향했고, 이튿날에는 월 6만1000원대 중간 요금제에 대한 공시지원금도 업계 최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그 결과 갤럭시 S25에는 100만원에 가까운 지원금이 붙었고, 아이폰17과 갤럭시Z플립7 일부 모델은 사실상 '공짜폰'으로 풀렸다.
온라인 채널에서도 가입자 이탈 방어가 한창이다. 최근 KT 공식 앱을 통해 기기변경을 한 이용자에 따르면 문의 직후 'KT 공식 인증 대리점'을 자처한 상담원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어 곧바로 'KT 단말기 지원센터' 명의의 두 번째 전화가 걸려왔다.
상담원은 "KT에서 다른 통신사로 이동하지 마시라고 기기만 변경해드리는 것"이라며 "대리점에서 판매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약정 기간이 남아 있어도 위약금은 전액 면제된다"며 또 다른 최신 휴대폰으로의 교체를 권유했다. 요금제 비교와 혜택 설명이 이어졌고, 상담 말미에는 "KT만 2년 더 써주시면 된다"며 24개월 재약정 조건이 붙었다.
별도의 통화에서 또 다른 상담원은 "보상 나오기 전부터 저희는 위약금을 면제해드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위약금 면제는 이번 해킹 사고에 따른 한시적 보상 조치이지만 이같은 안내는 마치 기존부터 제공해온 상시 혜택인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이에 일부 고객들 사이에서는 기존 고객과 신규 고객 간의 형평성 문제에 대해 불만을 표했다. 6일 서울 강남구의 한 영업점에서 번호이동을 마친 A씨는 "오히려 한 통신사만 이용하면 손해인 것 같다"며 "KT가 기존 고객 유지에 힘을 쏟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번호이동 쪽에 더 큰 혜택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통 현장도 혼선…13일 이후 냉각 전망
유통 현장에서는 혼선도 빚어지고 있다. 일부 영업점에서는 단기 가입 고객의 해지 시 판매장려금 환수 문제를 두고 본사와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불만이 나온다. 위약금은 면제되지만 영업점이 손해를 떠안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번호이동을 포기하는 이용자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번호이동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산 장애도 발생했다. 이달 5~6일 이틀 연속 번호이동 처리 과정에서 병목 현상이 빚어졌다. 이에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는 사전동의 인증 절차를 한시적으로 생략하는 비상조치를 시행했다. KT 위약금 면제 조치가 시작된 지난달 31일 이후 엿새 동안 KT에서 빠져나간 이용자는 약 8만명으로 집계됐다.
업계에서는 KT 위약금 면제 기간이 종료되는 13일까지 통신사들간의 번호이동 경쟁이 지속될 것으로 관측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경쟁도 KT 위약금 면제가 끝나는 13일 이후에는 다시 냉각될 것"이라며 "성지나 일부 대리점에서 제시하는 고액 페이백은 통신사가 아닌 판매점이 자체적으로 내거는 '이면계약' 성격인 경우가 많아 주의가 필요하다. 판매자가 부도나 잠적할 경우 약속된 금액을 받지 못하는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이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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