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의 2밀리미터 렌즈]
한국 사회에서 과학은 늘 경제 성장의 도구나 영웅 서사로만 소비된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R&D 예산이 요동치고, 관료주의가 단기 성과를 쥐어짜는 동안 기초과학은 메말라간다. 과학은 결코 동전만 넣으면 뚝딱 결과가 나오는 자판기가 아니다.
새로운 연재 [김우재의 2밀리미터 렌즈]를 통해 이 척박한 지식 생태계의 민낯을 마주한다. 매일 피펫을 쥐는 보통과학자의 냉철한 시선으로 영혼 없는 정책과 사회 시스템을 해부할 것이다. 자본과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과학 본연의 야성을 회복하는 것. 과학이 닫힌 실험실을 넘어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는 무기가 되는 과정을 증명해 보이고자 한다.
어설픈 위로나 타협 없는 과학과 사회의 이야기. 시작한다.
-서구 상업 학술지 체계(특히 Nature·Science 계열)는 연구자는 무료로 노동하고 출판사는 논문 게재료(APC)로 수익을 얻는 ‘지식 착취 구조’라는 비판이다.
- 중국과학원(CAS)의 고가 오픈액세스 저널 게재료 지원 중단은 단순 예산 문제가 아니라 서구 학술 패권에 대한 전략적 보이콧이다.
- 따라서 과학의 경쟁은 연구 성과만이 아니라 “누가 학술지와 지식 유통망을 지배하느냐”라는 지식 패권 경쟁이며, 한국은 그 구조에서 돈 내는 하청 연구국으로 남아 있다.
지식의 생산과 거대 출판 카르텔
생물학적 진화처럼 과학 생태계 역시 숙주와 기생충이 벌이는 군비경쟁의 기록이다. 수많은 '보통 과학자'들이 축적한 데이터는 동료 평가를 거쳐 인류 공동의 자산이 되지만, 21세기 학술 생태계에는 극도로 탐욕스러운 돌연변이가 출현했다.
바로 연구자들의 피땀 어린 데이터를 착취하는 '거대 상업 출판 카르텔'이다. 과학자들은 세금으로 연구하고 무급으로 심사하지만, 정작 그 지식을 세상에 내놓으려면 출판사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바쳐야 하는 기괴한 착취 구조가 완성되었다.
최근 이 약탈적 생태계의 지각을 뒤흔드는 파열음이 발생했다. 약 5만 명의 연구 인력을 거느린 세계 최대 지식 생산 공장, 중국과학원(CAS)이 서구 상업 학술지에 대한 전면적인 '보이콧'을 선언한 것이다(주- Major Chinese funder to stop paying fees for 30 pricey open-access journals. AAAS Artic. Group (2026) doi:10.1126/science.zobbgx9.).
이는 단순한 예산 감축이 아닌, 글로벌 학술 패권을 쥐고 흔드는 서구 제국주의를 향한 실용적이고 폭력적인 선전포고다.

오픈 액세스(OA)의 변질과 악랄한 통행세
본래 '오픈 액세스(OA)'의 철학은 숭고했다. 구독료 장벽을 허물어 누구나 평등하게 지식에 접근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상위 포식자인 거대 출판사들은 구독료를 없애는 대신, 연구자에게 논문 게재료(APC)를 전가하는 방향으로 진화를 비틀었다(주- 디지털 시대 오픈액세스 운동의 역사와 출판혁명에 대한 상세 내용은 필자의 이전 칼럼들 참조. 과학지식의 공유; [김우재의 보통과학자] 과학출판의 급진적 변화를 위해; [김우재의 보통과학자] 디지털 시대의 과학출판혁명; [김우재의 보통과학자] 커먼즈로서의 과학지식 ).
현재 세계 학술지의 평균 APC는 2,000달러 수준이지만, 네이처(Nature), 사이언스(Science), 셀(Cell) 등 이른바 'NSC' 자매지들은 5,000달러(약 670만 원) 이상을 뜯어간다. 심지어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는 최근 출판료를 약 2,400만 원(1만 2,690달러)으로 올렸다.
"오픈 액세스는 무료"라는 환상 이면에서 연구자들은 천문학적인 지식 통행세를 강탈당하고 있으며, 성과주의를 숙주 삼은 '메가 저널(Mega Journal)'들은 질 낮은 논문 장사로 과학의 신뢰를 밑바닥부터 갉아먹고 있다.
서구 학술 권력의 급소를 찌른 중국과학원의 결단
이 병든 생태계 한복판에서, 중국과학원은 압도적인 자본과 데이터 장악력을 무기로 철퇴를 내렸다. 올해(2026년)부터 게재료가 5,000달러를 넘는 고비용 OA 저널에 대해 연구비 지원을 전면 중단하기로 한 것이다.
- 고비용 OA 저널 (34개): Nature Communications, Science Advances 등 APC가 5,000달러를 초과하는 저널. 투고료 지원 원천 차단.
- 학술 예경(Warning) 저널 (120여 개): 논문 공장(Paper mill) 역할을 하는 질 낮은 저널들. 연구비 정산 금지 및 연구 업적 평가 원천 배제.
단순히 예산 지원을 끊는 것을 넘어, 수량 채우기에 급급해 메가 저널에 연구비를 낭비하는 기회주의적 행태를 봉쇄하고, 콧대 높은 서구 저널들의 수익 구조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 조치다.

제국의 설계도: 과학기술 학술지 탁월 행동 계획(CJEAP)
이러한 도발(?)은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10여 년간 치밀하게 준비해 온 '과학 출판의 탈서구화' 마스터플랜의 연장선이다.
중국은 막대한 국가 예산으로 생산한 최상급 데이터가 서구 출판사의 배만 불리는 종속 구조를 '국가 안보 위기'로 인식하고, 2019년 '중국 과학기술 학술지 탁월 행동 계획(CJEAP)'을 출범시켰다(주- Li, C., Li, Y. & Ding, Z. Development of Sci‐Tech Journals in China Stimulated by the China Sci‐Tech Journal Excellence Action Plan. Learn. Publ. 38, (2025).).
1단계(2019-2023년)에서 중국은 거대 자본을 투입하며 서구 출판사들과 손을 잡았다. 적의 유통망과 노하우를 흡수하는 완벽한 '트로이 목마' 전략이었다. 그 결과 단기간에 수십 개의 중국 저널이 글로벌 상위 10%에 진입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내부에 견고한 생태계가 구축된 2024년, 2단계의 시작과 함께 중국은 본색을 드러냈다. 자생력을 갖추었으니, 더 이상 서구에 지식 통행세를 헌납할 이유가 소멸한 것이다.
지식인으로서의 과학자와 생태계의 복원
중국의 행보 이면에는 "저널이 강해야 학문이 강해진다"는 철학이 있다. 반면 한국 과학계의 현실은 무기력하다.
여전히 NSC 브랜드와 얄팍한 임팩트 팩터(IF) 수치에 얽매여, 승진에 목이 마른 보통 과학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천문학적인 게재료를 바치고 정부는 이를 맹목적으로 대납하는 '호구' 노릇을 자처한다.
R&D 예산을 '미래를 위한 씨앗'이라 부르면서, 그 열매를 고스란히 해외 출판 카르텔 금고로 직행시키는 식민지적 부조리가 일상화되었다.
중국의 실용적인 보이콧은 우리에게 뼈아픈 경고다. 지식은 자본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되며, 데이터를 생산한 연구자와 재원을 부담한 시민의 것이어야 한다. 한국 과학계가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특정 엘리트 중심의 낡은 거버넌스를 해체해야 한다.
일상의 보통 과학자들이 스스로를 '지식인'으로 자각하고, 학술 생태계에 기생하는 카르텔의 촉수를 끊어내지 못한다면 한국 과학의 미래는 영원히 값싼 하청 기지로 남을 것이다.
※ 초파리 유전학자, 김우재 중국 하얼빈공대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현재 하얼빈공대에서 초파리와 함께 꿀벌의 행동을 신경회로와 유전자 관점에서 연구한다. 본업인 연구에 매진하고 싶으나, 가끔 과학과 사회에 대한 글을 쓰는 취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