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밤 뒷덜미 서늘하고 싶다면.. 여성 소설가 3인이 추천하는 공포소설 3편[플랫]

플랫팀 여성 서사 아카이브 twitter.com/flatflat38 2022. 8. 5.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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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최고기온 30도가 넘어가는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날씨뿐 아니라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도 푹푹 찌긴 마찬가지다. 코로나19의 재확산, 어려운 경제상황 등…. 잠시나마 뒷덜미를 서늘하게, 등줄기를 오싹하게 해줄 공포소설을 여성 작가들에게 추천받았다.

<저주토끼>가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에 오르며 해외에도 ‘K공포’ 바람을 불게 한 정보라, 여성의 일상 속 공포를 서늘하게 그려낸 소설집 <빈 쇼핑백에 들어있는 것>을 펴낸 이종산, 호러소설 창작그룹 ‘괴이학회’의 창립멤버로 최근 여성 호러 단편선 <우리가 다른 귀신을 불러오나니>에서 고부관계 갈등을 소재로 섬뜩한 공포를 선보인 남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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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추천해준 작품들이라면 믿을 만하지 않을까? 세 명의 작가들은 공포와 불안을 일상처럼 껴안고 살아가는 여성과 약자들이 느끼는 공포를 잘 드러낸 소설을 써왔고, 그들에게 영감을 선사한 작품들을 추천했다. 공포소설은 항상 현실에서 출발한다. 가장 공포스러운 삶의 진실은 폭염같이 숨막히는 현실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일 것이다. (이영경 기자)

호러에 추리 열 스푼, 이러니 홀짝 빠질 수밖에
괴담의 테이프
미쓰다 신조 지음·현정수 옮김│북로드│320쪽│1만3800원
정보라 소설가가 추천한 공포소설 <괴담의 테이프>

책을 추천하기 전에 미리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 책을 읽은 당신의 등 뒤에도…” 이런 종류의 호러를 싫어하시는 분들께는 권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괴담의 테이프>는 실제 일어난 일이라고 작품에서 주장하는(!) 여러 가지 괴이한 이야기들을 체험자가 각자 직접 녹음하거나 들려주고, 작가 미쓰다 신조와 그의 편집자가 사연들을 정리해서 책으로 엮는 과정이라는 형식으로 꾸며져 있다. 그리고 다들 예상하시겠지만 편집자는 처음에는 작업을 매우 의욕적으로 시작하지만 책이 진행될수록 자기 자신의 주변에서도 기이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눈치채고 불안해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책 전체의 설정이고, 그 안에 담긴 (실제 체험자가 녹음했다고 하는) 여섯 편의 괴담은 주인공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고 이야기도 전부 다르다. 처음 혼자 살기 시작한 여성이 출퇴근길에 언제나 마주치는 사람에게 괴이한 스토킹을 당한다거나, 친구의 친구들과 함께 등산을 가게 되었는데 갑자기 당일에 친구가 오지 않아서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죽은 자의 영혼이 돌아온다고 하는 수상한 산에 오르게 되었다거나, 돈을 받고 남의 빈집을 지켜주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는데 무서운 일들이 일어난다거나…. 이렇게 공포영화에서 한 번쯤은 보았을 법한 소재와 설정이 여섯 편의 짧은 이야기에 하나씩 나타난다. 독자는 여섯 개의 이야기를 순서에 상관없이 원하는 대로 골라 읽을 수 있고 서장, 종장, 막간 등 작가가 직접 나서는 부분은 건너뛰어도 된다. 휴가 기간에 마음 편하게 즐기기에 딱 알맞은 형식이다.

미쓰다 신조의 장기는 괴기담 안에 추리소설의 요소를 집어넣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빈집을 지키던 밤’의 주인공은 집 지키기 아르바이트를 맡긴 부부에게서 서로 모순되는 이야기를 듣는다. 아내의 말과 남편의 말이 서로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이상한 일이 일어나면 과연 부부 중에서 어느 쪽이 거짓말을 했는지부터 의심하게 된다. ‘우연히 모인 네 사람’ 편에서는 아예 영국 추리작가 애거사 크리스티가 자세히 언급된다. ‘우연히 모인 네 사람’의 네 사람을 누가 무슨 목적으로 모이게 했는가, 라는 수수께끼를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점은 추리소설 같은데, 그 수수께끼의 중심에는 범죄사건이나 현실적인 원한이 아니라 초자연적 요소나 무속에 대한 믿음이 있다. 이런 식이다. 어째서 주인공이 이런 사건에 휘말렸는가, 누가 무슨 의도로 끌어들였는가, 하는 수수께끼로 독자를 끌어들인 뒤에 사실이라고도 아니라고도 단언할 수 없는 괴기한 설명을 제시하는데 그 괴기한 설명 외에는 달리 현실적으로 해석할 방법이 없다. 괴기한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이런 오싹한 결말이 아주 매력적일 것이다.

덧붙이자면 작가 입장에서 나에게 가장 무서웠던 부분은 책을 펼치자마자 나오는 출판사 담당자와의 대화였다. “재교 교정지가 돌아온 뒤에…이 책은 내지 않는 편이 좋겠다, 라는 이야기였습니다.” 2교까지 봤는데! 책을 안 내겠다니! 정말 무서운 이야기였다…. (정보라 소설가)

성범죄 피해 여성의 복수···들려줄게, 이 공포를
머리 달린 여자
서계수 | 브릿G 게재
이종산 소설가가 추천한 공포소설 <머리 달린 여자>

얼마 전, 북토크에 가서 자신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의외로 귀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보다는 현실적인 공포나 불안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중에서 인상적이었던 답변은 한밤중에 누군가가 따라오는 상황이 가장 무섭다는 이야기였다. 한 사람만의 답변이 아니었다. 북토크에 온 참여자들 다수가 여성이었는데, 대부분이 그 같은 두려움에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나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는 귀신을 가장 무서워하지만, 살면서 귀신을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나 밤중에 누군가가 쫓아오는 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몰라 잔뜩 긴장하는 일은 우리의 일상에서 너무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재밌는 호러소설은 너무도 많지만, 나와 내 주변의 여성들이 매일 느끼는 공포감과 가장 가깝게 연결되었다고 느껴지는 공포소설은 역시 온라인 소설 플랫폼 브릿G에 올라와 있는 서계수의 단편소설 <머리 달린 여자>다.

<머리 달린 여자>는 공포의 주체를 반전시킨다. 오랫동안, 그리고 지금도 두려워하는 쪽은 여성이다. 여성들은 밤중에 낯선 사람이 쫓아올까 봐,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 집 앞에서 기다릴까 봐,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거나 섹스를 할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모습이 카메라에 찍혀 그 영상이 어딘가에 돌아다닐까 봐, 더 심하게는 강간을 당하거나 납치를 당하거나 살해당할까 봐 불안해한다.

하지만 <머리 달린 여자>에서 불안에 떠는 쪽은 남성이 된다. 불특정 다수의 모든 남성이 아니라 여성에게 약을 먹이고 포르노를 촬영해서 유통하는 남성들, 그런 영상을 소비하는 남성들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느 날부터 기이한 현상을 겪는다. 사람들의 머리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사람만이 아니라 반려견의 머리도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은 인터넷에 자신이 겪는 일에 대해 글을 올리고, 자신과 같은 일을 겪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들이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는 순간, 그들은 자신이 죽음으로 몰고 간 여자를 만나고 극심한 공포에 휩싸인다. 공포를 느끼는 쪽과 공포를 느끼게 하는 쪽이 뒤바뀌는 결정적 순간이다.

인터넷 방송 중에 캠을 켜놓고 잠들었는데 밤새 어떤 남자가 몰래 방에 들어왔던 것이 찍혀 경찰에 신고를 했던 여성, 혼자 여행을 갔다가 살해당한 여성, 택시에 탔다가 기사가 자신이 모르는 길로 가자 순간 공포를 느껴 차에서 뛰어내린 여성, 실종된 여성, 헤어진 연인에게 살해된 여성. 그리고 최근 대학 캠퍼스에서 일어난 일까지. 이런 일들이 끝도 없이 계속 일어난다. 마치 너희가 언제고 그런 일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듯이.

그러나 <머리 달린 여자>는 그런 두려움에 지지 않는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돌아와서 자신을 죽인 자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여성이 된다. 우리 세대의 어머니들은 딸들에게 불편한 상황에서 부드럽게 거절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 방법이 얼마나 쓸모없는지. 우리에게는 사랑받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무서운 여자가 되는 쪽을 선택한다. <머리 달린 여자> 속의 그 여자처럼. (이종산 소설가)

불가해한 ‘악의 마음’···유령은 어쩌면 나
제비뽑기
셜리 잭슨 지음·김시현 옮김 | 엘릭시르 | 436쪽 | 1만2800원
남유하 소설가 가 추천한 공포소설 <제비 뽑기>

“6월27일 아침은 날이 맑고 햇볕이 눈부시게 내리쬐었으며 완연한 여름날답게 싱그러운 온기로 가득했다.”

소설집 <제비뽑기>의 표제작인 ‘제비뽑기’(1948)의 첫 문장이다. 이렇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분위기로 시작한 이야기는 진행될수록 독자의 고개를 갸웃하게 하고, 입을 벌어지게 하다가, 결말에선 서늘한 한 방을 선사한다.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의 온도 차를 보여주고 싶지만 스포일러가 되니 꾹 참겠다. 그래도 한마디는 해야겠다.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나만 아니면 돼’라는 인간의 본능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해당되기에 더욱 불편하게 다가온다는 것.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제비뽑기’지만 25편이나 되는 다른 작품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대부분 짤막한 이야기고 어떤 작품들은 5~6페이지 분량이다.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 아이스크림을 골라 먹듯 끌리는 제목을 골라 읽으면 된다. 셜리 잭슨에 처음 도전하는 사람이라면 ‘유령 신랑’ ‘소금기둥’ ‘치아’는 빼놓지 말자. 이 단편들은 외부 세계와 정신적으로 고립된 여성의 불안감을 잘 나타내고 있다. 수많은 공포 소설을 읽었지만, 작품을 읽으면서 나까지 불안해져서 현기증이 난 적은 이 책이 처음이었다. 불안한 심리 묘사는 셜리 잭슨의 장기다. 그의 삶 자체가 조금만 건드려도 깨지기 쉬운 얇은 유리 같았기 때문일까.

이 단편집의 또 다른 재미는 곳곳에 등장하는 제임스 해리스를 찾는 것이다. 푸른 양복을 입은 제임스 해리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인물이다. 그는 소설 속 인물들과 느슨하게 혹은 촘촘하게 엮이며 불안을 더하는데, 불안은 쉽게 공포로 변질된다.

‘유령 신랑’에서 제임스 해리스는 주인공의 결혼 상대이지만 끝내 등장하지 않는다. 결혼식 날 사라져버린 그를 찾아다니며 점점 붕괴해 가는 주인공을 지켜보다 보면 독자들도 식은땀을 흘리게 된다. ‘치아’에서도 마찬가지다. 클라라는 뉴욕에 있는 치과에 가는 길에 푸른 양복을 입은 짐이라는 남자를 만난다. 그는 클라라를 유혹하는 듯 머나먼 곳으로의 여행에 대해 말한다. ‘마녀’도 빼놓을 수 없다. 아이에게 기괴한 농담을 하는 할아버지는 푸른 양복을 입고 있다. 우리는 그가 제임스 해리스라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고, 그가 한 말들은 농담을 넘어 섬뜩하게 다가온다.

수록된 작품들은 분량이 짧다. 휴가철, 바다에서 수영하다가 선베드에서 쉴 때 모히토 한 잔을 마시면서 볼 수 있는 분량이다. 그러나 빨리 읽어서는 좀처럼 재미를 느낄 수 없다. 천천히 행간을 곱씹으며 읽을 때 작가가 지뢰처럼 숨겨놓은 공포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제비뽑기’에선 귀신이나 유령이 공포를 유발하지는 않는다. 셜리 잭슨이 천착한 주제는 일상서 마주치는 평범한 악이다. 우리는 종종 “사람이 무섭지, 귀신이 무서우냐?”는 말을 한다. 그의 작품 속에서도 진정 무서운 건 불가해한 인간의 악의이다. 유령은 우리 마음속에 있다. (남유하 소설가)

이영경 기자 samemind@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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