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472> 이순신 장군이 노량서 전사한 기록 남긴 조선왕조실록

조해훈 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 원장 2025. 5. 27.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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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총병 등자룡과 통제사 이순신이 전사하였다
(陣亡副總兵鄧子龍, 統制使李舜臣·진망부총병등자룡, 통제사이순신)

네 제독이 각 아문에 첩문을 당보(塘報)하였다. 진 도독(陳都督)이 【진인(陳璘)】 다음과 같이 당보하였다. “본부가 여러 장수들을 통솔하고 노량(露梁)에 당도하여 이순신이 포위당한 것을 보고 본부가 직접 병정을 거느리고 수백 명의 적을 쳐 죽이자 적이 후퇴하기 시작하였다.… 부총병 등자룡과 통제사 이순신이 전사하였다.”

四提督塘報各衙門帖. 陳都督 【璘】 報曰: “本府統率諸將, 抵于露梁, 見李舜臣被圍, 本府躬統兵丁, 斫斬數十百人, 賊始退. … 陣亡副總兵鄧子龍, 統制使李舜臣.”(사제독당보각아문첩, 진도독(인) 보왈: “본부통솔제장, 저우노량, 견이순신피위, 본부궁통병정, 작참수십백인, 적시퇴. …진망부총병등자룡, 통제사 이순신.”)

위 문장은 선조실록 31년(1598) 12월 21일 중국 명나라 네 제독이 각 아문에 보낸 첩문 내용으로, 이순신 장군이 남해 노량에서 전사했다는 기록이다. 이순신(1545~1598) 장군에 대해서는 독자 여러분께서도 너무나 잘 알고 계신다.

그는 16세기 말 조선의 구국 영웅으로, 임진왜란 및 정유재란 당시 조선 수군을 지휘한 제독이었다. 그는 1598년 12월 16일(음력 11월 19일) 노량 관음포에서 순국할 때까지 54년 일생을 통해 오로지 나라를 위해 살았다. 그는 온갖 어려움과 모함을 겪으면서 백의종군도 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이 7년간 수군을 이끌면서 모든 전투에서 승리한 끝에 전함을 단 한 척도 잃지 않고 23전 23승 불패의 신화라는 전무후무한 기적을 이뤄냈다.

우리는 지금도 일상생활에서 이순신 장군이 남긴 두 마디를 기억하며 왕왕 언급한다.

하나는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전선이 12척 남아 있습니다.(今臣戰船, 尙有十二·금신전선, 상유십이)”이다. 다른 하나는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마라.(戰方急, 愼勿言我死·전방급, 신물언아사)”이다.

어제 노량 바닷가에서 저녁을 먹고 차를 마셨다. 필자가 하동에 은거하고 있어 어쩌다 가끔 노량에 간다. 그럴 때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생각한다. 관음포 해변에 이순신 순국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많은 사람이 찾아 그의 애국정신을 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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