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짚어 본 김정은의 "대한민국 공격의사 없다" 발언의 의미 [스프]

안정식 북한전문기자 2024. 10. 2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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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식의 N코리아 정식] 파병 하루 전에 나온 김정은의 평화 제스처
 

북한을 어떻게 정확히 볼 것인가? '기대'와 '관점'이 아니라 객관적 '현실'에 기반해 차분하게 짚어드립니다.
 
어떤 사안을 해석하는 데 있어 해석의 근거가 되는 자료가 부족하면 잘못된 해석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관계가 누락된 상태에서 사안을 바라보게 되면 정확한 분석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지난 7일 있었던 김정은 총비서의 '대한민국 공격 의사 없다'는 발언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저는 지난 글(윤석열 대통령에게 "상황 관리" 주문한 김정은... 수위 조절 나선 이유는)에서 김정은의 이런 발언을 '남북의 군비경쟁에서 오는 안보 딜레마'에 따른 부담 때문이라고 해석했는데, 북한의 러시아 파병 소식이 전해지면서 잘못된 해석이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 https://premium.sbs.co.kr/article/zh3-9qY4S ]

이번 글에서는 북한의 러시아 파병이 공론화되기 전후의 북한 반응을 비교해 보면서 이번 파병에 대응하는 북한의 전략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대한민국 공격 의사 없다' 발언 하루 뒤 러시아 파병 시작

김정은은 지난 7일 국방종합대학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한민국 공격 의사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김정은의 발언 내용을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김정은 국방종합대학 연설 | 지난 7일
"우리는 솔직히 대한민국을 공격할 의사가 전혀 없습니다. 의식하는 것조차도 소름이 끼치고 그 인간들과는 마주 서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전 시기에는 우리가 그 무슨 남녘 해방이라는 소리도 많이 했고 무력 통일이라는 말도 했지만, 지금은 전혀 이에 관심이 없으며 두 개 국가를 선언하면서부터는 더더욱 그 나라를 의식하지도 않습니다."
김정은이 지난 7일 국방종합대학을 방문해 연설하고 있다.
김정은은 이날 윤석열 대통령에게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게 상황 관리를 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윤 대통령에게 상황 관리를 주문하면서 사실은 김정은 자신이 상황 관리에 나선 셈인데, 북한군 파병 사실이 드러나고 난 뒤에 보니 그다음 날인 8일부터 북한이 러시아로 병력을 보내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가정보원이 지난 18일 밝힌 바에 따르면, 북한은 러시아에 1만 2천 명가량의 대규모 병력을 파병하기로 했고 지난 8일부터 첫 병력인 1천 5백여 명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김정은은 러시아로의 병력 이동을 하루 앞두고 일종의 평화 제스처를 취한 셈입니다. 해외로 대규모 전력이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국내 상황을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이런 의도적인 발언을 내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해 볼 부분은 이른바 '남한 무인기 사건'에 대한 북한 대응입니다.

북한은 지난 11일 남한 무인기가 평양 상공에 침투했다고 주장하면서 외무성 중대 성명과 김여정 담화 등을 통해 긴장을 고조시켰습니다. 지난 13일에는 국경 부근의 포병부대들에 완전사격준비태세를 갖추도록 했다며 군사 긴장 수위를 높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15일부터 다소 미묘한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노동신문은 15일 김정은이 '국방 및 안전 분야에 관한 협의회'를 소집했고 '강경한 정치군사적 입장을 표명'했다고 보도했는데, 북한이 공표한 김정은 관련 보도에는 이렇다 할 내용이 없었습니다.

지난 15일 노동신문의 압권은 이른바 '남한 무인기 사건'에 분노하는 북한 주민들의 반응이었습니다. 노동신문은 1면에 남한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각계 반응을 실었는데, 치솟는 증오를 가지고 석탄을 증산하고 더 열심히 일을 하자는 등 다소 어이없는 결론으로 이어졌습니다. 노동신문의 일부 기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노동신문 | 지난 15일
"각 탄광 당 조직들에서 탄부들의 치솟는 증오와 보복 열기가 그대로 석탄 증산 성과로 이어지도록 집중적인 사상 공세를 드세게 들이대고 있다."

"그 어느 탄광의 막장에서나 신성한 우리 공화국의 주권을 란폭(난폭)하게 침해하고 무모한 도전 객기를 부리는 괴뢰 한국 것들에 대한 끓어오르는 증오심이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속에 석탄 생산량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의 신성한 령토(영토), 수도 평양의 상공에 무인기를 침투시켜 엄중한 정치군사적 도발 행위를 감행하였다는 소식에 접한 그날 흥남 로동(노동) 계급은 노호하였다. 밤교대 작업을 마치고 퇴근 준비를 하던 원료직장, 발생로직장, 압축기직장을 비롯한 여러 직장 로동자(노동자)들이 작업복을 다시 갈아입고 서리발이 번득이는 눈길로 생산 현장에 들어섰다.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원쑤(원수)들에게 무자비한 천벌을 안기는 심정으로 한 교대라도 더 일을 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고 하면서 스스로 일손을 잡았다."

"평양의 하늘을 더럽힌 원쑤(원수)들을 단매에 쓸어버릴 결사의 각오 안고 군 일군들과 농업 근로자들, 지원자들이 화선을 지켜선 심정으로 낟알 털기 속도를 높이고 있다."

남한에 대한 분노를 담은 각계 반응을 전한 지난 15일 자 노동신문 홈페이지
남한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고 석탄을 증산하고 낟알 털기의 속도를 높이자는 희한한 상황. 통일부는 "적개심이 생산 증대로 이어져야 한다는 이례적 논리가 등장"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북한의 해외 파병이 밝혀지고 난 뒤 생각해 보면, 해외로 전투 병력을 파견하는 상황에서 북한 당국이 한반도의 긴장을 마냥 높이기에는 부담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북, 파병 공개된 뒤 행보 달라져

이렇게 남북 긴장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수위 조절을 하는 듯했던 북한의 행보는 지난 18일 우리 정부에 의해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이 확인된 이후 조금 달라진 모습을 보입니다.

지난 22일 발표된 김여정 담화는 무인기 사건과 대북 전단 등을 두루 언급하며 남한과 우크라이나를 싸잡아 비난했는데, 핵심은 '핵보유국을 상대로 까불지 말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북한과 러시아는 핵보유국이니 비핵국인 남한과 우크라이나가 섣불리 대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루 뒤인 23일에는 김정은이 전략미사일 기지를 시찰한 사실이 보도됐습니다. 전략미사일 기지가 공개된 것은 처음이었는데, 북한은 김정은이 고체연료 ICBM인 화성-18형과 극초음속 미사일을 살펴보는 모습을 공개했습니다.

ICBM은 보통 미국을 겨냥한 압박으로 해석되는 만큼 미국 대선을 2주도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을 겨냥한 메시지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북한이 올해 미국 대선을 대체로 관망하는 모습을 보여왔다는 점에서 미국 대선을 겨냥해 전략미사일 기지를 공개했다고 보는 것은 명쾌하지 않은 점이 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안정식 북한전문기자 cs7922@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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