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완벽한 AI 여성? 결선 오른 '그녀'가 주목받는 이유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미인이 무대에 등장해 포즈를 취한다. 무대 위를 누비는 참가자들은 완벽한 대칭 얼굴과 잡티 하나 없는 피부, 눈부신 미소로 관객을 매료시킨다. 그러나 이들은 실제 인간이 아니다. 모두가 텍스트 프롬프트에서 탄생한 인공지능 이미지다.

전 세계 최초의 AI 미인대회 ‘Miss AI’가 지난 6월 말 온라인을 통해 열리며 전례 없는 화제를 모았다. 미의 기준을 AI가 어떻게 해석하고 재창조하는지를 실시간으로 보여준 이번 대회에는 1,500명이 넘는 AI 여성 캐릭터가 출전했으며, 이 중 최종 결선에는 10명의 가상 인플루언서가 진출했다.

이번 행사는 영국 기반의 'World AI Creator Awards' 주최로 개최됐으며, 참가자 전원은 인간 모델이 아닌 인공지능을 통해 생성된 가상 여성들이다. OpenAI의 DALL·E 3, Midjourney, Stable Diffusion과 같은 생성형 이미지 툴을 활용해 창조됐으며, 각 캐릭터는 고유한 성격과 배경 스토리를 지녔다.

대회 주최 측은 “이 행사는 단순한 미인 선발이 아니라, AI 창작자의 기술력과 캐릭터의 영향력을 평가하는 장”이라 밝혔다.

심사 항목은 외모뿐 아니라 AI 툴 활용 능력, SNS 상의 영향력, 그리고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인터뷰 답변까지 포함된다. 일례로, 참가자들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같은 질문에도 답해야 했다.

Seren Ay / Fanvue World AI 크리에이터 어워드

'완벽함'의 이름으로 탄생한 AI 여성들

최종 결선 진출자 가운데 특히 주목받는 인물은 튀르키예 기반의 AI 모델 ‘세렌 아이(Seren Ay)’다.

녹색 눈과 붉은 머리칼이 인상적인 그녀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다양한 시대를 넘나드는 이미지를 공유한다. 아타튀르크와 함께한 역사적 장면부터, 오스카 레드카펫, 일본 교토의 야경까지—그녀의 활동은 현실과 가상을 넘나든다.

하지만 이처럼 이상화된 외모는 오히려 AI가 인간의 왜곡된 미의 기준을 반복적으로 학습한 결과라는 지적도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미래지능연구소 소속 연구원 케리 맥이너니 박사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점점 편집되지 않은 얼굴이 어떤 모습인지 잊어가고 있다”며 “이러한 AI 모델들은 기존 미의 기준—백인 중심, 마른 체형, 완벽한 대칭 얼굴—을 그대로 복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앤 커디(Anne Kerdi) /Fanvue World AI 크리에이터 어워드

AI가 만든 '미의 기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번 대회 참가자들은 단지 외모만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 AI 모델 ‘앤 커디(Anne Kerdi)’는 해양 환경 보호 메시지를 꾸준히 전파하며, ‘아이야나 레인보우(Aiyana Rainbow)’는 LGBTQ 커뮤니티 지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각 캐릭터는 뚜렷한 사회적 정체성과 메시지를 갖고 있으며, SNS에서는 마치 실제 인플루언서처럼 팔로워들과 소통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캐릭터들이 현실 인물보다 오히려 더 큰 영향력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팬뷰(Fanvue) 소속의 AI 모델 ‘아이타나 로페즈(Aitana López)’는 월 최대 4천만 원 상당의 수익을 광고로 벌어들이고 있다.

실존하지 않는 인물임에도, 스캔들이 없고 외모가 항상 완벽하며 기업에 의해 완전히 통제 가능하다는 점에서 광고 시장에서도 선호되는 경향이 짙다.

아이야나 레인보우(Aiyana Rainbow) / Fanvue World AI 크리에이터 어워드

가짜처럼 완벽한 AI 여성, 진짜보다 더 사랑받는 이유는?

이번 대회의 후반부에서는 AI 인플루언서에 대한 사람들의 감정적 유대감도 조명됐다. 세렌 아이의 창작자 중 한 명은 “그녀는 많은 이들에게 큰언니 같은 존재”라며, “팔로워들이 고민 상담을 요청하거나 매일 안부를 묻는다”고 전했다.

프랑스 출신의 앤 커디 역시 “영상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팔로워들과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며 인간적인 AI를 강조했다.

그러나 이 모든 감정적 교류가 알고리즘 기반의 대화 시뮬레이션이라는 점은, 윤리적·사회적 문제로 이어진다.

특히 성인 콘텐츠 플랫폼에서도 AI 아바타들이 활용되고 있으며, 이와 관련한 데이터가 편향되고 이성애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AI 기술이 개인의 욕망을 완벽히 충족시키는 방향으로만 발전할 경우, 인간성과 다양성을 해칠 수 있다는 경고다.

아이타나 로페즈(Aitana López) 인스타그램

AI, 미의 기준을 바꿀 수 있을까

심사위원 중 한 명이자 미스 영국 대회 심사위원장이기도 한 샐리 앤 포셋은 “과거 미인대회가 수십 년 걸쳐 다양성과 포용성을 확보해온 과정을 AI는 더 빠르게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AI가 단순히 현존하는 미의 기준을 반영하고 반복하는 데 그친다면, 이는 오히려 기술의 한계이자 왜곡된 사회 인식의 결과일 수 있다.

이번 대회는 단지 ‘가장 완벽한 여성’을 뽑는 행사가 아니다. 기술이 미의 기준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우리가 AI를 통해 어떤 인간상을 그려내는지를 묻는 철학적 실험이기도 하다.

누가 1위를 차지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우리가 무엇을 아름답다고 느끼는가, 그리고 그 판단의 기준이 진정으로 우리 스스로의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실존하지 않는 완벽한 그녀…AI 미인대회 1위부터 3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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