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정치 퇴행과 개혁 실종, 멀어진 선진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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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경제 구조적 장기침체 우려
잠재성장률 5년에 1%p씩 하락세
대표기업 삼성전자 위기론 대두
정부와 정치권 위기의식 안보여
」
위기 예측설로 알려진 ‘민스키 모멘트’는 누적된 부채가 임계점에 달하면 자산 가치 붕괴와 경제 위기로 분출되는 순간을 일컫는데, 종종 정치사회적 악재와 불만이 누적될 때 위기 상황으로 번질 수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최근 국제결제은행(BIS)의 경고도 심상찮다. BIS는 중국이나 한국처럼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신용 비율이 100%를 넘으면 경제성장률이 정점을 찍다 어느 순간 반비례로 돌아서는 역 U자형 곡선을 타게 된다고 발표했다. 세계 최악의 가계부채 증가율은 차치하더라도 ‘국장(국내 주식시장)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자조적 유행어는 한국이 민스키 모멘트에 다다르고 있음을 직감하게 한다. 과거 금융위기를 경험한 멕시코나 아르헨티나 등의 경우를 봐도 외국인 자금 이탈보다 더 위험한 징후는 국내 기업과 내국인 투자자의 탈출이다.
국내 증시 대장주 삼성전자의 올해 연중 주가가 -30%로 뒷걸음치는 동안 대만의 대표적 반도체 기업 TSMC는 80% 급상승하며 시가총액으로 삼성전자 시총의 3배 이상 덩치를 키웠다. 5년 전 300조원 대로 기업가치가 비슷했던 두 기업의 엇갈린 행보는 우리에게 울리는 비상벨과 같다. 증시가 국가 미래와 기업 가치의 척도로 여겨지는 만큼 국내외 투자자들은 현 상태로는 한국 미래와 경제 전망이 어둡다고 보는 것이다. 대만의 일개 기업 TSMC 시총이 1100조원을 넘어선 마당에 국내 코스피 상위 10개 기업 시총의 총합계는 900조원 수준에 머물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 시총 5000조원을 기록 중인 애플의 뒤를 쫓고 있는 글로벌 인공지능(AI) 혁명의 최강자 엔비디아 창업자 젠슨 황과 그를 비롯한 실리콘밸리 선두 주자에는 대만계가 적지 않다. 젠슨 황이 대학 시절 어려운 집안 환경 때문에 음식점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 당시, 그의 소망은 오로지 ‘세계 최고의 접시 닦기’가 되는 것이었다고 했다. 헝그리 정신으로 맡은 일에 불타는 열정을 가져야 성공한단 얘기다. 이같은 대만계 약진은 중국의 위협 속에서 기업과 국가의 생존력을 강화하기 위한 절박한 노력과 혁신으로 이뤄낸 결과이고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지난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 잠재성장률(2.0%)이 올해 처음으로 미국에 추월당했다. 한국 GDP의 16배에 달하는 미국의 잠재성장률 2.1%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예사롭지 않은 수치다. 게다가 한국 잠재성장률은 5년에 평균 1%포인트씩 떨어지고 있다. 미국 등 주요 경쟁국이 기술혁신과 고급인재 육성으로 노동생산성 제고를 통해 성장 잠재력을 키우고 있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앞으로 인구구조 위기로 과감한 구조개혁 없이 2030년대엔 0%대로 추락이 불 보듯 뻔한데 노동·연금·교육 등의 핵심 개혁은 표류 중이고 성장엔진은 급속히 식어가는 중에 대통령을 위시한 정부와 정치권의 위기의식과 절박함은 보이지 않는다.
오랫동안 유럽 경제를 지탱해 온 독일이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세를 보이며 비상이 걸렸다. 최근 독일 국영방송(DW)은 중국보다 막강했던 제조업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성장동력을 잃고 있는 독일부터 걱정해야 한다고 했다. 독일 경제 위축의 원인으로 산업 패러다임 변혁기에 선제적 대처에 실패했고 필수 구조개혁은 말만 무성했을 뿐 실행에 옮기지 못한 데다 은퇴 인력 증가에 따른 생산인구 감소와 연금 재정 압박을 견디지 못한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기업경쟁력 촉진을 위한 정부 지원과 핵심 인프라 투자도 실기했다는 자아 비판적 평도 내놓았다.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극빈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 경이적 성장으로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 신흥국들의 로망이자 금년도 노벨 경제학상의 연구 모델이 되었던 대한민국의 기적이 여기서 멈출 순 없다. 임기의 반환점을 도는 윤 정부는 초심으로 돌아가 신속한 국민 신뢰 회복과 과감한 국정운영 쇄신에 명운을 걸어야 한다. 멀어지는 민심에 국정 동력 추락이 계속되면 국가 미래는 없다. 국내 기업과 국가의 미래 경쟁력, 그리고 생존력 강화를 위해 성급한 낙관론은 접고 더 늦기 전에 대대적 정치 혁신과 강도 높은 개혁으로 반전의 모멘텀을 만들어야 한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전 금융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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