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조의 아트홀릭] "전시가 끝나면 사라질 운명의 벽화들"

2024. 9. 26.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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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정승조 아나운서 ■

'파스텔화'가 생소하게 느껴지는 분들 있으실까요?

그렇다면 필자가 소개하는 '니콜라스 파티'의 작품은 어떨까요.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는 스위스 출신의 작가인데요.

유년시절, 그래피티를 경험하고요.

대학에선 영화와 그래픽디자인, 3D애니메이션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아티스트 그룹으로 활동하며 미술과 음악, 퍼포먼스가 융합된 전시와 공연도 선보였는데요.

이후 그의 작업은 회화 중심이었지만요.

다양한 그의 경험은 벽화, 채색 조각 등 작품 전반에 영향을 주었는데요.

니콜라스 파티가 펼치는 예술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최대 규모의 한국 첫 개인전이 호암미술관에서 열렸습니다.

'정승조의 아트홀릭'은 호암미술관의 '니콜라스 파티: 더스트'를 기획한 '곽준영 리움미술관 전시기획실장'을 만났습니다.

▮ 니콜라스 파티에 대해 간단히 소개했습니만, 어떤 작업을 해 온 작가입니까?

니콜라스 파티, 복숭아가 있는 초상, 2024, 리넨에 소프트 파스텔, 150 x 109.9 cm, 작가 및 하우저앤워스 제공, ©니콜라스 파티, 사진: Adam Reich

니콜라스 파티는 구상회화의 전통을 재해석하는 풍경, 정물, 초상과 대형 벽화, 채색 조각, 총체적 설치와 전시기획을 아우르는 폭넓은 작품세계를 선보여 온 작가입니다.

고대부터 근현대를 아우르는 미술사의 재현 역사를 폭넓게 연구하고요. 다양한 작가, 모티프, 양식, 재료와 테크닉 등을 샘플링하여 그만의 독자적 이미지를 만들어 냅니다. 특히 18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이후 잊혀진 파스텔화의 전통을 소환하여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전시 기간에만 존재하는 거대한 파스텔 벽화를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지요.

▮ 흥미로운 작품들이 많겠군요. 한국에서 열리는 첫 개인전인 만큼 니콜라스 파티도 한국 팬들을 만나는 기대감이 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니콜라스 파티: 더스트 전시 전경, 사진 제공: 호암미술관, 사진: 김상태, (뒤) 니콜라스 파티, 나무 기둥, 2024, 벽에 소프트 파스텔, 380 x 908 cm, 작가 제공. ©니콜라스 파티 (앞) 니콜라스 파티, 버섯이 있는 초상, 2019, 리넨에 소프트 파스텔, 149.9 x 127 cm, 개인 소장. ©니콜라스 파티

그치요. 새로운 장소에서 전시를 여는 것은 작가에게 늘 많은 영감을 주니까요.

니콜라스 파티도 한국 관람객을 처음 만나는 것에도 많은 기대를 했습니다. 특히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의 주요 고미술 작품들을 참조하고 우리 문화에 대해 더 알아갈 수 있게 되어 매우 의미 있게 여겼지 싶습니다. 게다가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일 뿐 아니라 작가의 최대 규모 서베이 전시인데요. 한국과 아시아에 있는 많은 분들이 작가의 작품세계를 폭넓게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 전시를 기획하고 준비하며 작가와 소통도 자주하셨지요? 전시 제목은 왜 '더스트'일까 궁금했습니다.

순수한 안료 가루로 이루어진 파스텔을 사용하는 니콜라스 파티는 종종 “나는 더스트로 그림을 그린다”고 말했습니다.

전시 제목 ‘더스트’는 파스텔 고유의 특성을 회화적 재현의 주된 방식이자 주제로 받아들이는 그의 작품세계를 반영합니다. 마치 ‘나비 날개의 인분(鱗粉)처럼’ 쉽사리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파스텔은 지극히 연약하고 일시적인 재료입니다.

파티에게 있어 파스텔화는 ‘먼지로 이루어진 가면(mask of dust)’이자, 화장과 같은 환영입니다. 또한 미술관 벽에 직접 그려지는 거대한 파스텔 벽화는 전시 동안에만 존재하고 사라지는 운명을 지닙니다. 존재의 덧없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지요.

그는 이번 전시에서 이러한 파스텔의 존재론적 불안정성을 인간, 문명, 그리고 자연의 지속과 소멸에 대한 사유로 확장합니다.

▮ 역시 아는 만큼 보입니다. 전시를 위해 신작을 선보인 니콜라스 파티, 한국의 고미술에 매료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김홍도(1745~1806경), 군선도, 조선 1776년, 종이·수묵담채, 132.8 x 575.8 cm, 리움미술관, 국보

니콜라스 파티는 시대와 지역을 망라하는 미술사를 연구하고 참조하는 작가입니다. 이러한 작업 특성으로 그는 종종 특정 기관의 소장품과 해당 지역의 문화를 탐구하고 참조하는 전시를 해왔습니다. 이는 저희가 파티를 호암미술관의 첫 동시대 전시 작가로 선택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처음 기획 단계에서부터 미술관의 소장품 활용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작가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작가는 특히 리움이 너무나도 중요한 한국 고미술 소장품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매료되었습니다.

작년에 리움을 방문했을 때 다수의 고미술 소장품을 실견하고 전시에 포함할 작품들을 1차적으로 선정하였고, 함께 지속적으로 논의하면서 리스트를 선별했습니다. 그리고 인간, 문명, 자연의 지속과 소멸에 대한 주제적 측면을 고려하여 장수와 영생을 염원하는 '십장생도 10곡병'과 '군선도'의 다양한 상징들을 참조한 상상의 팔선을 형상화는 신작 초상 8점을 그리겠다고 제안했습니다.

▮ 그런가 하면 파스텔 벽화들은 그야말로 거대합니다. 그중 미술관 로비의 중앙 계단에 그려진 '폭포'는 그야말로 압권입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파스텔 벽화는 총 5점이고요. 그중 4점은 전시장에, 1점은 로비 전면 벽에 그려졌습니다. 특히 로비에 그려진 거대한 벽화는 전시의 강렬한 첫인상을 전달하기에 더없이 효과적이라 생각합니다.

(배경 작품) 니콜라스 파티, 폭포, 2024, ©니콜라스 파티, 제공: 호암미술관, 사진: 이우정

'폭포'는 작가가 자주 그리던 모티브 중 하나입니다. 작가는 로비에 어떤 그림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높고 좁은 벽면에서 시원하게 내려오는 물줄기를 떠올렸고요. 그 물줄기가 호암미술관 전통정원 '희원(熙園)'의 연꽃 가득한 중앙 연못으로 이어지고 또 그 앞 호수로 연결되는 상상을 했다고 합니다.

로비의 '폭포'는 특히 신체와 내장을 연상시키는 주름지고 구불구불한 돌산 사이를 시원하게 가로지르는 장대하고 기이한 풍경을 펼쳐내면서 전시의 입구에서부터 우리를 낯선 세계로 안내합니다.

▮ 파스텔 가루로 벽화를 작업하는 게 쉽지 않았겠다 싶은데요. 실제로는 어땠습니까?

로비의 전면 벽은 계단과 연결되어 있어 여러모로 작업이 쉽지 않았습니다. 파스텔 벽화 작업을 할 때는 흩날리는 가루로 자욱해지거든요. 그래서 비닐로 밀폐된 챔버 공간을 만들지 않으면 주변이 파스텔 가루로 뒤덮이게 됩니다.

그런데 계단참의 폭이 넓지 않은데다가 벽이 높아 챔버를 조성하고, 그 안에서 그림을 그리는데 제약이 많았습니다. 좁고 높은 공간에서, 파스텔 가루가 잘 안착할 수 있게 벽면 밑작업을 하고, 구조물을 타고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작업을 완성했습니다. 전체 작품을 볼 수 있는 시야도 충분치 않아 챔버를 걷어낸 후에야 폭포의 전체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개인적으로 아트홀릭 독자들이 더 챙겨봤으면 하는 작품을 말씀해 주신다면요.

먼저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되고 전시가 끝나면 사라질 파스텔 벽화 5점입니다.

이 벽화들과 예기치 않은 만남을 이루는 '백자 태호'와 '금동 용두보당', 작가의 다른 회화 작품들도 다양한 상상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십장생도 10곡병'과 김홍도의 '군선도'를 참조한 신작 초상 8점 역시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들입니다. '십장생도' 옆에 걸린 사계 풍경화 4점은 호암미술관의 풍경을 닮아 애착이 갑니다.

파티의 사계절 풍경화와 조선 18 세기 '십장생도 10곡병'이 함께 전시되었습니다.

작자미상, 십장생도 10곡병, 조선, 18세기 후반, 비단·채색, 210 × 552.3 cm, 개인 소장

작가의 그림 네점은 어딘가 있을 법한 풍경에 익숙한 계절의 변화를 보여주는데요. 하지만 환상적인 색감은 풍경을 낯설게 만들고 비현실적인 고요함은 우리를 깊은 사색에 잠기게 합니다. 사계절을 관통하는 강은 시공간을 초월해 끝없이 순환하고 흐르는 자연의 시간을 상징합니다.

니콜라스 파티, 여름 풍경, 2024, 리넨에 소프트 파스텔, 150.2 x 200.2 cm, 작가 및 하우저앤워스 제공, ©니콜라스 파티, 사진: Adam Reich

십장생도는 해, 구름, 산, 바위, 물, 학, 사슴, 거북, 소나무, 불로초 등 장수를 상징하는 열 가지 소재의 조화로운 모습을 상상하여 그린 한국 고유의 회화 장르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이상적 관점을 보여줍니다. 자연의 요소를 장수의 상징으로 여겼다는 것은 대자연에 비해 우리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을 인식한 것이기도 합니다, 계절의 변화와 자연의 영속성을 나타낸 파티의 사계절 풍경화와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하고자 한 마음을 담은 '십장생도 10 곡병'은 한 사람의 생애를 넘어서는 시간의 흐름을 확장적으로 생각해보도록 합니다.

▮ 마지막으로 전시가 독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길 바라는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니콜라스 파티, 가을 풍경, 2024, 리넨에 소프트 파스텔, 150.2 x 200.2 cm, 작가 및 하우저앤워스 제공, ©니콜라스 파티, 사진: Adam Reich

니콜라스 파티의 전시는 하나의 작품이자 총체적이고 몰입적인 환경으로 제시되며, 공간과 전시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경험을 전환시킵니다. 미로와 같은 공간에서 만나는 낯선 무대에서 동서고금의 문화적 상징들이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교차하며 우리의 상상을 자극할 것입니다. 각자가 나름의 방식으로 다양한 영감을 받는 전시가 되기를 바랍니다.

■ '니콜라스 파티: 더스트'

- 장소 : 호암미술관 전시실1,2

- 일정 : 2024년 8월 31일 ~ 2025년 1월 19일

- 관람료 : 유료

정승조 아나운서 / 문화 예술을 사랑하는 방송인으로 CJB 청주방송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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