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순사 피해서" 한국어 가르치다가 죽을 뻔한 '대기업 창업주'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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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을 가르치다 죽을 뻔한, 그리고 민족정신을 담은 소주를 만든 창업주 – 故 장학엽 선생

광복 80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민족교육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창업주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하이트진로의 창업주 故 장학엽 선생은 일제의 압박 속에 조선어 교육을 실천하다 해고되고, 이후에는 소주사업을 통해 독립자금을 마련했던 특별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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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쫓겨나도 한글과 독립에 대한 꿈, 포기하지 않았다

1923년 황해도 곡산 공립 보통학교. 스물한 살의 청년교사 장학엽은 학생들에게 조선어와 권학가를 가르쳤다. 일본인 교장에게 불려가 “왜 조선어 노래를 가르쳤느냐”는 모욕적 힐책을 받고 결국 교사직을 잃어야 했다. 일제 순사의 감시와 탄압이 그를 옥죄었지만, 그는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장학엽은 “내 손으로 학교를 세워야겠다”는 꿈을 품고 교육사업을 위한 돈을 마련하는 길을 고민했다. 당시 조선인은 정미‧양조업 외 대안이 없었다. 그는 두 동업자와 함께 모은 자본금 1,500원으로 ‘진천양조상회’를 설립, ‘진로’라는 이름의 소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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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 소주, 독립자금이자 민족정신을 담은 술

진로의 시작은 단순한 술 사업이 아니라, 독립을 위한 경제적 자립의 수단이었다. 장학엽은 일제 식민 정책에 맞서 전통 증류식 소주를 고집했다. “희석식 소주는 우리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판단 아래, 민족 고유의 맛과 정신을 지키려 했다.

진로 소주 한 잔에는 단순한 알코올이 아니라, 나라살림에 보탬이 되고, 일제 감시 속에서도 굳건한 저항과 자부심을 담았다. 사업 성과를 통해 독립운동자금과 취약계층 교육 지원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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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교육자 꿈을 현실로

광복 이후 장학엽은 본격적으로 교육사업에 뛰어들었다. 1946년 진지소학교, 진지중학교, 진지여고 설립으로 꿈을 펼쳤고, 6‧25전쟁으로 모든 기반을 잃었지만 1954년 다시 서광주조를 세워 재기에 성공했다. 그는 한국 최초의 애니메이션 광고 등 참신한 마케팅을 도입해 1970년대 소주 시장 1위에 올랐으며, 1974년 우천학원 설립으로 교육자 숙원을 완성했다.

1975년에는 회사명을 진로로 바꾸고 하이트진로의 밑바탕을 닦았다. 장학엽 선생의 인생은 민족교육, 경제 독립, 새로운 산업과 문화 실천의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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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에 되새겨야 할 ‘민족정신의 소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광복절을 맞아 진로 소주를 찾는 것은 단순한 주류 소비를 넘어, 일제암흑기 저항과 꿈, 교육에 대한 집념, 그리고 묵묵한 독립자금 조달까지 이어진 장학엽 선생의 정신을 기리기 위함이다.

진로 소주 한 잔엔 일제 순사를 피해 학교에서 쫓겨나도 꺾이지 않은 스승의 신념, 민족교육과 경제자립을 향한 분투, 그리고 광복 이후에도 이어진 ‘한글과 나라 사랑’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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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 잔의 역사, 숨겨진 교육자의 위대한 꿈

장학엽 선생은 일제 순사를 피해 한글 교육을 했고, 술을 팔아 독립운동자금을 모으는 등, 민족정신을 지킨 살아 있는 증인이었다. 그의 진로 소주는 단순한 상업상품이 아니라, 광복과 독립의 꿈, 교육자로서의 희망, 그리고 한국 사회의 가능성을 담은 하나의 상징이다. 광복의 기쁨과 함께 ‘한글’의 가치, 그리고 그걸 지키려던 숨은 영웅의 이야기를 기억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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