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사이 ‘공포의 균형’, 1년의 휴전 시간 벌었지만···

10월30일 미·중 정상회담이 창출한 것은 ‘공포의 균형’이다. 미국과 중국은 올해 내내 상대국, 나아가 글로벌 경제를 ‘확실하게 초토화(확증 파괴)’할 수 있는 경제적 핵폭탄들을 과시했다. 그 무기들의 사용 시점은 연말(11~12월)에 맞춰져 있었다. 그 직전에 예정된 행사가 바로 한국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회의였다. APEC 참석을 계기로 부산에서 만난 미·중 정상은 자신들이 준비해온 경제적 핵폭탄의 ‘발사’를 1년간 유예하기로 합의했다. 공포가 공포를 만나 균형을 이룬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부터 미국과 소련은 치열한 핵무기 증강 경쟁을 벌였다. 그러나 핵전쟁은 터지지 않았다. 양국이 상대방을 확실하게 파괴할 수 있는 핵무기를 각각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상태를 개념화한 용어가 바로 ‘상호확증파괴(MAD)’다. 미·소 양국은 1980년대 중반부터 핵무기 감축 협상을 이어갔고 곧이어 소련이 몰락하면서 냉전은 종식되었다. 미국과 중국의 ‘상호 경제 확증 파괴’ 상태는 어떤 결과로 치닫게 될까.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집권(2017~2020년) 당시 중국에 25% 정도의 관세를 부과했다. 중국이 미국의 기술을 훔치는(지식재산권 침해) 등 불공정행위로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훼손한 대가로 간주했다. 그 유명한 무역법 제301조를 활용했다. 미국 대통령이 의회를 거치지 않고 특정 국가에 고율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방법이다. 트럼프를 이은 조 바이든 대통령도 이 25%를 그대로 유지하는 동시에 미국과 동맹국 기업들이 반도체 등 첨단기술을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통제했다.
트럼프는 올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중국의 펜타닐(진통제로 개발되었으나 강력한 마약으로 오용되고 있는 약물) 재료 수출을 문제 삼아 중국산 제품에 20%의 징벌성 관세를 부과했다. 지난 4월 초엔 전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상호관세를 선포했는데 중국엔 가장 높은 수준인 34%를 매겼다. 중국은 미국산 농산물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미국산 대두(콩)의 수입을 끊었다. 트럼프 지지층인 미국 농민들을 타격한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의 기미가 역력해지며 미국 증시가 폭락하자 트럼프가 손을 들었다. 중국과 관세 협상을 이어가는 대신 그 기간 중에는 대(對)중국 상호관세를 34%가 아니라 10%에 맞추기로 했다. 이로써 올해 중국산 제품에 대한 미국의 관세는 평균 55%(301조 관세 25%+펜타닐 관세 20%+상호관세 10%)를 약간 웃도는 수준으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관세는 대중국 압박의 프롤로그에 불과했다. 트럼프는 중국에 실질적이고 광범위한 타격을 가할 경제적 핵폭탄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트럼프가 준비한 경제적 핵폭탄들

지난 9월20일 트럼프 행정부가 발표한 ‘50% 룰’이 그것이다. 미국은 트럼프(1기)와 바이든 정권을 거치며 이미 화웨이, SMIC, YMTC 등 중국의 대표적 기술 대기업들을 ‘수출통제 목록(Entity List)’에 등재했다. 미국과 동맹국 기업들은 이 중국 업체들에 첨단기술을 수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빈틈이 많았다. 중국 대기업들은 수많은 자회사와 손자·증손자 회사들(계열사)을 거느리고 있다. 모기업이 ‘수출통제 업체’라도 계열사들은 해당 목록에서 빠져 있었다. 중국 대기업들은 해외에 설립한 자회사를 통해 첨단기술을 수입하는 등 다양한 우회로로 미국 등 서방의 첨단기술에 접근했다. ‘50% 룰’의 목표는 이런 우회로를 물샐틈없이 원천 차단하는 것이었다. 즉, ‘수출통제 목록’의 모기업이 50% 이상 지분을 가진 계열사는 자동으로 모기업과 동일한 수준의 제재를 받게 된다. 해외 기업들은 중국 업체와의 거래 자체를 망설이게 될 것이다. 한국 기업이 중국 업체에 상품을 팔았는데, 알고 보니 해당 업체가 ‘수출통제 모기업’의 계열사였다고 치자. 이 경우, 해당 한국 기업은 미국의 제재를 받게 된다. ‘50% 룰’은 중국의 공급망과 연구·개발 체계를 일거에 궤멸시킬 수 있는 장치였다. 이 조치의 시행 일자는 11월10일이었다.
이와 함께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중국이 ‘글로벌 해양·물류·조선 시장을 지배하기 위해 불공정행위를 저질러왔다’라며 11월10일부터 새로운 제재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301조가 다시 활용되었다. 중국이 건조했거나 운영하거나 지분을 가진 ‘중국 연계 선박’이 미국 항만에 들어오는 경우 그 용적(t)에 비례해서 높은 수수료를 매기겠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중국산 조선 및 항만 설비의 수입에도 별도로 높은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글로벌 무역의 80% 정도가 해상운송으로 이뤄진다. 미국의 항만 수수료는 중국 해운업의 확장을 억제하면서 이 나라의 해상 패권 야욕을 좌절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항만 수수료 부과에 비슷한 조치로 맞섰다. 미국과 동맹국(특히 한국)의 해운·조선 업체들에 대해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중국 항만으로 입항을 제한하는 등 제재를 예고했다.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들도 이 블랙리스트에 포함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이 ‘레거시(legacy) 반도체’의 글로벌 공급망을 흔들 수 있다는 점을 다시 각인시켰다. 레거시 반도체는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품목은 아니지만 자동차·산업기기·가전·방위산업·의료기기 같은 다수 산업의 필수 부품이다. 경제와 산업의 기초 전력망과 비슷한 역할이다. 중국은 지난 10월 초, 자국 내에서 레거시 반도체를 생산·수출하고 있는 넥스페리아(본사는 네덜란드 소재)의 해외 공급을 금지했다. 이 조치가 실제로 단행되면 현대차·토요타·BMW 등 글로벌 자동차 생산업체들도 머지 않아 생산에 엄청난 차질을 빚게 될 수순이었다.
중국의 가장 위력적인 보복 조치는 10월9일 발표된 ‘희토류 등 핵심 광물의 수출통제’였다. 12월1일부터 시행할 예정이었다. 희토류는 첨단기술의 핵심 소재로, 중국이 생산과 공급망을 거의 독점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은 이 조치에 해외 기업들 사이의 거래까지 통제하는 내용을 담았다. 예컨대 한국이 미국으로 수출하는 완제품이나 부품에 중국산 희토류 및 관련 중국 기술이 조금이라도 함유되어 있다면 중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실행된다면 첨단산업의 글로벌 공급망을 마비시킬 정도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는 사실 미국의 수출통제(‘해외 업체도 미국 기술을 사용한다면 그 상품의 수출엔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를 흉내 낸 것이다. ‘중국의 법이 해외 국가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라는 기조다. 글로벌 패권국가 미국에게만 허용되었던 ‘특권’에, 중국이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미·중 정상회담의 결과는 어떠했을까. 11월1일 나온 미국 백악관의 ‘설명자료(Fact Sheets)’와 중국 상무부 발표에 따르면, 미국은 중국의 펜타닐 재료 수출통제를 전제로 ‘펜타닐 관세’를 20%에서 10%로 낮췄다. 대중 상호관세 10%도 (34%로 올리지 않고) 내년 11월10일까지 그대로 둔다. 그러나 트럼프 1기 당시 중국에 부과한 ‘301조 관세 25%’는 유지했다. 이로써 중국산 제품에 대한 미국의 평균 관세는 55%를 약간 웃돌던 수준에서 10%포인트 정도 인하되었다.
도전하는 2인자, 흔들리는 1인자
미국은 ‘50% 룰’과 ‘항만 수수료’의 시행도 내년 11월10일까지 유예했다. 백악관 설명자료는 항만 수수료 유예 항목에 다음과 같은 문구를 붙였다. 중국의 ‘해양·물류·조선 지배 시도’와 관련된 협상을 계속 진행하는 동시에 “미국 조선산업을 다시 활성화시킬 대한민국 및 일본과의 역사적 협력을 계속할 것이다.”
중국은 이에 화답해서 희토류 등 핵심 광물의 수출통제를 일시 중단하는 한편 미국산 농산물에 대한 보복관세 부과도 멈추기로 했다. 또한 미국산 대두를 매년 최소 2500만t 수입하기로 약속했다. 올해의 남은 2개월 동안에도 최소 1200만t 미국산 대두를 사야 한다. 또한 넥스페리아의 레거시 칩 수출 재개를 보장하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미국과 동맹국의 조선사들에 대한 제재도 중단한다.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들도 이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이후 가장 긍정적 시나리오는 미·소 간 핵무기의 ‘상호 확증 파괴’ 상태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도 유지되는 것이다. 경제적 핵폭탄을 상대에게 보여줄 뿐 사용하지 않는 시나리오다.
그러나 트럼프는 시진핑과 만난 직후 미국으로 돌아가는 전용기에서 ‘매년 1회의 재협상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양국은 협상할 때마다 ‘50% 룰’ ‘항만 수수료’ ‘희토류 수출통제’ 등을 카드로 내밀면서 글로벌 시장과 공급망을 출렁거리게 만들 것이다.
트럼프는 올해 중국과의 대립 국면에서 맛본 굴욕을 잊지 않을 터이다. 〈뉴욕타임스〉(10월30일)에 따르면,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수출통제’는 국가안보와 관련된 사안으로, 다른 나라와 협상할 때 거래 가능한(tradable) 항목이 아닌 것으로 여겨졌다. 반중을 핵심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트럼프가 오히려 수출통제를 중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올리고 유예하는 첫 선례를 만든 것이다. 반면 중국은 패권국이나 가능한 ‘자국 법률의 해외 적용’으로 첨단산업에 대한 글로벌 통제권을 손에 넣으려고 시도했다. 2인자는 도전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1인자의 지위를 훼손할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스〉(10월31일)는 이번 미·중 정상회담을 두고 씁쓸하기 짝이 없는 논평을 내놓았다. “두 사람(트럼프와 시진핑) 사이 힘의 균형이 달라졌다는 점은 명확했다. 10여 년 전 트럼프가 처음 무역공세를 펼쳤을 때는 중국이 기습을 당했다. 그러나 이번엔 경제적으로 훨씬 강력해지고 준비된 중국이 과거의 압도적 강자였던 미국과 대등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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