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실 직원들 경악하게 한 수박 한 덩이[김숙정의 권리장전 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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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이어지는 긴 조사의 휴식 시간에 잠시 커피를 사러 나가면, 일부 의뢰인들은 "우리만 마시기엔 너무 야박하잖아요. 수사관님 것도 사 가면 안 될까요?"라고 묻곤 합니다.
그러나 청탁금지법(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이후, 수사관들은 사건 관계인으로부터 어떤 음료나 선물도 받지 않습니다.
한쪽에서 커피를 대접하면 다른 사람은 "나도 뭔가 해야 하나"라는 부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오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수사관들은 어떤 선물도 받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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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김숙정 변호사)
"수사관님께 커피를 사다 드려도 될까요?"
하루 종일 이어지는 긴 조사의 휴식 시간에 잠시 커피를 사러 나가면, 일부 의뢰인들은 "우리만 마시기엔 너무 야박하잖아요. 수사관님 것도 사 가면 안 될까요?"라고 묻곤 합니다.
그러나 청탁금지법(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이후, 수사관들은 사건 관계인으로부터 어떤 음료나 선물도 받지 않습니다. 심지어 작은 호의의 표시로 보이는 커피 한 잔조차도 말입니다.
검사실에선 아무도 손 대지 않는 아이스커피
그럼에도 "사가야 마음이 편해요"라며 커피를 사들고 가시는 분들이 있지만, 수사관들은 한결같이 정중하게 거절합니다. "고맙지만 마음만 받겠습니다"라며 본인이 직접 가져온 음료나 텀블러에 담긴 물을 마실 뿐입니다. 결국 조사가 끝나면 의뢰인들은 손도 대지 않은 채 얼음이 다 녹은 커피를 들고 나와야 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비단 수사기관에만 국한된 게 아닙니다. 학교 현장에서도 이 규정은 엄격히 적용됩니다. 학부모로서 선생님과 면담할 때 "진짜 빈손으로 가도 될까" "혹시 다른 학부모는 선물하는데 나만 안 하면 어떡하지"라고 고민해 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국민권익위원회의 해석은 명확합니다. 학생의 평가와 지도를 상시적으로 담당하는 선생님께는 음료수조차 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얼핏 보면 이런 규정이 지나치게 엄격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한국 사람은 정과 의리인데"라며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공정성과 신뢰의 문제입니다. '수사기관이 공정하게 사건을 처리하는 것'이 '야박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현장에서 고생하시는 수사관들은 커피 한 잔도 받지 않습니다.
수사기관이 공정성과 중립성을 유지하는 것만큼이나 그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한쪽에서 커피를 대접하면 다른 사람은 "나도 뭔가 해야 하나"라는 부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오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수사관들은 어떤 선물도 받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풍경은 청탁금지법 시행 이전에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검사실에서 조사를 하다 보면 누군가 살며시 청사 매점에서 구입한 비타민 음료 한 상자를 문 앞에 놓고 가려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희는 누구로부터 무엇이든 절대 받지 않습니다"라며 환불을 안내해 드렸습니다.
자신의 텀블러에 담긴 물이 세상을 바꾼다
작은 호의를 돌려드리기 위해 청사 복도를 릴레이하듯 달리기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때는 한여름이었습니다. 검사 출신 변호사가 더위에 고생한다며 검사실마다 수박을 두고 가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각 방마다 직원들이 수박을 들고 나와 뛰어가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는 다른 사건 관계인들에게 "우리 변호사가 빈손으로 갔다고 나에게 불리하게 진행되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이나 "수박을 주면 사건처리를 더 잘해주려나"하는 그릇된 기대를 심어주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청탁금지법은 이러한 이유로 법제화되었습니다. 직무와 관련해 금액에 상관없이 어떠한 금품도 받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이 박절해 보일 수 있지만, 이는 공정한 사회를 위한 작은 실천입니다. 수사관이 자신의 텀블러에 담긴 물을 마시는 모습, 교사가 학부모의 선물을 정중히 거절하는 모습. 이러한 작은 실천들이 모여 우리 사회에 큰 변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 김숙정 변호사 약력
김숙정 변호사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1호 검사 출신이다. 2012년 제1회 변호사 시험 합격 후 수원지검 성남지청에서 처음 검복을 입었다. 이후 국회 보좌관을 거쳐 2021년 공수처 출범 당시 몸을 담았다. 2022년 공수처장 1호 표창을 받았고 2023년 공수처 1호 우수검사로 선정됐다. 2023년 말 공수처를 떠나 법무법인 LKB에서 수사대응팀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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