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조명의 세계 4편 : ‘조도’는 인간이 느끼는 밝기감과 다르다

조명설계 전문가가 소개하는 건축조명의 세계_ 4편

조명이 그저 어두운 곳을 밝히는 장치라고만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거주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릴 수도, 높일 수도 있는 것이 조명이다. 조명설계전문가 차인호 교수를 통해 매월 조명설계의 세계와 실제를 만나본다.


직립보행이 가능한 인류의 조상이 살던 멀고 먼 20만 년 전, 어느 날.
고요한 긴장감이 흐르는 잡목 우거진 숲속, 숨죽이고 지켜보던 멧돼지가 주변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자 갑자기 반대 방향으로 몸을 틀어 달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A는 동료와 함께 창을 들고 사냥감을 쫓아 뛰기 시작한다. 얼마나 쫓아갔을까. 달리며 쉬기를 반복하며 지쳐가는 멧돼지 허벅다리에 창을 던지고 이제 오늘 저녁과 며칠 동안 사냥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드는 순간 갑자기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느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미 손바닥만 하게 퍼지고 있는 붉은 선혈은 바닥을 적시기 시작했다. 아까 한참 사냥감을 쫓아다닐 때 발바닥의 뜨끔한 느낌이 들었고 아마도 날카로운 무언가 조각에 찢겨 그랬을 것이다.

현생 인류인 우리도 이렇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바닥을 볼 일이 없다. 앞에 멧돼지를 사냥하던 A보다 훨씬 오래전 수중에서 지상으로 진화하며 등장한 원시 포유류는 네발로 걸으며 시각보다는 후각의 의존도가 높았다. 원시 인류에서 호모에렉투스, 두 발로 곧게 서서 걷기 시작한 직립보행의 혜택으로 자연스럽게 전방 시야가 더 중요해진 우리 인류가 바닥을 바라본다는 것은 일상에서 특별히 중요한 사건이 아니라면 고개를 떨구어 아래를 보는 행위는 상대적으로 우리의 체력과 에너지를 더 소모하게 만드는 불필요한 행위가 되었다. 특히 필자가 21세기에 건축조명을 설계하면서 쾌적하며 건강한 조명 환경으로 아름다운 빛의 공간을 만드는 데 필요했던 소중한 진화 과정이었다.

지난주 공간디자인 수업에서 빔프로젝트 스크린에서 강의 PPT 자료를 보고 있던 학생들에게 “자 교재 47쪽을 보시기 바랍니다”라고 하면 일제히 앞을 보고 있던 시선이 책상에 놓인 책의 내용을 보기 위해 아래로 향한다. 이때 강의실 책상면을 비추는 조명이 필요하게 된다. 조명의 역할은 ‘공간을 아무 이유 없이 밝히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비추어 인간의 사고나 행위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은 주간에는 거대한 광원인 태양, 자연광의 혜택으로 보이는 곳 대부분이 모두 비슷한 비중으로 밝기에 시선의 우선순위, 시각적 위계가 형성되기 힘들기 때문이고 해지고 어두워진 후에도 1실1등으로 낮처럼 구석구석 모두 같은 밝기감으로 눈부시게 밝은 획일적 조명 환경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빛은 곧 시선이다. 조명디자인은 시선을 설계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필자의 조명디자인 책들에서 자주 강조하는 이론 중 하나이다. 빛이 있어 사물을 볼 수 있는 것이며 조명을 설계하면서 시선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통제하기도 한다. 조명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공간 속의 대상을 더욱 강조할 수도 있고 심지어 사라진 것처럼 연출할 수도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모든 사물을 동시에 비슷한 비중으로 보는 주간과 달리 야간에는 특정한 사물을 선정하여 비추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 이유로 다음의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야간에는 잠들기 위한 준비로 침대에 들기 2시간 전부터는 충분히 어둑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래야 멜라토닌이라는 수면 유도물질이 뇌 속에서 분비되어 건강하고 쾌적한 숙면이 가능하다. 특정 대상에만 조명을 비추게 되면 공간의 전체적인 밝기감을 자연스럽게 낮추게 되면서 건강한 조명 환경이 조성된다.
둘째, 뇌의 피로도를 낮추고 아름다운 공간연출이 가능하다. 야간 시야에서 모든 사물을 비슷한 비중으로 밝히는 조명 환경, 이른바 1실1등의 조명환경은 피로도가 높다. 단순히 조도가 높아져 멜라토닌 분비를 방해하는 것 이외에도 우리의 시선은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시지각 정보를 동일하게 처리하지 않는다. 식탁 위의 빨간색 사과를 보고 있다면 테이블 주변과 테이블 뒤의 주방 창가에 보이는 풍경이나 사과 옆의 다른 접시나 사물을 모두 하나하나 기억하지 않는다. 아니 기억할 필요가 없다고 우리의 뇌가 판단한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뇌는 신체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장기이기에 뇌의 한정된 에너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이렇게 진화해 왔다. 이것을 ‘선택주의’라고 하는데 카메라로 피사체를 촬영할 때도 빨간 사과에 포커스를 맞추고 촬영하면 주변부는 흐릿하게 보여 원근감이 극대화되고 사과만 정확하게 표현되어 보다 깊은 공간감으로 연출된다. 이렇게 심도가 얕은 사진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유는 우리의 시지각이 그렇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디자인에서 사용자가 아름답다고 느끼도록 하는 것 중에 가장 쉬운 접근 방식은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연출하는 것이다. 조명디자인에서 저녁노을이나 초저녁에 코발트 빛으로 물들어 한없이 투명해 보이는 파란 하늘을 연출하는 느낌의 조명 환경을 연출하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자연에서 경험했던 빛의 파노라마가 주는 감동과 아름다움의 경험을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심리상담센터, 차인호 공간조명연구소 완성사례
심리상담센터, 차인호 공간조명연구소 완성사례

빛의 양이 아닌 질을 중시하는 건축조명에서 가장 중요한 빛의 요소는 ‘조도’가 아니라 ‘휘도’이다. 하지만 오래도록 변하지 않은 조도 우선의 설계 기준은 많은 문제를 지금도 만들고 있다. 조도는 인간이 느끼는 밝기감이 아니지만 필자가 주변에서 조명 프로젝트로 만나는 건축주나 건축사 대부분은 “교수님 여기 조도가 얼마나 되나요?”라는 말로 해당 공간의 밝기감을 묻고 있다. 아직도 이 오해는 쉽게 풀리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임을 알 수 있다.
KS 조도 기준은 오래된 설계기준으로 오늘날 이것만을 맹목적으로 채택하여 전문적인 건축조명을 설계하는 데 필요한 설계 지표로 사용하기에는 문제가 많다. 우선 조도 기준이라는 것은 고도 경제성장기, 대량생산 시대에 만들어진 기준으로 측광하고자 하는 바닥이나 탁상면에 조도계라는 장비를 놓고 측정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조도는 어디까지나 조도계라는 측광 장비가 광원에서 나오는 밝기 정도를 측정하는 것이다.

자, 그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 지금부터 우리는 그 조도계가 되어 보자. 광원이 한낮의 태양이라면 우리 조도계는 그 태양을 오래도록 적어도 충분히 측광수치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눈 시리게 직접 쳐다보아야 한다. 또한, 광원이 강의실 책상 위에 켜진 12W의 LED 램프라면 책상에 누워 눈부셔서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지만, 그 램프를 아래에서 위로 똑바로 바라보며 밝기감을 측정하기 위해 고통스러운 순간을 참아내야 한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으로 설명하는 것은 당연히 우리는 조도계가 아니기에 이렇게 눈 부신 빛을 측광하는 수치를 공간의 밝기감의 정량적 지표로 사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조도 기준이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 기준만으로 모든 공간의 밝기감을 나타내는 지표로 사용하는 것에는 문제가 많다. 그럼에도 오늘날 주거 공간에서 수평면 조도를 중심으로 고민하면서 설계에 신경 써야 할 곳은 서재나 공부방의 책상, LDK의 아일랜드 상판, 주방의 조리대 위이다. 이곳은 모두 작업면(태스크, Task)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공부와 조리 작업을 위한 수평면 조도가 충분히 확보되어야 한다.

이렇게 조도는 ‘특정한 면에 입사되는 광원의 밝기감’을 측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명백하게 조도계가 측정하는 기계적 측광량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느끼는 공간의 밝기감은 무엇으로 나타내야 할까? 이때 등장하는 개념이 휘도이다.

휘도는 일정한 면적에서 반사되어 우리 눈에 들어오는 빛의 양, 즉 우리의 시지각으로 느끼는 밝기감이다. 이렇듯 기계적 측광량인 조도와 엄격하게 다르다. 하지만 조도보다 어려운 이유는 일상에서 만나는 휘도의 그 빛은 엄격하게 말해 그 하나의 반사면을 통해 들어오는 빛만으로 구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적인 건축조명으로 체계적으로 설계한 공간에서는 다양한 광원의 전문 배광이 여러 각도로 우리의 시지각에 유입되도록 한다. 이러한 원리로 눈부심을 최소화하고 쾌적한 공간 인상을 연출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공간을 연출하는데 조도보다는 휘도가 더욱 중요하며 휘도를 제대로 통제하며 설계할 수 있다면 완성도 높은 빛의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심리상담센터, 차인호 공간조명연구소 완성사례
심리상담센터, 차인호 공간조명연구소 완성사례

조도와 휘도는 다른 개념이지만 서로 긴밀한 관계에 있다. 그래서 어렵다. 조명설계에서 조도와 휘도는 나누어 생각할 수 없다. 조도만 생각해서는 안 되고 휘도만 고민해서도 안 된다. 이 두 개념을 어떻게 자유자재로 전환하면서 공간의 이미지를 구성하느냐가 전문적인 건축조명에서는 중요하다.
따라서 전문가라면 조도에서 휘도로 휘도에서 조도로 바꾸어 생각해야 하는 공간의 밝기감을 고려하면서 환경을 분석하고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작업면에 유입되는 빛의 반사량이 공간에 영향을 어떻게 미치는지 세심하게 마감재 특성까지 고려한 설계가 필요하다.

CMF(Color, Material, Finish) 분석이라 하여 즉 색상, 소재, 질감에 따른 휘도와 공간 인상의 변화를 설계에 면밀하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필자의 차인호 공간조명연구소에서는 조명공간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전문적인 CMF 팀을 운영하고 있다. 이것은 공간의 휘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에 같은 공간에 동일한 조명을 사용하더라도 CMF 분석과 설계의 차이에 따라 전혀 다른 공간을 연출하는 것이 가능하다.

같은 공간에 동일한 조명이라도 CMF에 따라 발생하는 휘도차이(P.075 <조명디자인> 2013)

건축 평면을 보면 실무경험이 많은 전문가는 공간이 어떻게 생겨서 어떤 느낌의 공간인지 그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지지만 처음 평면을 받아든 건축주라면 그 느낌을 그리기가 쉽지 않다. 도면에 그려진 보이드 공간이나 평면의 치수만 보고 공간의 넓이나 입면의 공간감을 머릿속에서 정확하게 인지하면서 시각화하기 힘들다.

작곡가나 뮤지션은 아무리 복잡한 악보를 보고 있어도 머리 속에서 어떤 곡인지 연주가 된다. 절대음감이라고 하는 뇌 속의 특별한 음원 플레이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주에게 우리 연구소의 건축조명 평면도를 보여주면 어떤 빛의 느낌이 되는지 연상하기 힘들어한다. 당연하다. 복잡한 배광의 다양한 조명이 조사 방향도 각기 다르기에 이것이 어우러져 공간에 만들어 내는 빛의 하모니는 마치 교향곡을 악보로 옮겨놓는 것과 같다. 그래서 25년 넘게 하고 있지만 어렵고도 재미가 있다. 평소 연구소의 실험실에서 오래도록 각 광원을 테스트하고 자주 보면서 느끼는 시간을 갖는 것은 매일 오랜 시간 악기를 연주하며 실험적으로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 보는 뮤지션의 연습 과정과 닮아 있다.

건축조명평면, 송도 오라클 피부과, 차인호 공간조명연구소 완성사례
“빛의 양이 아닌 질을 중시하는 건축조명에서
가장 중요한 빛의 요소는
‘조도’가 아니라 ‘휘도’이다.”

최근 들어 조명에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일반의 조명에 대한 인식은 ‘밝다’ 또는 ‘어둡다’ 이 두 가지로 양분된 획일화된 생각이 많다. 이는 아직 일상에서는 조명을 켜면 밝고 끄면 어두워지는 1실1등의 조명환경이 연출하는 공간을 마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빛의 질적 향상 측면에서 조명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어두운 곳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효율적으로 공간의 밝기감을 확보하고 사물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며 사용자의 시선과 동선을 쾌적하게 만들어 건강한 삶과 아름다운 공간의 연출에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휘도라는 개념을 보다 명확하게 이해하고 조도와 어우러져 체계적인 조명계획을 하는데 우리가 일상에서 전방 시야에 집중하고 인식하도록 진화되었다는 사실은 일상의 조명환경을 조도나 빛의 정량적 수치에만 의존하여 고민하지 않기 위해서도 중요하게 고민할 부분이다.


글과 사진_ 차인호 교수 : 차인호 공간조명연구소

성균관대학교 교수, 디자인학 박사(Ph.D. 건축조명+공간계획) 전문 건축조명설계사인 「차인호 공간조명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권위 있는 IALD(국제조명디자이너 협회)의 최고 레벨인 Professional Member이다. 일본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건축조명디자인 분야의 세계적인 거장 멘데 카오루(面出薰, LPA 대표)를 석사과정 지도교수로 모시고 건축조명디자인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면서 세계적 건축가가 설계하는 싱가폴 도시계획조명, 롯본기 모리타워 등 국제적 대형 건축조명 프로젝트에 참여해왔다. www.inholighti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