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7000년 전 고래사냥 어떻게… 반구대 암각화 '북적'
천전리 각석, 공룡 발자국 화석 등 볼거리 풍부
울산시 편의시설 정비… 선사인 숨결 꼭 보존을
오는 7월 부산에서 열리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를 앞두고 최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울산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를 둘러봤다.

암각화 인근에 위치한 울산암각화박물관에 주차를 하고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를 볼 수 있는 대곡박물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암각화박물관 입구에 울산 시내버스 정류장이 있다. 워낙 외진지역이다 보니 필자가 방문했을 때는 383번 노선뿐이었다. 그마저도 하루 3차례만 운행돼 대중교통 편으로 반구대 암각화 방문은 불편하다. 이에 따라 울산시는 지난달 24일부터 반구천 암각화 일대 순환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번 조치는 세계유산 등재 이후 급증한 방문객들의 접근성을 개선하고 차량 증가에 따른 주차난 교통혼잡 등 지역 주민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부산 세계유산위원회를 앞둔 시점에 선제적 조치로 마련했다.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를 보기위해 대곡천변에 임도같이 잘 정돈된 계곡 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깎아 지른 듯 반듯하게 각을 잡고있는 바위들이 퇴적층을 이뤄 층층이 쌓여있어 눈길을 끈다. 마치 인위적으로 쌓아놓은 듯 질서 정연한 바위들이 계곡을 따라 걸어가는 동안 멋진 자연의 선물을 만끽할 수 있다. 이곳은 7000년 전에는 고래를 잡았던 바다였는데, 지각이 융기하면서 청정한 푸른 산속의 계곡이 됐다고 한다.

천전리 암각화로 가는 도중에 처음 보는 동물을 목격했다. TV에서만 봤던 산양이다. 인적이 드문 산골이지만, 1m 정도 거리에서 사람을 마주쳐도 도망가지 않았다. 신기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마치 필자의 일행이 가는 길을 알고 있는 듯 인도하는 듯하다. 역시! 이곳은 7000년의 역사가 서려있는 청정 자연지역임을 느낄 수 있다.
어느 새 천전리 각석이 멀리서 보이기 시작한다. 천전리 각석은 대곡천이 굽이도는 언저리에 공룡 발자국 화석을 마주하고 넉넉한 전망데크에 둘러싸여 있다. 잠수교라 이름 붙여진 작은 다리를 지나며 맑디맑은 대곡천의 청정수를 느낄 수 있다. 저 맑은 물이 울산국가공단이 생겼을 때 공업용수를 공급해 줄 수 있었던 원천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산업 발전의 토대를 만들어준 은혜로운 물이다. 드디어 천전리 암각화에 다다랐다. 넓고 평평한 암각화에는 각양각색의 문양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 문양들은 상형문자, 기하학적 기호, 옛 한자로 보이는 문자 등이 혼재 되어 있다.
7000년 전 구석기시대와 철기시대, 신라시대의 문자 등이 함께 있는 것이 특이하다. 한반도 고대인의 고래사냥이 최소 7000년 전부터 시작됐음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암각화의 전체적인 내용은 사냥 농경 등 풍요한 생활을 기원하는 것이다. 암각화 안내판의 설명을 읽은 후 유물을 다시 보면 감동이 더 커진다.
이제 자리를 옮겨 공룡의 흔적을 찾으러 갔다. 일명 천전리 공룡 발자국 화석. 발자국 화석은 천전리 암각화 바로 정면의 대곡천 건너편 널찍한 바위군락에서 대규모로 확인되고 있다. 넓은 평상 같은 바위에 자그마한 발자국들이 보인다. 반대 방향인 반구대 암각화 쪽으로 넘어가면 더 많은 공룡 발자국 화석들을 볼 수 있다.

잠시 바위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중 맑은 대곡천과 선사인들의 생활을 느낄 수 있는 고대의 암각화, 거대한 각석의 암벽으로 둘러싸인 주변의 경관에 탄복했다. 국내외 많은 곳을 다녀봤지만, 선사인의 숨결이 피부로 느껴지는 듯한 이 느낌은 처음 가져보는 특이한 기분이다.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로 향한다. 최단 거리로 이동하기 위해서 앞서 왔던 계곡 길을 되돌아 간다. 조금 전에 만났던 산양이 우리 일행에게 미소를 짓는다. 암각화 박물관 옆 갈림길에서 반구대 방향으로 향한다. 전면에 특이하고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반구대(盤龜臺)가 나타난다. 반구대는 엎드린 거북을 닮은 바위언덕이라는 의미로 이곳 지명이 반구대 암각화, 반구천 등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반구대를 지나 ‘반고서원 유허비(槃皐書院 遺墟碑)’가 있는 반구천 옆 거대한 바위에 한자로 반구라는 큰 명문이 새겨져 있다.

길을 따라 집청정(集淸亭)이 자리하고 있다. 집청정은 1713년(숙종 39년)에 운암 최신기가 지은 경주 최씨 문중의 정자로 당시 문인들이 모여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던 곳이다. 현재는 다실과 예절교육의 장으로 활용된다. 그 옆에는 포은 정몽주, 회재 이언적, 한강 정구 선생을 기리기 위해 언양 유생들이 1712년(숙종 38년)에 세운 반구서원(盤龜書院)이 있다. 하지만 대문이 굳게 닫혀 있어 내부를 볼 수는 없어 아쉬웠다.
대곡마을에 도착해서 오곡교(五曲橋)로 접어든다. 대나무 숲으로 가려진 오곡교 끝에는 세계문화유산 지정 이후에 급격히 증가한 방문객을 관리하기 위한 방문자 계수기와 CCTV가 설치돼 있다.

길가 조그만 바위에 손바닥 만한 발자국이 눈에 띈다. 이름은 라틴어로 ‘노바페스 울산엔시스(Novapes Ulsanensis)’다. ‘울산에서 발견된 새로운 발자국’이라는 뜻이다. 분석결과 도마뱀과 가까운 파충류 코리스토데라(Choristodera)의 발자국이라고 한다.

대곡리 연로개수기(硯路改修記) 문구가 일행의 눈길을 끌었다. 연로개수기는 반구천 가장자리 암면에 새겨진 명문이다. 이 길은 연로라는 이름이 붙어있으며, 청나라 순치 12년(1655년·조선 효종 6년) 이전에 개설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로는 벼룻길이라는 뜻으로 ‘미끄러운 바윗길’ 또는 ‘벼랑길’ 등으로 해석된다.
이제 오늘 걸음의 최고 클라이막스인 반구대 암각화를 영접했다. 잔잔한 수면위로 웅장한 암벽에 새겨진 선사인들의 기록이 눈앞에 나타났다. 망원경으로도 잘 보이지는 않지만 현장에서 바라보는 반구대 암각화의 위용은 가히 경외심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박물관의 공식적인 행사로 평소 접근이 차단되어 있는 반구대 암각화의 바로 코앞까지 가서 실물을 확인하는 호사를 누렸다.
7000년의 역사를 함께해온 암각화를 배경으로 일행과 인생 샷을 남겼다. 돌아오는 길에 반고서원 유허비(槃皐書院遺墟碑) 살펴 봤다. 이 비석은 고려 말 충신 정몽주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정몽주는 1375년 정치적 이유로 유배되었으며, 반구대에서 시를 짓는 등 그의 흔적은 반구천 주변 지역 곳곳에 남아있다.
현재 반구대 암각화 인근에는 방문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다양한 문화사업과 개발사업이 진행중이다. 편의시설도 보강될 수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청정자연의 깨끗함과 선사인의 숨결을 가슴깊이 느낄 수 있는 신비함을 영원히 보존 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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