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리로 시작해 재계 28위에 오른 남자의 정체

출처 : KBS

거평그룹 나승렬 전 회장
초졸 출신 인수합병 귀재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몰락

아이스크림 회사의 경리부서에 입사해 사업 전반의 흐름을 파악한 샐러리맨이 설립한 기업은 한때 재계 28위에 오를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한 초졸 샐러리맨 신화를 세운 주인공은 거평그룹의 나승렬 회장이다.

거평그룹의 나승렬 회장은 설립 18년 만에 재계 28위에 오를 정도로 입지전적인 대기업 집단을 일궈냈다. 다만, 그의 신화는 19년 만에 몰락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나승렬 회장이 세운 거평그룹은 왜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까?

당초 거평그룹은 설립 18년 만에 재계 28위에 오르며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대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창업주인 나승렬 회장이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한 초졸 출신으로 알려지며 재계의 이목이 쏠렸다. 실제로 그는 어린 시절 가난한 집안으로 인해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한 뒤 1967년 서울로 상경해 낮에는 공사판을 전전하고 저녁에는 경리학원에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숫자와 셈에 밝았던 그는 한 전자 회사를 거쳐 1970년대 아이스크림 업체로 유명했던 삼강산업에 취업해 경리부서에서 일하며 사업 전반의 흐름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사업 전반의 흐름을 읽을 수 있게 된 나승렬 회장은 1979년 삼강산업에서 퇴사한 뒤 거평그룹의 뿌리인 ‘금성주택’을 설립한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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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금성주택은 부동산 기획개발을 필두로 개발에 적합한 땅을 선택해 시공을 맡기는 사업을 주로 영위했다. 여기에 1980년 부동산 시장이 호황을 맞으며 거평그룹은 연희동, 서초동에 주택을 건설해 큰 수익을 올린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나승렬 회장이 88 올림픽을 전후해 주택 수요가 높아질 것을 정확히 예측했고, 1988년 서초동에 지하 6층~지상 19층의 오피스텔 ‘남서울 센추리 오피스텔’ 분양에 성공하며 거평그룹의 신화를 써내리기 시작했다.

당시 경기도 이천에서도 300세대의 아파트, 연희동 빌라와 역삼동에서도 11층 규모 빌라 분양을 성공적으로 완료한 뒤 1990년 금성주택은 거평건설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후 콘도미니엄, 거평관광, 거평식품 등 3개의 계열사를 갖게 되며 그룹의 면모를 갖췄다. 분양사업을 통해 32억 원의 자금을 마련한 거평그룹은 1991년 대동화학을 인수하게 된다.

재계에 따르면 당시 대동화학은 지난 1980년 12월부터 법정 관리에 들어간 회사라 시장에서 누구도 관심 갖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나승렬 회장은 대동화학 소유의 성동구 광장동 일대의 공장부지 가치를 높게 평가하며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의 판단과 달리 나승렬 회장의 판단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이는 장부상 가격이 3억 원에 불과했던 대동 화학의 공장부지 약 1만 6,500㎡(5,000평)을 한전 주택조합에 3.3㎡(1평) 당 850만 원에 팔았는데, 매각가가 425억 원에 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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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더불어 496억 원의 자본잠식 상태였던 대동 화학의 재산 재평가를 실시해 토지와 건물 등에서 세후 755억 원의 차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인수 2년 만인 1993년, 대동 화학은 법정관리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 시기 거평그룹은 거평개발, 거평메디스클럽 등을 설립했고, 1993년 동대문에 12만 3,750㎡(3만 7500평), 지하 6층~지상 22층의 패션타운 ‘거평프레야’를 지어 성공적으로 분양하며 본격적으로 몸집을 불린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이런 나승렬 회장의 판단은 그룹을 몰락의 길로 이끄는 촉진제로 작용했다. 대동 화학 인수로 재미를 본 나승렬 회장은 1994년 공기업 민영화 1호로 선정된 대한중석 인수전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대한중석은 제조업을 영위하던 회사로 산업은행이 공개경매를 주도했으나 두 번의 유찰을 겪은 상태였으나, 영풍과의 인수전에서 1,150억 원을 써내며 15억 원 차이로 거평그룹이 이를 인수하게 된다.

대한중석의 인수 직후 계열사로 대한중석건설, 중석공영을 설립하며 주택건설 사업에 나선 거평그룹은 이후 라이프유통, 한국양곡유통, 반도체 회사인 한국시그네틱스, 포스코켐, 정우석탄화학 등을 인수해 건설, 유통, 제조, 석유화학 업종에도 진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재계에서는 나승렬 회장을 두고 ‘인수합병의 귀재’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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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당시 인수자금으로 2,500억 원이 넘는 돈이 투자됐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대한중석에 661억 원, 라이프유통에 274억 원, 한국시그네틱스에 500억 원, 포스코켐·정우석탄화학에 1,151억 원 정도 투입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나승렬 회장이 인수한 계열사 자산을 담보로 다른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을 이용했기에 가능한 방식으로 평가받는다. 즉, 계열사끼리 꼬리를 물고 있어 내실 다지기 없이 외형을 확장한 것이다.

이후 금융업에 진출한 거평그룹은 1996년 강남상호신용금고와 새한종합금융을 인수, 1998년 한남 투자증권을 인수. 이 사이 태평양패션, 삼미화인세라믹스 등도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1997년 거평그룹은 재계 28위에 오른다. 다만, 내실을 다질 기간도 없이 성장한 탓인지 거평그룹은 1996년 1조 5,0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고도 영업이익은 200억 원, 1997년 2조 원의 매출에도 이익은 200억 원을 밑도는 수준을 기록한다.

당초 한보그룹 부도 사태 이후 부도 후보 업체 리스트에 단골로 등장하던 거평그룹은 결국 1998년 19개의 계열사를 4개로 축소한다는 구조조정안을 발표하며 해체의 길을 걷게 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거평제철화학과 거평 화학, 거평시그네틱스, 한남 투자신탁 증권 등 4개 사가 살아남았지만, 다른 그룹으로 모두 인수됐고 나머지 계열사는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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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거평그룹의 나승렬 전 회장은 금융기관을 인수, 계열사에 편법으로 자금을 지원한 혐의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아 수감생활을 하다가 건강 문제로 형집행정지를 받은 후 2008년 광복절 특사로 형 집행을 면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더하여 전국 고액 체납자에 이름을 올린 그의 체납세금은 45억 2,100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돈이 한 푼도 없다는 나 전 회장의 주장과 달리 2005년 아들 나영돈 씨가 제빵업체 ‘기린’의 우호 지분 포함 20.8%를 소유한 것이 언론에 공개돼 비난받기도 했다. 다만, 2023년 그가 향년 78세의 나이에 숙환으로 사망하며 그의 신화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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