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학중앙연구원 지방 이전을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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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K-드라마, K-영화, K-문학은 세계인의 일상과 상상력을 파고들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약 250명 규모의 연구 중심 기관으로, 이전에 따른 지역 경제 파급효과는 제한적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기능이전 없이도 지역 균형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전 문제는 단순한 기관 입지 조정이 아니라 한국학과 K-컬처 경쟁력을 어떻게 지켜 갈 것인가에 대한 중대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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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K-드라마, K-영화, K-문학은 세계인의 일상과 상상력을 파고들었다. 한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거대한 흐름의 뿌리에는, 우리 역사와 사상·생활·문화를 오랜 시간 천착해 온 '한국학'이 있다. 그 한국학의 심장부가 바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이다. 장서각의 왕실 고문서, 50만여 권의 전문 도서, 국내외 연구자와 유학생이 모이는 한국학대학원이 한데 어우러진, 말 그대로 K-학문의 본산이다.
이 기관이 공공기관 2차 지방이전 대상으로 검토되는 중이다.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자료·인력·네트워크가 유기적 생태계를 이루는 연구기관까지 동일한 기준으로 이전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재고가 필요하다.
장서각에는 약 23만 점의 유물이, 도서관에는 50만여 권의 자료가 보관되어 있으며, 조선 왕실 기록과 고문헌 등 귀중한 사료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자료들은 단순히 옮길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온·습도 변화나 이동 중 진동만으로도 훼손될 수 있는 문화재다. 수십만 점을 전량 이관하는 과정에서 위험을 완전히 차단할 수 없으며, 한 번 파손된 유물은 복원이 불가능하다. 또한 장서각과 주요 연구시설은 1970년대부터 한국학 연구사와 함께 성장해 온 역사 공간으로, 이를 해체하고 이전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역사성의 단절을 의미한다.
한국학 관련 기관은 이미 영남·호남·충청·강원 등 전국에 분산되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나, 수도권에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유일한 종합 한국학 연구기관이다. 이 기관마저 이전된다면 수도권의 한국학 전문 연구 허브가 사라져 지역적·기능적 공백이 생기고 연구 생태계 전반이 약화될 것이다. 세계 주요 대표 연구기관들이 수도권에 위치해 국가 이미지를 상징하는 현실도 간과할 수 없다.
수도권은 국내외 연구자와 정책 결정자, 출판·방송·콘텐츠 산업, 해외 공관과 국제기구가 모여 있는 '지식·문화 네트워크의 중심'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이 중심에서 국가기관·대학·연구소·문화산업과 긴밀히 협력하며 연구 성과를 정책과 콘텐츠로 확산해 왔다. 이 연결고리가 한 번 끊기면 회복에는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
국제화 측면의 손실도 심각하다. 현재 한국학대학원에는 국제공항 접근성과 수도권 인프라를 고려해 입학을 결정하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적지 않다. 이전이 현실화되면 신입생 지원율 하락과 외국인 유학생 유치력 급감은 거의 예견된 수순이다. 국제 학술대회와 연구자 교류 역시 위축될 수밖에 없으며, 결국 국제 한국학 연구의 중심축이 한국이 아닌 해외로 옮겨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국제적 위상 추락 뿐만 아니라 정책의 실효성도 냉정히 검토해야 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약 250명 규모의 연구 중심 기관으로, 이전에 따른 지역 경제 파급효과는 제한적이다. 반면 특수 수장고와 연구·교육시설 신축 및 기존 시설 정리에 드는 비용은 막대하고, 연구 인력 이탈까지 더해지면 결국 연구 역량 약화와 국가 학문 자산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기능이전 없이도 지역 균형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이 기관이 보유한 자료·데이터와 연구·교육 콘텐츠는 전국에서 활용 가능한 공공 자산이다. 지방을 돕는 더 현명한 방식은 지역 한국학 기관과의 공동 연구·전시, 지역 대학·지자체 연계 교육 프로그램, 디지털 장서각·온라인 강좌 등으로 '지식·콘텐츠의 분권'을 실현하는 것이다. 수도권 기능을 유지하면서 지방 거점기관과 연계하는 '네트워크형 균형발전 모델'이야말로 한국학의 국제 경쟁력을 지키며 지역 발전에도 기여하는 방안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전 문제는 단순한 기관 입지 조정이 아니라 한국학과 K-컬처 경쟁력을 어떻게 지켜 갈 것인가에 대한 중대한 선택이다. 지방소멸 방지와 균형 발전이라는 대의에는 공감하지만, 한국학중앙연구원만큼은 그 특수성과 대체 불가능성을 인정해 예외로 두어야 한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하나다. 한국학의 중추 기관을 지방으로 옮기는 선택이, 한국학과 K-컬처의 장기적 경쟁력을 감수하면서까지 감행할 만큼 타당한가?
임정빈 성결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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