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문화가 된 ‘쫄쫄이’…룰루레몬 성공엔 창의성 있었다 [언박싱 프로-룰루레몬]
비싼 가격에 ‘요가복의 샤넬’ 별칭
가상의 ‘슈퍼걸’ 기반 웰빙 철학 구축
요가강사·에듀케이터로 입소문 강화
빅토리아시크릿도 탐낸 브랜드로 성장
애슬레저 경쟁 남성 소비자 영역 확장

“룰루레몬은 매트 위에서뿐 아니라 매트 밖에서도 사람들이 목적 있는 삶을 살도록 일깨워주며, 세상을 조금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곳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존재합니다.”(룰루레몬 브랜드 목표)
룰루레몬은 ‘요가복의 샤넬’이라는 수식어로 유명하다. 비싼 가격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레깅스 한 벌이 10만원 안팎, 20만원 가까운 제품도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룰루레몬은 가격만 언급하기엔 이야깃거리가 참 많은 브랜드다. 창립한 지 30년도 안 돼 나이키, 아디다스 등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여성들이 주로 즐기던 요가라는 운동과 그 문화를 주류로 끌어올린 주역이기도 하다.
![룰루레몬 창업자 칩 윌슨이 2001년 룰루레몬 밴쿠버 매장 앞에서 룰루레몬의 브랜드 디자이너였던 아내 섀넌을 촬영한 사진. [칩 윌슨 X 계정]](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26/ned/20251126113844969dceq.jpg)
전봇대에 붙은 요가 수업 광고, 기회가 찾아오다
1998년 캐나다 밴쿠버 길거리. 42세 사업가 칩 윌슨의 눈에 전봇대에 붙어있는 요가 수업 광고가 들어온다. 잘 나가던 보드웨어 브랜드 ‘웨스트비치’를 매각하고 휴식을 취하던 차였다. 수영, 스케이트보드, 레슬링, 철인3종경기까지 꾸준히 운동을 즐기며 누적된 등 통증에 시달리던 그는 요가에 입문하게 된다.
요가의 매력에 빠진 것은 윌슨만이 아니었다. 한 달 만에 수강생이 6명에서 30명으로 늘어났다. 윌슨은 서핑, 스케이트보드, 스노보드에 이어 요가가 다음 유행의 정점에 설 것이란 직감을 갖게 된다. 그리고 같이 수업을 듣던 사람들의 복장을 유심히 살펴봤다. 대부분 땀에 젖어 동작을 불편하게 하는 헐렁한 면옷 차림이었고, 요가 강사가 입은 하의도 무용복 브랜드의 제품이었다. 얇은 원단 때문에 몸을 구부리면 속이 비치는 치명적 단점도 있었다.
윌슨에게 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조금 더 두꺼운 원단을 사용해 신축성이 있으면서도 속이 비치지 않고 여성의 Y라인도 부각되지 않는 바지가 있다면 어떨까. 땀을 잘 흡수하고 냄새도 배지 않는 기능성 원단을 찾아 세상에 없던 요가 팬츠를 만든다면 반응이 좋을까. 이런 기능이 있는 바지가 있다면 3배쯤 비싸더라도 구매할 의향이 있냐고 강사에게도 물었다. 대답은 ‘예스’. 그 길로 윌슨은 여성용 요가복 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기능성 스포츠웨어에 일가견이 있었던 그에게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는 무용복 바지보다 가벼우면서 광택이 나지 않고 속이 비치지 않는 원단을 찾았다. 요가 동작을 편하게 하기 위해 신축성이 있으면서도, 살과 마찰이 일어나지 않도록 내부에 돌출된 솔기를 없애야 했다. 6개월 이상의 준비 기간을 거쳐 마침내 그는 원하는 원단을 개발하게 된다. 룰루레몬 제국을 건설할 준비가 시작된 것이다.

‘오션’이라는 이름의 슈퍼걸
윌슨이 여성을 위한 요가복을 구상하던 무렵은 거대한 시대적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였다. 금녀의 구역처럼 여겨지던 스포츠에 여성들이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여성용 운동복 시장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여성들은 사이즈가 작거나 세탁으로 줄어든 남성용 제품을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기존 대형 스포츠 브랜드들이 낸 여성용 운동복은 단순히 사이즈를 줄이거나 핑크색을 넣는 수준에 그쳤다.
그가 만들 여성용 요가복 브랜드는 완전히 새로워야 했다. 남성과 경쟁 중심의 스포츠 브랜드와는 출발부터 달라야 했다. 윌슨은 가상의 여성을 이상적인 고객으로 설정하고 그를 위한 브랜드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녀의 이름은 ‘오션(Ocean)’. 생일은 9월 28일, 나이는 32살인 여성이다. 룰루레몬이 탄생한 1998년 오션은 대학을 막 졸업하고 전문직종에 취업하게 될 24세의 ‘슈퍼걸’로 가정됐다.
신축성 있는 원사를 활용해 몸에 꼭 맞는 요가복, 일반 운동복보다 3배 비싸더라도 슈퍼걸이라면 기꺼이 구매할 만한 요가복. 룰루레몬은 이렇게 탄생하게 된다. 1호 제품은 검정색 라이크라 원단에 나팔 라인으로 디자인된 플레어 팬츠, ‘부기 팬츠’였다.
1999년 여름이 되자 윌슨은 밴쿠버 거리에서 이 부기 팬츠를 입고 쇼핑을 하거나 강아지와 산책하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여성들을 마주치기 시작했다. 요가복이 요가 수련장을 넘어 거리에 진출하는 ‘스트리트웨어’가 될 수 있다는 그의 전략이 옳았다는 게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20년 넘게 룰루레몬은 ‘사이언스 오브 필(Science of Feel)’이라는 고유한 디자인 철학을 이어왔다. 기술과 혁신을 통해 착용자에게 최고의 느낌(Feel)을 주는 데 중점을 둔 전략이다.

“우리의 경쟁상대는 나이키”…새로운 소통 문화 이식
2001년 윌슨은 직원들을 모아 놓고 “이제 우리의 경쟁 상대는 나이키”라고 호기롭게 선보한다. 북미 전역에 300개의 매장을 열고, 더 나아가 나이키 이사회에서 룰루레몬 때문에 대책 회의를 하게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룰루레몬은 캐나다 밴쿠버에 매장 한 곳, 연 매출은 겨우 400만달러에 불과하던 상황이었다. 허무맹랑하게 들릴 수 있는 목표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절반을 달성하게 된다. 몇 년 뒤 나이키는 룰루레몬을 연구하기 위해 별도의 분석팀을 운영하게 됐다.
룰루레몬이 처음부터 경쟁 상대로 나이키를 지목한 것은 기존 스포츠 업체들과 완전히 차별화해야 한다는 메시지였을 것이다. ‘남성’, ‘승리’라는 키워드로 대변되는 나이키와 달리, 룰루레몬은 애초부터 여성 시장을 겨냥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었다. 의사결정 과정도 일반 기업들과 달랐다. ‘톱다운’이 아닌 ‘보텀업’ 구조였다. 임직원 중 여성 비중도 70% 이상이다. 룰루레몬은 처음부터 세련되고 활동적인 20~40대 여성들로 구성된 ‘포커스 그룹’을 운영했다. 어떤 스포츠 브랜드를 좋아하는지부터 라이프스타일, 운동, 미용시술, 쇼핑 등 다방면으로 젊은 여성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했고, 여기에서 통찰력을 얻었다. 룰루레몬이 나일론과 라이크라를 최적의 비율로 혼합해 개발한 소재 ‘루온’이 시장에 통할 것이란 확신을 굳힌 것도 이 모임에서였다.
‘앰배서더’, ‘에듀케이터’에 대한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요즘 많은 브랜드들이 광고 모델을 앰배서더라고 부르고 있는데, 룰루레몬은 일찍이 요가 강사들을 중심으로 하는 앰배서더 제도를 운영해 왔다. 윌슨에게 처음 요가를 가르쳐준 강사 피오나 스탕과 맺은 돈독한 관계에서 발전한 제도다.
룰루레몬은 정기 디자인 회의에 요가 강사들을 초청해 제품을 시험하고 평가하도록 했다. 그 대가로 강사들의 요가 수련장 광고 사진을 찍어주고 룰루레몬의 로고를 붙여 지역 신문에 냈다. 단순히 평가단 차원을 넘어 룰루레몬 브랜드의 홍보대사이자 파트너로 함께한다는 의미였다. 지금도 룰루레몬은 지역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요가 강사, 피트니스 트레이너, 러너들로 앰배서더를 꾸리고 있다.
에듀케이터는 판매사원을 일컫는 룰루레몬만의 용어다. 직역하면 ‘교육자(Eudcator)’인데, 고객들과 대화를 통해 룰루레몬의 제품과 문화, 브랜드에 대한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고, 고객들의 현명한 구매 결정을 돕는 역할을 한다. 룰루레몬이 매장 직원을 에듀케이터로 부르게 된 것은 매장 철학과도 관련이 있다.
룰루레몬은 버티컬 리테일 영업, 즉 직영점 체계를 고집해 왔다. 룰루레몬 매장을 찾는 고객들은 일반 유통 채널과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룰루레몬의 매장은 운동복 쇼핑을 넘어 건강한 삶을 나누는 웰빙 커뮤니티를 지향했다.
직원들도 단순히 ‘잘 어울린다’거나 ‘할인 중’이라는 말로 고객을 권유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됐다. 높은 가격이 타당한 기능이라는 점을 이해시키고, 제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알리는 것이 중요한 역할이었다. 즉 에듀케이터와 앰배서더는 매장을 중심으로 고객, 앰배서더, 지역사회를 연결시키고 유대감을 형성시키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룰루레몬이 지난 6월 서울 성수동에서 연 ‘얼라인 컬렉션’ 출시 10주년 기념 행사에서 룰루레몬의 앰배서더이자 요가 강사인 ‘제이사’의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룰루레몬 제공]](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26/ned/20251126113845709thmn.jpg)
빅토리아시크릿, 갭도 탐낸 룰루레몬
룰루레몬은 2004년 미국의 유명 속옷 브랜드 ‘빅토리아시크릿’으로부터 인수에 관심이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는다. 룰루레몬은 2003년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에 첫 해외 매장을 낸 상태였는데, 브랜드 성공 가능성을 확신하는 계기가 됐다. 요가복이란 카테고리에선 이미 세계 정상급이란 자신감을 얻었다.
유통 대기업과 사모펀드들의 ‘러브콜’은 빅토리아시크릿이 끝이 아니었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 ‘갭(GAP)’도 그중 하나였다. 갭 매장에서 룰루레몬 제품을 판매하는 게 어떠냐며 2억달러를 투자한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룰루레몬으로부터 퇴짜를 맞은 갭은 결국 2008년이 돼서야 ‘애슬레타’라는 신생 요가복 브랜드를 1억5000만달러에 사들인다. 그 사이 룰루레몬은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까지 한, 주목받는 글로벌 브랜드가 돼 있었다.
빅토리아시크릿의 편지를 받은 그해 룰루레몬은 호주 멜버른에 아태지역 첫 매장을 열게 된다. 유럽과 아시아에 첫 발을 내딛는 것은 2014년(영국 런던·싱가포르)의 일이다. 한국에는 2016년 5월 서울 청담동에 첫 매장을 열며 진출하게 된다. 그 사이 룰루레몬은 2011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10% 이상 성장하며 여성 기능성 의류 시장의 95%를 장악했다. 2025년 10월 현재 룰루레몬은 전 세계 20여개국에 걸쳐 784개의 매장을 운영하는 거대 브랜드로 성장했다. 기업가치로 따지면 전 세계 스포츠 브랜드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룰루레몬의 시가총액은 200억달러를 넘는다. 룰루레몬보다 위에 있는 기업은 나이키와 아디다스, 중국의 안타스포츠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아식스, 스케처스, 언더아머, 푸마 등 보다 많은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브랜드를 웃도는 규모다.
‘애슬레저’ 경쟁자들 사이에서도 굳건한 이유
룰루레몬의 거침없는 성장에 대해 2014년 글로벌 패션 매체들은 ‘애슬레저(Athleisure)’라는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 붙인다. 운동(Athletics)과 여가(Leisure)의 합성어로, 운동복과 일상복의 경계를 허문 패션 트렌드를 뜻한다. 국내에선 코로나19를 계기로 본격 확산된 트렌드인데, 사실 룰루레몬은 20년 전부터 이런 현상을 예상해왔던 것이다. 이제 애슬레저 시장에는 쟁쟁한 경쟁자들이 등장해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 ‘요가복의 에르메스’라는 알로요가와 뷰오리가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고, 토종 브랜드인 젝시믹스와 안다르도 국내를 넘어 아시아 시장을 노리고 있다.
선구자인 룰루레몬도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00년대 후반부터 남성 시장이 차세대 먹거리가될 것이라고 보고 남성 소비자와의 접점을 강화했다. 남성의 주요 부분의 압박을 분산시켜 자유로운 움직임을 선사하는 ABC(Always Be Comfortable) 팬츠를 내놓기도 했다. 2020년, 남성 제품 매출은 마침내 10억달러를 달성한다. 그해 전체 매출이 44억달러였으니, 전체의 4분의 1이 남성 제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운동을 할 때도 헐렁한 옷을 선호한다는 Z세대의 등장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 예측하기 어렵지만 SNS(사회관계망서비스) 팔로워 수를 보면 경쟁자 대비 앞서나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인스타그램에서 룰루레몬의 팔로워 수는 536만명으로 알로요가(430만명), 뷰오리(105만명)을 웃돈다. 틱톡 역시 마찬가지다. 팔로워 수 130만명으로 알로요가(60만명), 뷰오리(58만명)를 2배 이상 넘어서고 있다.
“최고경영자(CEO)가 창의성을 지켜내지 못하면 회사는 오로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회피하는 데 급급해 운영되는 구태의연한 생필품 리테일 기업으로 전락하고 만다.” 창업자 칩 윌슨의 말이다.
강승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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