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태지역 對중국 대응체제 취약… ‘광역 안보협력체제’ 구축 절실 [Deep Read]
이시바 日총리 ‘아시아판 나토’ 창설 제안했지만… 집단 군사동맹체 구축엔 장애 많아
역내 동맹·안보 체제 소속국가 포괄해 ‘거대한 안보 우산’ 씌우고 나토와 협력해야
이달 초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신임 일본 총리의 취임을 계기로 ‘아시아판 나토’ 창설 구상이 국제사회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아시아에 나토와 같은 지역군사동맹이 필요하다는 주장 또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역내 각국 이해관계의 편차가 크고 중국의 반발이 예상되는 상황이어서 이시바 총리의 구상이 현실화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대중국 대응체제
1950년대 냉전 초기에 미국은 동남아와 남태평양 및 중동 등 아시아 3개 지역에 나토와 유사한 지역군사동맹을 구축했었다. 하지만 이들은 1970∼1980년대에 모두 해체됐고, 현재 아시아에서 살아있는 동맹체는 미국과 한국·일본·호주·필리핀 사이의 양자동맹뿐이다. 그나마 미·필리핀 동맹은 1980년대 이후 거의 사문화됐다가 최근 들어 복원이 시작됐을 뿐이다. 친중국 성향 태국과의 동맹조약은 계속 사문화 상태다.
그 밖에 미국의 정식 동맹국은 아니지만 사실상의 동맹에 준하는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들이 있다. 뉴질랜드는 1980년대 미국과의 관계 악화로 동맹에서 탈퇴했으나 미국의 최상위 안보협력체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의 회원국이며, 미·호주·뉴질랜드 3자 안보협력체 일원이다. 뉴질랜드는 중국에 대항하는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작전’에 참여하고 있다. 대만은 미국 의회가 1979년 제정한 대만관계법에 의거, 동맹에 준하는 안보 지원을 받고 있다.
이처럼 자유민주진영 가운데 아시아지역 안보체제는 유럽의 나토에 비해 상당히 취약하다. 이 때문에 미국은 미·중 간 패권 대결 국면 속에서 중국의 군사적 팽창을 견제하기 위해 해외 주둔 군사력을 대거 동아시아로 이동 배치하는 한편, 아태지역 주요 거점에서 동맹국과 우방국을 소규모 다자안보협력으로 연결하는 ‘격자형(lattice-like) 안보체제’를 구성해 가고 있다. 2021년 오커스(AUKUS) 결성과 2022년 한·미·일 3자 안보협력 출범, 그리고 2024년 남중국해의 미·일·필리핀 안보협력체 출범이 대표적 사례다.
소지역별 안보체제와는 별개로 더 넓은 단위의 안보협력 체제를 형성하려는 움직임도 진행 중이다. 2021년 인태지역 전체를 포괄하는 쿼드(Quad) 정상회의 체제가 출범한 데 이어, 2022년부터 매년 나토 정상회의에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를 초청해 유럽 동맹국과 아시아 동맹국을 연결하려 하고 있고, 미·영·호주로 구성된 오커스에 한국과 일본을 참여시키려는 조짐도 있다.
◇아시아판 나토 구상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최근 미·중 신냉전체제 출범 이후 아시아에도 나토와 같은 지역군사동맹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학계와 언론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됐다. 지난해 말엔 나토에 상응하는 ‘인도태평양조약기구(IPTO)’ 설치 문제를 검토하기 위한 태스크포스 설치 법안이 미국 하원에 제출되기도 했다.
이러한 가운데 이시바 총리는 총리 선출 직전인 9월 25일 미국 허드슨연구소 기고문을 통해 중·러·북한에 대항하는 ‘아시아판 나토’ 창설과 그 틀 내에서의 미 핵무기 공유를 제안했다. 미국의 반대 입장이 확고한 핵 공유 문제는 논외로 치더라도, 그의 아시아판 나토 창설 제안은 미국이 지향하는 격자형 안보체제와 상이한 두 가지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는 현재 권역별 안보협력 형태로 형성되고 있는 아시아지역 안보체제를 인태지역 전역을 포괄하는 단일 광역 안보체제로 통합하자는 것이다. 둘째는 이를 단순한 안보협력체제가 아닌 나토와 같은 구속력 있는 군사동맹 체제로 격상하자는 것이다.
이시바 내각이 이 사안을 공식 제안하기 위해서는 먼저 평화헌법과 비핵 3원칙으로 묶여 있는 일본의 대외 군사활동에 대한 국내적 합의가 선행돼야 할 것이며, 미국 등과 사전협의를 거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언제 어떤 제안이 공식 발표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과거 아태지역 전체를 망라하는 광역 안보협력체제 구상이 논의될 때마다 아태지역의 지리적 광활성과 안보 환경의 상이성, 그리고 공통의 관심사를 찾기 어려운 현실적 제약이 반대 논리의 주류를 이루었다. 하지만 지금은 과학기술과 무기체계의 발전으로 지리적 거리가 많이 단축됐고, 중국의 점증하는 군사적 위협이 공통의 현안으로 부상해 아태지역 전체가 함께 협력하고 논의할 공동 관심사가 많아진 만큼 그런 한계성은 이제 별문제가 아니다.
◇광역 안보협력체제
그러나 이시바 총리의 제안처럼 광역 안보협력체제를 나토와 같은 구속력 있는 군사동맹체로 격상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평화헌법의 범주를 넘어서는 일본의 군사활동을 일본 국민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며,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를 우려하고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서 대중국 공동 군사행동에 동참하기를 꺼리는 한국 정부도 찬성이 쉽지 않을 것이다. 나토식 다자동맹 출범 때 기존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이 위축될 가능성에 대한 한·미·일 3국 내 우려도 큰 장애가 될 것이다.
이런 장애 요인 때문에 아태지역에 나토식 군사동맹 체제를 구축하는 구상은 쉽사리 실현되기 어려워 보인다. 설사 실현되더라도 긴 세월이 소요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그 대안으로 다자군사동맹과 다자안보협력의 장점을 모두 살려서 아태지역에 존재하는 자유민주진영의 기존 동맹체제와 안보협력체제를 모두 포용하는 광역 안보협력체제를 구축하는 안이 떠오른다. 그렇게 된다면 자유민주진영이 아태지역에서 직면한 다양한 안보 현안들을 해결할 효율적 시스템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한·미동맹, 미·일동맹, 미·호주동맹, 한·미·일 안보협력, 미·일·필리핀 안보협력, 미·호주·뉴질랜드 안보협력, 쿼드, 오커스, 파이브 아이즈 등 기존의 동맹체와 안보협력체를 유지한 채 이들 체제와 소속국들을 모두 포괄하는 광역 안보협력체를 신설함으로써, 아태지역에 거대한 ‘광역 안보협력의 우산’을 씌우고 유럽의 나토와 수평적 협력관계를 설정하는 복합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선거를 목전에 두고 여러 변수가 상존하는 상황을 감안할 때, 그러한 광역 안보협력체의 결성은 미국의 동맹국들이 차기 미국 정부 동맹정책의 혼돈과 불확실성에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한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안보정책의 연속성
아시아에서 자유민주진영을 포괄하는 광역 안보협력체의 존재는 한국 국내 정치 판도와 한·일 관계의 굴곡에 따라 격변을 거듭하는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의 불안정성을 보완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또 우리 안보정책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세종연구소 이사장, 전 외교부 북핵대사
■ 용어 설명
‘평화헌법’은 제9조 1항 전쟁의 포기, 제2항 전력의 포기 및 교전권 부인 등 3가지 규범적 요소를 규정한 일본 헌법. 아베 신조 내각이 ‘집단적 자기 방위’라는 새로운 해석을 채택해 논란을 빚기도 함.
‘격자형(lattice-like)’이란 미국은 물론 동맹국들 간에도 서로 촘촘하게 연결된 네트워크형 안보체제. 이는 미국을 중심으로 동맹국들이 주변 바큇살처럼 연결된 ‘hub and spokes’와 비교됨.
■ 세줄 요약
對중국 대응체제 : 자유민주진영 가운데 아시아지역 안보체제는 유럽의 나토에 비해 상당히 취약. 미국은 아태지역 주요 거점에서 동맹국과 우방국을 소규모 다자안보협력으로 연결하는 ‘격자형 안보체제’를 구성 중.
아시아판 나토 구상 : 이시바 신임 일본 총리는 중·러·북에 대항하는 ‘아시아판 나토’ 창설과 그 틀 내에서의 미 핵무기 공유를 제안. 역내 안보협력체제를 나토와 같은 구속력 있는 군사동맹 체제로 격상하자는 것.
광역 안보협력체제 : 하지만 아시아판 나토 구상은 여러 현실적 장애 요인을 가짐. 대신 역내 모든 동맹체와 안보협력체를 포용해 ‘광역 안보협력의 우산’을 씌우고 유럽 나토와 협력관계를 설정하자는 대안이 떠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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