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을 어느 곳으로 잡는 것이 좋을까?
구글지도를 찾아보았다. 첫 번째로, 가봐야 하는 장소들에 걸어서 갈 수 있는 호텔이어야 하고, 둘째로는 호텔 근처에 가깝게 공원이 있는 호텔, 셋째는 교통접근이 쉬운 호텔의 원칙을 세우고 찾았다. 그렇게 런던 출장준비가 시작되었다.

그저 나무와 풀, 흙이면 되었다.
런던지도에서 녹색으로 넓게 펼쳐져 있는 곳, 하이드파크(Hyde Park)와 베터시파크(Battersea Park), 우리가 가야 할 켄싱턴 Kensington 지역과 베터시 Battersea 지역장소와 매우 가까워서 눈에 띄기도 했지만 런던 전체 지도에서도 이 공원들이 차지하는 면적비율이 확연히 크다.
내가 유럽출장 때 호텔을 선정하면서 주변에 공원이 있는 곳을 찾는 이유는 이들 도시가 품은 공원들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일적인 일정 외에 가봐야 할 건축물들, 뮤지엄들 이상으로 여행 시 꼭 들러봐야 할 곳들이 도심의 공원이다. 가야 할 일정에 치이면 공원을 일부러 시간을 내서 방문해야 하는데, 호텔 근처이면 아침 일찍이던 오후 늦게 본 일정을 마치고 공원을 거닐 수 있기 때문이다.

런던에는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 파크 (Central Park)처럼 도시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공원은 없다. 센트럴 파크는 사실 맨해튼 시의 길쭉한 형태에서 나올 수 있는 거대 공원이다. 런던은 서울처럼 방사형으로 퍼져있는 도시이고 마치 한강이 있듯이 테임즈 강 중심으로 강북과 강남이 있다. 서울처럼 산형의 지형이 있는 도시는 아니나 지도만 보면 흡사 서울과 비슷해 보인다. 우리나라보다 한참 일찍이 선진화되었던 영국이지만 런던의 강남은 우리나라보다는 나중에 현대식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사실 이 부분도 서울의 강남은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선 것이지 그것을 현대화가 먼저 되었다고 보기도 솔직히 어렵다.) 내가 머물었던 베터시 지역은 요즘 런던에서 한참 핫한 신도시로 개발이 된 곳이다. 우리가 영화에서 쉽게 보는 런던의 모습과는 다른 아주 현대식 고급아파트들이 지어지고 있었다.

대도시의 공원은 자연과 시민이 어떻게 함께하는지 그 문화 수준을 나타낸다
여행객들에게 가보아야 할 장소로 추천되는 곳들은 주로 건축물 위주이다. 아니면 건축물에 둘러싸인 광장이나 마을이다. 나는 이런 장소도 물론 가보아야 하지만 유럽도심 안의 공원을 꼭 가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건축가인데 공원을 더 추천한다고? 어쩌면 이것은 서울이 그런 공원을 갖추지 못해서 일거다. 내가 머물렀던 호텔 근처의 베터시공원은 자연상태의 나무들 외에 다른 구조물들의 거의 보이지 않는 공원이었다. 걸어서 한 20분 정도 걸으면 공원의 시작에서 끝에 도달한다. 코스에 따라 길게 잡아야 한 30분 정도 걸렸다. 이 공원을 걸으면서 내가 사는 동네에 이런 공원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했다. 나는 양재천변에 살고, 사무실도 양재천변에 있다. 서울에서 그래도 가장 좋은 천변공원이라고 하는 곳에 산다. 그럼에도 베터시공원이 주는 깊은 나무숲의 느낌은 단 10분에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을 선사했다.


늘 부족하다 생각하는가?
왜 달랐을까? 한국은 산도 많고, 공원자체 숫자가 적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산은 등산이나 산행이라는 점에서 모든 사람이 쉽게 접근하게 되지는 않는다. 나만해도 산을 보는 것은 좋아하나(아주 많이 좋아한다) 산에 오르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고소공포증이 있는 터라 등산은 심리적 부담도 너무 많다. 모든 사람이 접근이 용이한 공원이 좋은 이유이다. 그럼 평평한 공원이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한국의 공원에는 부수적인 장치물이 너무 많다. 조잡한 스트릿퍼니쳐며, 굳이 해야 했을까 하는 난간들, 담장들, ‘.. 하지 마시오’라는 겹겹이 있는 싸인물들, 거기에 여기저기 널려 걸린 플래카드들 너무 많다. 공원이 호객 행위를 하는 것이다. 한국의 공원 모습은 사진으로 올리지 않겠다. 글 만으로도 곳곳에 사는 사람들이 흔히 눈에 띄는 모습이라 쉽게 상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공원은 왜 호객행위를 하는가?
왜 공원이 호객행위를 할까? 이리 와 이리 와~ 한다고 공원에 사람들이 가는 것일까?
공원은 지자체와 각 구청에 의해서 관리된다. 우리가 하고 있는 관리의 방법이 과연 옳은 것인지 깊이 자문을 해보았으면 한다. 계속 바꾸고,가져다 놓고, 뭔가를 덧댄다. 그런데 그것이 매우 조잡하고 영속적이지도 못하다. 또 새것으로 바꾸는데 왜 돈을 굳이 들여서 바꾸었는지 모를 것으로 대체된다. 그 에너지를 나무가 제대로 더 자라게, 더 우거지게 두면 아니 될까? 왜 가만히 두지 못할까? 싶은 심정이 들 때가 정말 많다. 이렇게 외국의 가장 발달된 도심의 한가운데 자연상태로 잘 보존된 공원을 와볼 때마다 그 심정이 더 크게 내 머리 위를 넘어선다.

자연을 기다려 주자
물론 런던의 베터시 파크와 하이드 파크의 몇 백 년을 산 듯한 고목들이 공원의 거의 덮다시피 해서 그 깊은 맛이 느껴지는 공원이다. 일본 강점기와 나라 전체가 전쟁을 치른 우리나라에서는 가지기 어려운 공원의 깊이이다. 서울에서 이처럼 고목이 아름드리 우거져 있는 곳은 궁궐이 전부이니.
그러나 불같은 발전을 하느라 바쁘게 채워야 했던 한국의 현실을 감안해도, 건축가로서 몇십 년을 보아온 우리네 공원의 모습에서는 자연을 기다려주는 법을 보지 못한다.
좀 가만히 두면 아니 될까? 그저 좀 기다려 주면 아니 될까? 자연 외에 아주 최소한의 벤치, 몇십 년 몇 백 년을 가도 괜찮을 그런 잘 디자인 된 벤치정도로 두고 나머지는 그저 너른 자연 상태로 두면 그곳을 사람들이 각자의 시간에 알아서 채울 터인데. 그렇게 찾을 공원을 사람들은 원하는데.

자연속에 인간의 공간을 조심스럽게 할애하다.
이번 런던 하이드파크에는 런던 서팬타인갤러리 Serpentine Gallery의 2024 파빌리온에 한국의 조민석 건축가 선정되어 그의 작품이 설치가 되어 있다. 그곳에 가보면 우선 서펜타인 갤러리가 공원의 내부에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공간을 얼마나 조심스럽게 자연 속에 할애했는지를 알게 된다.
매년 세계적으로 잠재력이 있는 우수한 건축가를 선정하여 파빌리온을 설계하게 해 준다. 여기에 놀라운 단서조항이 있는데, 우수한 잠재력이 있는 건축가인데 이제까지 런던에 작품이 없는 건축가를 선정한다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우리나라 같으면 어디에 뭐해봤어? 해보적 있어? 가 선정의 기본잣대인데, 이들은 자신들의 눈으로 그 잠재성을 보고 선정한다. 발굴하고 기회를 주는 것이다. 경쟁을 시키는 것도 아니다. 우리에게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늘에서 보면 별모양이 연상되는 조민석 건축가의 파빌리온은, 작은 파빌리온이 이 공원에서의 역할, 갖추어야 할 프로그램의 특성을 잘 담게 동그란 원을 중심으로 펼쳐 있었다. 각각 나눠진 공간들을 이어주는 동그란 중심원의 지붕선은 마치 한국의 전통건축의 지붕선이 교묘히 연상되었다. 여러 개의 분할된 파빌리온을 이어주는 동심원의 구조적 연결에서 건축가는 한국의 지붕선의 단서를 교묘히 감추어 전달하고 싶었나 싶었다.
내츄럴한 검은 목재와 돌의 연결은 전통건축의 초석위에 기둥을 세우는 기법이 현대화되고 공원의 파빌리온의 특성에 맞게 전용된 듯했다. 내가 한국인이어서 일까? 구법과 디테일에서 배어 나오는 한국성을 본 듯했다. (일부러 건축가인 조민석의 파빌리온에 대한 설명은 보지 않았다. 내가 찾고 읽는 그 맛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그 사이 비비드한 분홍색, 주황색은 검은 목재와 대비돼서 경쾌함을 선사하고 있었다. 마치 동그란 별 하나를 똑 떨어뜨려 그 빛이 여러 갈래로 퍼지면서, 공원의 파빌리온이 갖추어야 할 역할을 재미나면서도 충실히 실현한 느낌이랄까? 한국인으로서 왠지 모를 자긍심이 뿜뿜 느껴지는 순간을 맞기도 했다.


가장 낮은 자세로 있는 기념비
런던 하이드 파크에는 다이애나 황태자비를 기리는 장소가 있었다. 둥근 원형의 물살이 이어지는 바닥에 깔린 조형물이었다. 설명을 듣기 전에는 이곳이 다이애나 황태자비를 기리는 그렇게 대단한 곳 일 것이라고 알 수가 없었다. 그 설명도 아주 소박하게 적혀 있었다. 그 물길의 조형은 사람의 인생을 표상하는 것이라 하였다. 물길을 이루는 재질과 패턴, 깊이, 경사에 따라 물살의 크기, 물이내는 소리가 달랐다. (작품을 따라 걸으면 찍은 동영상을 못 올리는 것이 아쉽다.)이 작품의 작가는 Kathryn Gustafson으로 긴 물길의 변화가 사람들의 인생을 표현하고 싶었다 한다. 태어나서 격동기 청년을 지나 인생의 장년기를 넘어 차분히 인생을 정리하는 노년기를 그렸다. 그리고 그곳은 누구나 신발을 벗고 들어갈 수 있는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다고 한다. 다이애나 황태자비를 기리는 조형물인 이곳은 아주 나즈막히 하이드파크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리고 그 자연에 인간의 인생사를 조심히 앉혔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사람들에게 한없이 열어주고 있었다.





우리가 함께하고 싶은 공원은, 이렇게 자연을 넉넉히 기다려주어 그 자연이 우리에게 더 깊고 너른 공간을 안겨주는 시간의 세례를 받는 곳이 아닐까?
#지식토스트
전이서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건축가이자 교육자이다. 일상에서 만나는 건축시선을 통해 더 나은 삶과 도시를 만드는 건축적 감각을 전하고자 글을 쓰고 있다.
*브런치스토리 http://brunch.co.kr/@eunchun
*instagram : chun_architects
#세상의 모든 문화
Copyright © 해당 글의 저작권은 '세상의 모든 문화' 필자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