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여행 기념품 구매 방식을 바꿔야 할 때일까?

조회 2852025. 2. 23.
여행 기념품을 구경하고 있는 관광객들

BBC가 여행 기념품에 담긴 심리와 사회적 영향을 살펴봤다. 우리는 왜 여행지에서 기념품을 구매할까? 기념품 구매 행위는 지역 사회와 지구에 어떤 영향을 줄까? 보다 신중하게 기념품을 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 다녀온 히말라야 배낭여행에서 내가 가져온 진정한 기념품은 타박상이다. 3개월이 지난 지금도 내 몸에 남겨진 여러 타박상 흔적은 사라질 기미 없이 완고하게 남아 있다. 이 기념품은 내가 돈을 주고 사는 그 어떤 물건보다 나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그 안에 나만 아는 이야기가 담겨 있고, 지구와 사람을 희생시키지도 않았다. 이 기념품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도 분명하다. 이후 나는 일반적인 기념품은 손이 가지 않게 됐다. 기존의 것과 비슷한 장신구를 기념품으로 사기보다는, 내가 가져갔다가 되가져온 것들에서 의미를 찾고 물건보다 경험을 중시하게 됐다.

하지만 이것이 대중적인 흐름은 아닐지도 모른다. 미국인 3명 중 2명은 여행을 갔다가 기념품을 구매한다. 2022년 기준 미국 내 기념품 매출은 210억 달러(약 30조원)에 달했다는 추산이 있다. 오늘날 기념품 산업은 대량 생산과 문화 도용에 의존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관광 산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말할 때 기념품 산업은 그다지 주목받지 않는다. 예를 들어 비행기를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말이 많지만, 기념품 수집가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다. 보다 혁신적인 추억 간직법은 이렇다 할 만한 것이 아직까지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최근 여행지에서 사온 냉장고 자석을 기념품으로 내미는 친구 앞에서 나는 난처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자신이 여행한 한 장소의 일부를 집으로 챙겨온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리고 이러한 행위에는 어떤 대가가 따를까?

예로부터 인류는 무언가를 수집하는 것을 좋아했다. 로마인들은 여행과 정복을 기념하기 위해 향신료와 동물 가죽, 희귀 유물을 집으로 가져왔다. 18세기에는 로마의 콜로세움과 영국의 스톤헨지 같은 유적지가 기념품을 찾는 이들에게 약탈을 당했다.

산업화와 자본주의의 부상은 세상을 많이 바꿔놓았다. 세계는 더욱 연결되었다. 관광업은 호황을 누리게 되었고, 경제 체제 중심에는 이윤이 자리했다. 하지만 추억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인도에서 심리학자이자 테라피스트로 활동하는 바이슈나비 마다르칼은 "기념품을 접하면 두뇌가 과거의 긍정적인 경험과 연결되기 때문에 행복감이 되살아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연결은 물건이나 음악, 냄새 등 모든 것을 통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기념품을 뜻하는 영어 단어(souvenir)는 기억 또는 추억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단어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기념품의 힘은 추억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마다르칼에 따르면, 기념품을 사거나 주고받는 행위 자체에서도 도파민이 분비된다.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친구와 가족, 동료들을 위해 작은 먹거리 선물을 챙겨오는 일본의 '오미야게' 전통이 이를 잘 보여준다. 나 역시 여행의 추억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에 스페인에서 사프란 가루와 피망 가루, 태국에서 해초 칩 등을 사온 적이 있다.

많은 이들이 기념품을 통해 추억을 되새기고 선물을 하는 것 이상의 효과, 즉 "내가 거기 있었다!"고 말하고 싶은 욕구를 채운다. 마다르칼은 "인간 행동의 핵심에는 듣고, 보고, 확인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말했다. "기념품을 구매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넘쳐나는 물질에 압도된 이 세상에서 이런 욕구 충족이 과연 타당한 것일까? 영국에 윤리적 관광 전문 여행사 '리스판서블 트래블'을 공동으로 설립한 저스틴 프랜시스는 "관광이 선량하고 보편적으로 긍정적인 힘으로 여겨지던 시대는 2015년 무렵에 끝났다"고 말했다. "요즘 유럽과 미국에서는 오버투어리즘을 반대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휴가가 다른 사람의 가정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가고 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여행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좀 더 이해하게 됐지만, 기념품 구매의 영향은 아직도 잘 모른다. 그럼에도 여행 업계에서 25년 경력을 쌓은 프랜시스는 "아직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상황은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행자들이 기념품을 살펴보고 '이건 어디서 온 거죠?'라고 묻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시장에 대량 생산품과 가짜 상품이 넘쳐나는 오늘날에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호주 정부 생산성 위원회의 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호주에서 "토속품"으로 판매되는 기념품중 최대 75%가 위조품이다. 부메랑과 디저리두(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목관 악기)는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가하면 태국에서 인기 있는 코끼리 바지의 70% 이상이 해외에서 생산된 것이라고 한다. 파시미나 숄 장인들이 값싼 대량 생산 대체품에 맞서 싸우고 있다는 것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현지 장인을 지원하면서 파시미나의 전통을 잇고 있는 슬로우 텍스타일 브랜드 '레나 라다크 파시미나'의 공동 창립자 소남 앙모는 "인도 카슈미르 레에 있는 시장에서 파시미나라고 판매되는 직물의 약 95%는 진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가짜 직물은) 루디아나 혹은 펀자브 같은 곳에서 대량으로 생산한 후 외부인이 라다크로 가져옵니다."

정품 파시미나 숄은 혹독한 기후에서 염소를 키우고 수작업으로 만든다. 때문에 그 가격이 3만 루피(약 49만원)가 넘어가곤 한다. 많은 여행자들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러다보니 일부 상점에서는 단순히 "라다크에서 산" 파시미나를 찾고 그 원산지에 대해서는 거의 따지지 않는 대부분의 소비자들에게 모조품 숄을 3000~5000루피에 판매하고 있다.

정품 파시미나가 비싸다보니 모조품 수요가 늘면서, 가짜 또는 '유사 파슈미나'의 수익성이 좋아지고 이로 인해 가짜 상품의 공급망이 더욱 커졌다. 앙모는 이를 관광업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지역 사회에 나쁜 영향을 주는 "악순환"이라고 표현했다. 진품을 파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 일부 장인들은 가짜 원단을 구입하거나 기계화된 직기로 작업을 하기도 한다. 앙모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위조품을 구매하는 것도 현지 소매업체를 지원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 따른 대가는 오랫동안 장인 정신을 이어온 이들이 부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소비자에게는 딜레마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여행 추억을 남기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전 세계에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나 요르단 페트라 같은 번화한 관광지 주변 지역처럼 기념품을 생계 수단으로 삼아 번영을 누리는 곳들도 많다. 중요한 것은 기념품을 무조건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감 있게 선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현지 진짜 기념품을 찾는 것이 보다 수월했다. 모로코 페즈와 같은 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메디나의 수크에 있는 모든 가죽 제품이 이 도시의 상징적인 무두질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모조품은 너무나 정교해서 전문가들도 구별하기 어렵다.

게다가 대부분의 기념품은 휴대가 간편할 정도로 작고 가격도 저렴하다. 전 세계에서 인기 있는 기념품 중 상당수가 이 기준을 갖췄다. 소비자의 마음을 잘 아는 판매자들은 종종 상품에 "수공예" 또는 "재활용"이라는 라벨을 붙인다. 하지만 이러한 라벨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산업에 너무나 많은 힘이 한꺼번에 몰리다 보면, 아무리 좋은 의도와 책임감을 갖고 있어도 원칙을 지키기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윤리적이고 지속 가능하며 의미 있는 기념품을 살 수 있을까? 소남과 프랜시스는 "질문을 하라"고 말했다. 프랜시스는 "호기심을 가지라"며 "단순히 신중하게 구매하거나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거부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은 '이 조각은 아름답지만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걱정됩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려 깊은 여행자이자 콘텐츠 크리에이터인 스리쉬티 테리는 기념품을 살 때는 인내심을 가질 것을 권했다. 그는 집 안에 두면 눈에 잘 띄는 자석을 좋아하지만 아무 자석이나 사지 않는다. 그는 "가장 흥미로운 것을 찾아서 제가 명예의 전당으로 쓰는 냉장고에 붙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저는 독특한 디자인이나 아티스트를 응원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일반적인 자석은 대부분 못생겨 보이고, 사기처럼 느껴집니다." 나 역시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 모든 상점에서 같은 디자인의 제품을 취급하고 있다면 대량 생산된 제품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윤리적으로 물건을 구입하는 또 다른 방법은 평판이 좋은 협동조합과 공정무역 시장을 이용하는 것이다. 예컨대 '위민 인 헤브론'에서는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수공예품과 자수 제품을 판매한다. 수백 년 된 태국의 목조 주택인 방콕의 '아티스트 하우스'에서는 현장에서 직접 그려주는 초상화와 나무 무에타이 인형을 판매하며, 나만의 기념품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 많은 국가들이 정통 현지 상품에 대한 인증제도를 운영 중이다. 인도는 정품 파시미나 숄에 GI(지리적 표시) 태그를 붙인다. 호주에서는 검은색과 빨간색의 원주민 아트 코드 로고를 사용하며, 북유럽 국가에서는 '사미 두지' 라벨을 통해 사미 장인이 만든 제품을 보증한다.

구매자의 의도도 중요하다. 나는 더 이상 모든 여행에서 기계적으로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위해 기념품을 사지 않는다. 대신 기념품을 살 때마다 과연 의미 있는 기념품인지를 확인한다. 가끔은 내 마음대로 추측하지 않고, 친구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묻는다. 테리는 "나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물건을 주지 않는다"며 "어떤 사람은 실용적인 것을 선호하고, 어떤 사람은 수집품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좋은 기념품이라고 해서 반드시 돈을 주고 사야 하거나, 실물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기념품"의 어떤 요소가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는지 생각해 보면, 기념품이 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여행지에서 보낸 편지, 잘 정리된 여행 일지, 맥주 뚜껑이나 티켓 스탬프와 같이 버리지 않고 가져온 물건일 수도 있다. 어떤 여행자는 모험의 소리를 녹음하고 어떤 이는 타투를 새기기도 한다. 쿠킹 클래스에 참여하면 새로운 요리 기술이라는 기념품을 집으로 가져갈 수 있다.

"책임감 있는" 기념품에 대한 보편 규칙은 없다. 각자 개인 판단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다음에 공항에서 기념품을 구입하거나 선물 목록을 작성할 때는 잠시 생각해 보자.

프랜시스는 "우리는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 거래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실크로드를 떠올려보면 무역은 개인 간의 거래였습니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만나서 가치 있는 물건을 주고받았기 때문에 거래에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는 기념품에 이러한 친밀감을 되살릴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중간 유통 상인 없이 직접 제작자의 솜씨를 감상하고 물건을 제작자에게서 구매한다면, 프랜시스가 말하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상거래"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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