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규와 고뇌, 광기 오가는 조승우…데뷔 후 첫 연극 '햄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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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아버지의 동생 클로디어스와 어머니가 결혼한 모습에 충격받은 햄릿이 무릎을 꿇은 채 절규한다.
그는 신유청이 연출한 이 작품에서 고뇌하는 덴마크의 왕자 햄릿 역을 맡아 데뷔 24년 만에 연극 주연 배우로 나섰다.
신시컴퍼니의 '햄릿'은 유랑악단 배우들이 주축이 돼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만들었고, 국립극단 공연은 원작을 과감히 뒤엎은 '햄릿 공주'를 내세워 호평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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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여자. 아니, 당신이구나. 저 더러운 몸에서 태어난 나는 무엇이냐. 누구도 믿을 수가 없구나. 그 어디에도 기댈 수가 없구나!"
죽은 아버지의 동생 클로디어스와 어머니가 결혼한 모습에 충격받은 햄릿이 무릎을 꿇은 채 절규한다.
무력감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듯하던 그의 말투에 서서히 분노가 실린다. 어머니와 숙부에 대한 분노는 어느새 세상을 향한 울분으로 바뀐다.
"시대의 관절이 모두 어긋나 버렸어. 그걸 바로잡는 일, 그 저주가 내 운명이었다니…."
이달 18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햄릿'에서 가장 눈길을 잡아끄는 인물은 처음으로 연극 무대에 도전한 배우 조승우다. 그는 신유청이 연출한 이 작품에서 고뇌하는 덴마크의 왕자 햄릿 역을 맡아 데뷔 24년 만에 연극 주연 배우로 나섰다. 26일 객석 1천여석을 가득 채운 관객은 숨을 죽인 채 그의 연기를 지켜봤다.
조승우는 그간 '지킬 앤 하이드', '오페라의 유령', '헤드윅', '스위니 토드' 등 뛰어난 연기력이 요구되는 뮤지컬에 여러 차례 출연하며 '무대 체질'임을 증명한 바 있다. 그러나 첫 연극으로 400년 넘게 사랑받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고전을 택한 것은 다소 위험 요소가 있어 보였다.
그는 180여 분간 이어지는 극을 거의 혼자 끌어가다시피 하며 이런 예상을 보란 듯이 깬다.
고어로 이뤄진 긴 독백을 소화하면서도 고뇌와 절규, 광기, 자포자기 등 시시각각 변모하는 햄릿의 감정선 또한 놓치지 않는다. 특히 어머니 거트루드와 말싸움을 벌이는 바람에 실수로 덴마크의 총리대신인 폴로니어스를 살해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서서히 감정을 증폭시키다 결국 분출해낸 뒤 다시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데 채 5분이 걸리지 않는다.
다른 배우와의 합도 척척 맞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의 비극이지만, 간간이 코믹한 대사를 주고받으며 앙상블을 이룬다.
이 작품은 최근 나온 '햄릿' 중 가장 원작에 가까운 극본을 쓴 것으로 보인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문어체 대사로 인해 배우들이 실감 나게 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정통 연극에 주안점을 둔 작품답다.
올해 무대에 올려진 다른 '햄릿' 공연이 실험적인 연출을 시도한 것과 차별되는 지점이다. 신시컴퍼니의 '햄릿'은 유랑악단 배우들이 주축이 돼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만들었고, 국립극단 공연은 원작을 과감히 뒤엎은 '햄릿 공주'를 내세워 호평받았다.
이 때문에 이번 '햄릿'은 관객에게 다소 밋밋하게 다가갈 수 있다. 너무 많이 알려진 작품인 만큼 좀 더 신선한 접근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조승우를 비롯한 배우들의 호연은 빛나지만, 햄릿 외 다른 캐릭터가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점도 아쉽다.
'그을린 사랑', '와이프', '엔젤스 인 아메리카' 등으로 연극계 스타 연출로 떠오른 신유청이 셰익스피어 희곡에 도전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타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에게 발견된 인간다움"이라면서 "요즘처럼 책임이라는 단어가 엄중하게 다가온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렇기에 오늘날 수많은 햄릿이 공연되는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짧은 생애를 한껏 불태워 악과 맞섰던 덴마크 왕자의 이야기가 부디 시대의 관절이 어긋나버린 이 세상에 날카로운 메시지를 던지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햄릿'에는 조승우 외에도 클로디어스 역의 박성근, 거트루드 역의 정재은, 햄릿의 아버지 유령 역의 전국환 등 쟁쟁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여주인공 오필리아 역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출신 신예 배우 이은조가 맡았으며 김영민과 김종구, 백석광, 이남희, 이강욱, 전재홍 등이 조연으로 등장한다.
공연은 다음 달 17일까지.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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