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父 “딸, 기자회견 안 한다…주검 실려나가는데 무슨 잔치냐고”

소설가 한강이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 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한강의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은 11일 자신의 집필실인 전남 장흥군 안양면 '해산 토굴' 정자에서 기자들과 만나 소회를 밝히고 한강의 성장기 시절이 담긴 가족사진을 공개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날마다 주검이 실려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고, 기자회견을 하느냐더라.” (한강 父 한승원 작가)

소설가 한강(54)의 부친인 원로 소설가 한승원(85)이 딸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관련, 당사자의 기자회견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승원은 11일 전남 장흥군 안양면 해산토굴 정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그는 “(처음엔 내가) 딸에게 국내 출판사 중 하나를 선택해서 기자회견장을 마련해 회견을 하라고 했다”고 운을 뗐다.

그러나 한승원은 이날 아침 딸의 뜻을 듣고 사뭇 놀랐다고 한다. 그는 “오늘 아침에 이야기를 해보니 (딸의) 생각이 바뀌었더라. 그새 한국 안에 사는 작가로의 생각이 아니라 글로벌적 감각으로 바뀌어 있었다”며 “러시아,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이 치열해서 날마다 주검이 실려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고, 기자회견을 하느냐더라”고 했다. 기자회견을 사양한 딸 대신 부친이 나서 언론에 양해를 구하게 된 연유는 이러했다.

소설가 한강이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 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한강의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은 11일 자신의 집필실인 전남 장흥군 안양면 '해산 토굴' 정자에서 기자들과 만나 소회를 밝히고 한강의 성장기 시절이 담긴 가족사진을 공개했다. [연합]

그는 딸의 수상에 대해 “어제 (한림원) 결정은 갑작스러웠다. 당혹감이라고 할 수 있다”며 “즐겁다고 말할 수도 기쁘다고 말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사실 한승원은 처음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듣고 믿지도 않았다. 잠자리에 막 들려할 때 기자에게 연락이 와 딸의 수상 소식을 듣고는 “혹시 가짜 뉴스특보에 속아서 전화한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한강 역시 아버지에게 “노벨문학상 수상 전화를 받고 보이스피싱 인줄 알았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노벨문학상은 최근 발표된 작품에만 관심을 두는 게 아닌 그 작가의 인생에 발표한 작품을 총체적으로 관조해서 결론을 내는 것”이라며 “이 때문에 우리 딸은 아직 차례가 오지 않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1일 오전 전남 장흥군 안양면 해산토굴(한승원문학관) 작업실에 노벨상 소설가 한강이 아버지 한승원 작가에게 보낸 자필 편지가 놓여있다. [연합]

한강 역시 아버지에게 “노벨문학상 수상 전화를 받고 보이스피싱 인줄 알았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강은 전날 노벨문학상 발표 10분 전인 오후 7시 50분쯤(한국 시각) 스웨덴 측으로부터 전화로 수상 소식을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승원은 전남 장흥군에 해산토굴(海山土窟)이라는 작업실을 짓고 작품 활동 중이다. 1968년 등단해 장편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 ‘초의’, ‘달개비꽃 엄마’, 소설집 ‘새터말 사람들’, 시집 ‘열애일기’, ‘달 긷는 집’ 등을 펴냈다.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등을 받았다.

kacew@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