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국사교과서 파동」 출간

1999. 8. 30.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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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태식기자 = 80년대 한국 사학계를 흔들었던 국사교과서 파동이 어떻게 진행됐는 지 그 자세한 내막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지난 80∼92년 교육부 역사담당 편수관이었던 윤종영(63) 서울 금천교 교장은 기존 강단사학계와 재야사학계간 치열했던 80년대 국사교과서 논쟁의 진상을 담은 「국가교과서 파동」(혜안 펴냄)이라는 단행본을 최근에 냈다.

이 책은 교과서 파동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던 교육부 실무담당자가 당시 언론을 통해 공개된 사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학자들간 첨예한 대립을 가감없이 드러냈다는 점에서 사학사적인 의미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여기에는 당시 교과서 논쟁에 휘말려들었으며 아직 대부분이 생존해 있는 학자들이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실제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다.

국사교과서 파동은 지난 76년 초대 문교부 장관을 지낸 고 안호상 박사와 박시인 당시 서울대 교수, 임승국 당시 명지대 강사가 주도하는 재야사학계가 단군,기자의 실존설을 내세우며 이병도로 대표되는 기존 강단사학계를 일제 식민주의사관론자 및 민족반역자로 맹렬히 비판하면서 촉발됐다.

이윽고 이 논쟁은 78년 이들 재야사학자들이 `국사교과서 내용시정에 대한 건의서'를 정부에 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법정소송으로 끌고가고 81년에는 국회로 이 문제를 확대한 뒤 87년 6월 `국사교과서 편찬준거안'이 나올 때까지 이어졌다.

이 책은 10여년간 계속된 이 논쟁을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에서 기술하면서도 재야와 강단사학계간 대립은 물론이고 강단사학계 내부에서 벌어졌던 치열한 논쟁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예컨데 이 책을 보면 편수관 발령 직후 집으로 찾아간 저자에게 안호상 박사가 이병도와 그에게서 비롯된 강단사학계를 향해 쏟아부은 독설이나 국회로 불려간 이기백 당시 서강대 교수가 `태도불량'으로 국회의원에게 호된 질책을 당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분을 삭이던 모습이 나타난다.

또 한국 고고학의 양대산맥을 이루던 고 김원룡 당시 서울대 교수와 손보기 당시 연세대 교수간 한사군 위치 등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이며 이 때문에 김 교수가 국사교육심의위원회 위원직을 사퇴하려 했으며 위원회 위원장으로 손 교수가 내정됐다가 변태섭 당시 서울대 교수로 뒤바뀐 일화며 강단학자로는 재야에 가까운 학설을 내세웠던 윤내현 단국대 교수의 위원 사퇴파동 진상 등이 자세하게 그려지고 있다.

국사교과서 파동은 재야나 강단사학계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한 채 87년 `국사교과서 편찬준거안'이 발표됨으로써 일단락된 듯 하지만 최근 단군상 건립을 필두로 다시 불거지고 있는 상고사 재조명 논란에서 볼 수 있듯 이 논쟁은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는 폭발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자못 크다고 할 수 있다.(사진있음)

teshik@yonhap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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