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의 몸'된 진형구 전 대검공안부장

1999. 7. 28. 22: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연합뉴스) 박세진기자= 활달하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었다.

28일 조폐공사 노조의 파업을 유도한 혐의로 구속수감된 진형구(秦炯九) 전 대검공안부장.

웃는 얼굴이 트레이드 마크일 정도로 항상 쾌활한 표정을 짓던 그였지만 한평 남짓한 감방으로 향하는 순간에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 눈가에 이슬방울이 맺혔다.

새까만 후배검사들의 사흘간 계속된 취조에 지친듯 초췌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의 구속수감 소식을 들은 후배 검사들은 한결같이 할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검찰 조직에 엄청난 누를 끼친 데 대한 원망도 작용했겠지만 못난 선배를 향한 연민의 정이 더 컸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취중발언 여파로 졸지에 장관직에서 물러나게 된 김태정(金泰政) 전법무장관도 27일 진 전부장에 대해 "안타깝다. 연민의 정을 느낀다"는 심정을 토로했다.

진 전부장은 자신의 파업유도 발언 파문이 확산된 지난달 8일 고검장 승진을 눈앞에서 놓치고 면직까지 된 후 외부와의 접촉을 끊은 채 자택에서 칩거해 왔다고 한다.

특히 검찰이 지난 20일 특별수사본부를 구성, 파업유도 발언 수사에 전격 착수하겠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왜 이렇게 서두르냐"며 불안에 떨기도 했다고 측근들은 전했다.

평소 자신감이 넘치던 그였지만 검찰조사에서는 과거의 당당함을 잃은 채 자신의 혐의를 무조건 부인하거나 곤란한 질문이 나오면 말끝을 흐리는 등 떳떳치 못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경복고를 졸업하고 서울공대에 진학할때만해도 법조인이 되리라고는 생각치 못했다고 말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검찰내에서 비주류에 속했으나 문민정부시절인 95년 동기내 선두그룹과 함께 검찰의 별인 검사장으로 승진, 대검 공판.감찰부장을 잇따라 역임했다.

이를 놓고 검찰내에서는 그가 김현철씨 인맥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새정부 출범후 그는 공안경력이 없는 데도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의 남다른 총애를 배경으로 검찰요직인 대검 공안부장에 발탁돼 이른바 `신공안' 분위기를 주도했다.

그는 검찰 공안의 총수로 있던 1년3개월간 노동계 파업사태를 무난히 수습하고 한총련 재건 움직임을 조기차단하는 등 남들의 예상을 뒤엎고 `공안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에게는 이 때문에 큰 머리에 어울리는 `진짱구'라는 별명보다는 `진공안'이란 별명이 더 자주 따라다녔고 그 자신도 이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는 자기과시욕이 강한데다 `떠벌이'로 통할 정도로 말이 많은 게 탈이었다.

실제로 지난 4월 서울지하철 파업사태 수습과정에서 국방부와 협의도 없이 `군 대체인력 추가 투입방침'을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등 여러차례의 말 실수로 물의를 빚었다.

당시 군에서는 "검찰이 군 병력도 움직이냐"고 반발, 검찰을 곤혹스럽게 했다.

그를 잘 아는 후배검사들은 이런 그의 성향을 들어 "진 공안이 한번 일을 낼 줄 알았다"는 반응이다.

검찰조직 전체에 엄청난 굴레를 씌운 채 27년간 걸어온 검사의 신분에서 졸지에 영어의 몸이 돼 버린 그가 후배들의 이런 반응을 어떻게 생각할 지 자못 궁금해진다.

parksj@yonhapnews.co.kr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