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프로필> 마라톤 은메달 이봉주

1996. 8. 4.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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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타=연합(聯合)) 올림픽특별취재단= 애틀랜타올림픽 마라톤에서 아쉬운 준우승 을 차지한 이봉주(25.코오롱)는 황영조의 대를 잇는 한국 마라톤의 간판스타.

삽교고등학교 1학년때 육상 장거리에 입문한 이봉주는 90년 서울시청에 입단하면서 국내무대에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91년 말 타고난 승부사 정봉수 감독의 끈질긴 권유로 코오롱에 입단, 황영조,김완기와 한솥밥을 먹게 된 이봉주는 이듬해 92년 1월 '92동경(東京)국제하프마라톤대회에서 1시간01분04초의 한국최고기록을 수립, 국내 육상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후 정감독 특유의 지옥훈련을 견뎌내며 기회를 기다리던 그는 그해 자신의 첫 풀코스인 올림픽대표선발전에 출전, 레이스 중반까지 황영조등과 선두그룹에 속해 달렸으나 물을 집다가 넘어져 올림픽행이 좌절됐고 92년 대구전국체전에서도 2시간20분대로 9위에 처지는 시련이 거듭됐다.

그러나 이봉주는 이에 낙담하지 않았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아버지의 말씀을 항상 가슴속에 새기며 자신을 채찍질한 그는 마침내 93년 10월 광주전국체전에서 2시간10분27의 호기록으로 정상에 오르는 감격을 맛봤다.

이봉주는 이에 그치지 않고 그해 12월 호놀룰루마라톤에서 코스마스 엔데티(케냐)를 꺾고 우승, 한국 마라톤의 차세대 특급으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잘 뛰게 된 것은 타고난 게 아니라 노력했기 때문"이라는 자신의 말대로 이봉주는 세계 정상의 마라토너를 향해 자신을 더욱 몰아 붙였고 94년 세계최고 권위의 보스턴마라톤에서 마침내 10분벽을 돌파(2시간9분59초)했다.

'95동아국제마라톤에서 우승, 세계 정상급의 마라토너임을 국내외에 확인시킨 이봉주는 이어 급성장가도를 달려 '95춘천마라톤 4위를 차지한 뒤 애틀랜타올림픽 대표선발전을 겸한 '96동아마라톤에서 막판 역주를 벌이며 마틴 피스(스페인)에 1초차로 준우승, 올림픽 제패의 가능성을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항상 "마라톤은 체력이 닿는데까지 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투지와 노력이 돋보이는 그는 이번 올림픽에 앞서 "내 생애 꿈이었던 올림픽출전을 이뤄 기쁘다. 반드시 금메달을 따내 국민 여러분의 기대에 보답하겠다"고 다짐했었다.

70년 충남 천안에서 농사를 짓는 이해구(68), 공옥희씨(61)의 2남2녀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167㎝, 56㎏의 마라토너로서 좋은 체격을 갖췄으며 취미는 `달리기'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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