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방송3社-작가,프로덕션간의 불공정거래 관행

1996. 1. 3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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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聯合)) 李熙鎔기자= 방송가의 `거대공룡'인 KBS·MBC·SBS 등 방송3社가 독과점적 지위를 남용해 시장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가장 빈번한 사례는 작가와 집필계약을 맺을 때 방송사라는 우월적 지위를 내세워 횡포에 가까운 불공정거래를 일삼는 것.

최근까지도 방송3사의 각본집필 위촉계약서를 보면 방송사나 작가가 정당한 이유 없이 계약을 해지했을 때 3배의 위약금을 물도록 하면서 작가의 `정당한 사유'는 방송사의 동의를 전제로 한다고 규정돼 있었다.

결국 방송사는 작가의 동의 없이도 해약할 수 있지만 작가는 방송사의 동의 없이 계약을 중단할 수 없다는 뜻으로 쌍무계약의 형평성을 상실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방송사들은 "드라마 제작은 작가와의 집필계약 외에 연출자·탤런트·카메라·조명·음악 등 다수의 사람이 참여해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작가가 갑작스럽게 집필을 거부할 경우 경제적 손실뿐만 아니라 방송의 공공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지난해 말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조항이 관련법률(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것으로 판정하고 이를 지체없이 삭제 또는 수정하도록 하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한국방송작가협회(회장 申常一)는 방송사가 프로그램 사항 등을 변경할 때 작가와의 협의 없이 통지만 하면 되도록 한 규정과 집필을 완료할 때까지 타 방송사는 물론 다른 영상제작물 회사의 극본까지 쓰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조항도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들고 있다.

실제로 작가가 계약분량의 원고를 넘긴 이후 방송사가 자체사정에 의해 일방적으로 방송횟수를 줄이거나 줄인 분량에 대해 제대로 원고료를 지급하지 않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으며, 다른 작품을 집필할 기회가 있어도 계약에 묶여 일손을 놓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방송사와 독립제작사(프로덕션)의 관계에서는 건설사의 하청관계보다 더욱 심한 불공정거래 관행이 난무한다.

우선 방송사들은 80년대 후반부터 자회사를 설립해 공보처가 고시한 의무외주(外注)비율을 충당해오고 있는데, 이 자체가 방송법 시행령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은 물론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상 `계열사를 위한 차별취급'에 해당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방송사들은 전체 외주프로그램 가운데 3분의 2에 가까운 분량을 자회사 프로그램으로 채우는가 하면 독립제작사의 프로그램들을 대부분 오전이나 심야시간대에 편성하고 있다.

계약 내용에 있어서도 방송사는 독립제작사에게 일방적으로 작품의 수정을 요구할 수 있고 수정분의 제작비를 독립제작사에게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대폭적인 보완수정이 필요한 경우 방송사업자가 그 추가비용을 부담한다"고 규정한 케이블TV의 계약내용과 대조를 이룬다.

또 방송은 물론 케이블TV·비디오·음반·출판물 등 다른 매체에 대한 지적 재산권 모두를 방송사에 양도하도록 한 규정이라든지 계약을 해지할 때 그 사유의 정당성 여부를 방송사가 자의적으로 판단하도록 한 규정 등도 불공정거래 사례로 꼽힌

다.

尹선희 상지대 법학과 교수는 "방송의 눈부신 발달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방송사의 거래관행은 전근대적"이라고 전제한 뒤 "다매체 다채널 시대의 도래라는 방송환경의 변화와 WTO 출범에 따른 시장질서의 재편에 따라 우리 방송시장도 공정한 경쟁이 보장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장치를 갖춰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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