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統獨3년] (44) 통일이후 찾아온 불청객,범죄

1993. 8. 31.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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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절도 가장 심각, 전체 범죄의 30%

폭력사범도 크게 증가, 사건 해결률 낮아져

(베를린=연합(聯合)) 李炳魯기자= "통일전에는 날씨 좋은 밤이면 가까운 공원에 나가 산책도 하고 마음놓고 즐길 수 있었지만, 지금은 늦은 밤에는 건장한 남자들도 지하철이나 전철 등 대중교통수단조차 이용하기를 꺼립니다."

동베를린 교외에 사는 볼프강 그레고리씨(48. 베를리너 차이퉁紙 기자)는 통일이후 베를린시의 치안상태를 이렇게 전한다. 한마디로 통일을 계기로 범죄가 크게 늘어났으며 이에따라 시민생활이 움츠러들고 있다는 불만이다.

그는 "통일이 되면서 옛 동독지역 사람들은 능력에 상관없이 일자리를 잃거나 실직의 위험에 처하게 된 것만도 억울한데 여행은 커녕 산책도 마음놓고 못하게 된 것까지 생각하면 분통이 터질 지경"이라고 하소연한다.

옛 동독시절에는 단돈 70마르크면 동구권을 3주동안 여행할 수 있었으나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지금은 거꾸로 호주머니가 텅텅 비어 여행은 꿈도 못꾸는 판이란다. 게다가 일과후에는 늦게 본 다섯살짜리 딸을 데리고 집 근처 호숫가에서 산책을 즐기는 것이 거의 유일한 취미였는데 이제 그마저 빼앗겼으니 푸념이 나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진 곳이면 어디나 그렇듯이 동독지역도 통일이후 늘어나는 범죄가 사회문제로 불거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도난당하는 일이 잦아지고 거리에서 소매치기에게 금품을 털리는 경우도 많아졌다. 또 가게나 공장, 상가가 도둑을 맞거나 은행에 도둑이 드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한 도시안에 옛 서독과 옛 동독의 장점과 모순을 녹여 놓은 베를린市의 양상은 통일독일의 전체양상을 한 단면으로 부각시켜 뚜렷하게 보여준다.

베를린은 명예롭게 못하게 프랑크푸르트, 함부르크에 이어 독일에서 범죄발생률 3위에 올라있는 도시. 이 도시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市경찰청이 최근들어 가장 골머리를 앓고 있는 범죄는 자동차절도다.

베를린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市전체에서 1년간 발생한 55만여건의 범죄중 30% 가량이 차량절도였다. 이런 차량절도는 초창기에는 조무라기 범죄꾼에 의해 저질러졌지만 최근들어서는 점차 대형화하고 있어 경찰을 긴장케 하고 있다.세계적 명성의 메르세데스-벤츠, BMW, 폴크스바겐 등을 조직적으로 훔쳐 동유럽국가로 대량 반출하는 조직이 그들이다.

베를린경찰청 위르겐 루터 공보담당관은 "통일 이후 차량절도, 지하철 범죄, 주택절도 등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고 밝히면서 "이는 모두 금전과 직접 연결되는 특징을 가졌다"고 해석했다. 베를린 경찰청은 통일이후 이처럼 재산관련 범죄가 증가한 근본적인 원인을 東.西베를린市 지역간 생활수준이 종전보다 더욱 크게 벌어지고 있는 데서 찾고 있다.

통일이후 실업자가 많이 늘어난 데다 동독 지역의 경제가 당초 예상과는 달리 쉽사리 불이 붙지 않는 것이 이런 범죄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노동시장이 새로 형성되고 동베를린지역 주민과 서베를린 지역 주민의 접촉이 잦은 옛날 동.서베를린의 경계에서 범죄가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범죄 발생률보다 더 염려스러운 현상은 자동차를 훔치거나 탈취하는 범인의 60% 가량이 20세 이하의 청소년층이라는 점.

이들중 상당수는 옛 동독의 `트라반트' 처럼 낡고 초라한 자동차와는 비교도 안되는 미끈한 서독제 자동차를 타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발동해 죄책감없이 범행을 저지른다. 이때문에 이들 청소년 절도범은 차를 훔친뒤 쓸만큼 쓰고는 아무데나 버리고 달아나는 게 다반사다.

자본주의 체제의 도입에 따른 부작용인 이런 재산범죄와 함께 찾아온 달갑지 않은 손님은 폭력사범이다. 베를린 경찰청은 "재산관련 범죄에 비해서는 덜한 편이지만 폭력사범도 크게 늘고 있다"고 밝히면서 "폭력사범가운데 청소년의 비율이 크게 늘고 있으며 학교내 폭력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 특히 큰 문제"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경찰은 베를린시의 치안상황이 극도로 악화돼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거듭 강조한다.

루터 공보관은 경찰청의 범죄 통계자료를 펴 보이면서 " 80년대까지 베를린市 지역의 연간(年間) 범죄 건수는 30만件 정도였다가 90년에는 35만건이 됐고, 통일 이후인 91년에는 50만건 이상이 됐으며 지난해에는 55만건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90년 이후 범죄건수가 급격히 증가한 것은 "통일 이전에는 제외됐던 옛 동독지역의 범죄를 새로 포함해 통계를 만들었기 때문"이라면서 이를 근거로 범죄가 급증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영토와 인구 팽창을 고려할 때 통일후 베를린의 범죄건수가 늘어났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으나 정확한 자료에 의한 대비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확한 통계 비교가 불가능한 이유에 대해 "옛 東베를린 지역의 범죄에 대한 통계가 전혀 신빙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범죄와 계층간 갈등 등 사회문제가 전혀 없다고 선전해 온 사회주의 체제에서 작성된 범죄 통계는 믿을 수 없다는 게 설명의 요지였다.

그렇지만 경찰은 범죄발생대비 사건해결률이 통일전에 비해 크게 떨어진 것 때문에 일반 시민들이 치안상태가 상당히 나빠졌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 데는 동의를 표시했다.

西베를린市의 전체 발생사건에 대비한 사건해결률은 통일전에는 47-48% 수준으로 전체의 절반에 육박했다. 하지만 통일 직후인 91년에는 사건해결률이 38.2%로 크게 떨어진 데 이어 지난해에도 38.1%에 머물렀다.

이처럼 통계 수치상으로는 범죄의 증가가 입증되지 않는다는 경찰의 주장이 주민들을 안심시키지 못하는 데 또다른 불행이 있다. 동독 주민들은 이를 호도된 정부발표라고 치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동독인들은 "피부로 느끼는 치안 불안을 반영하지 못하는 범죄통계는옛 동독지역 실제 실업률이 3분의 1수준으로 낮춰져 발표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 조정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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