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科搜 金炯永실장은 누구인가

1992. 2. 16.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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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가 =77년 공채돼...국내 문서감정 제1인자 = (서울=연합(聯合)) 수뢰혐의가 드러나 17일 구속영장이 청구될 예정인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문서분석실장 金炯永씨(53)는 그동안 국내 문서감정 분야의 제1인자로 통해왔다.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해방 이듬해 귀국한 金씨는 어려운 가정형편때문에 고학으로 서울 S상고를 졸업한 후 24세때인 63년 인장업과 인연을 맺은 후 타고난 재주와 노력으로 종업원 생활 5년만인 68년 서울 을지로에 「문화당」이란 자기 점포를 차렸다.

이때부터 안정된 생활을 영위, 75년 4월에는 인장의 종류.역사.인각법등을 정리한 「인각교범」이란 책까지 펴냈으며 이를 계기로 명성을 쌓아 인장업계에 투신한지 만 13년만인 77년 國科搜 문서분석실에 공채로 들어갔다.

이어 79년에는 신설된 내무부 별정직 5급 문서감정관으로 승진, 문서분석실장이 됐다.

그러나 80년 3월 30만평의 토지 소유권을 다투는 민사 소송에서 이번 사건과 유사한 문서감정을 맡았다가 허위감정을 한 혐의로 구속돼 國科搜에서 해직됐다.

金씨는 이와관련, 1심에서 징역 10월의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2년뒤인 82년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아 같은 해 5월 복직됐다.

복직이후 사법연수원과 경찰 행정학교등에서 문서감정에 관한 강의를 맡고 월간「수사연구」에 칼럼을 연재하기도 하면서 문서 감정분야 최고 권위자로서의 위치를더욱 굳히게 됐으며 작년 全民聯 사회부장 金基卨씨 유서대필 사건의 필적 공방때는 검찰측 증인으로 법정에 나와 姜基勳 피고인(28)의 유죄판결을 이끌어 내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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