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웬 카드 게임? 디즈니를 사로잡은 한국 스타트업

AI 기반 테이블탑 게임 스튜디오 카드몬스터 인터뷰
카드몬스터의 손수현 대표. /더비비드

모두가 한 뼘짜리 스마트폰에 갇혀 있는 시대. 그러나 여전히 사람은 서로 연결되고 싶어 한다는 강한 믿음을 가진 이가 있다. 인공지능(AI) 기술로 게임 기반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만드는 카드몬스터(Cardmonster)의 손수현(33) 대표 얘기다.

게임을 창업 아이템으로 선정한 이유는 그의 어린 시절과 맞닿아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며 유년기를 보냈고, 10대가 돼선 세계적으로 희귀한 보드게임을 밤새 즐겼다. 지금은 AI로 보드게임을 만드는 창업가로, 월트디즈니컴퍼니(이하 디즈니)의 파트너가 됐다. 기술과 아날로그 감성을 결합해, 보드게임과 카드 게임을 아우르는 이른바 ‘테이블탑(Tabletop, 대면형 아날로그 게임)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는 손 대표를 만나 창업기를 들었다.

◇가장 아날로그적인 것을 가장 디지털한 방식으로

카드몬스터에서 디즈니 IP를 기반으로 제작한 겨울왕국 트럼프 카드. /카드몬스터

카드몬스터는 테이블탑 게임 스튜디오다. AI를 통해 보드게임과 카드게임 개발 과정을 디지털화했다. 방대한 게임 규칙과 메커니즘을 학습한 자체 AI 모델을 활용해 통상 2년 가까이 소요되던 오프라인 게임의 기획 개발 과정을 단 몇 달로 단축했다.

단순히 게임을 제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물 게임을 가상 세계에 똑같이 구현한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을 생성한다. 오프라인 게임 출시와 동시에 모바일이나 PC 버전으로 바로 확장하는 것이다.

신선한 아이디어로 신생 스타트업임에도 불구하고 콘텐츠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세계 최대 콘텐츠 기업인 디즈니(Disney) 및 픽사(Pixar)와 공식 파트너십을 맺고, 이들의 캐릭터 IP(지식재산권)를 활용한 테이블탑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우리나라 유명 게임사인 데브시스터즈의 ‘쿠키런’ IP를 활용한 카드 게임의 북미 시장용 디지털 데모를 제작해 기술력을 입증하기도 했다.

◇‘성공한 덕후’가 된 유희왕 카드 게임 지역 우승자

손 대표는 중학생 때 유희왕 TCG(트레이딩 카드 게임) 지역 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있다. /더비비드

손 대표는 스스로를 ‘글로벌 콘텐츠 덕후’(일본어 오타쿠에서 유래한 유행어로, 한 분야에 깊게 몰입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라고 소개했다. 좋아하는 것을 단순히 즐기는 수준을 넘어 깊게 몰입했다. 중학생 때는 유희왕 TCG(트레이딩 카드 게임) 지역 대회에서 우승한 적도 있다. “국경을 가리지 않고 주류 콘텐츠부터 하부 장르의 콘텐츠까지 두루 좋아했습니다.또 사람들과 둘러앉아 게임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다양한 세계관에 몰입하는 게 너무 즐거웠거든요.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에너지를 얻기도 했죠.”

대학에 갈 때가 되자 잠깐 덕후 기질을 내려놓고, 현실에 맞닿은 선택지를 찾아 나섰다. “한때 군의관이나 교사를 꿈꿨습니다. 그러다 고3 때 논술 선생님이 ‘UN에서 일하면 잘 어울리겠다’고 하신 한마디에 홀려 국제기구를 꿈꾸게 됐습니다. 그래서 전공도 UN 공통어인 스페인어로 결정해, 한국외대에 진학했어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인턴을 1년 정도 했는데, 연구를 위해 석박사를 필수로 해야 하는 등 저의 성향과 맞지는 않다고 느꼈습니다.”

손 대표는 넥슨, 펍지 등 유수의 게임 회사에서 경력을 쌓았다. /손수현 대표 제공

성향에 맞는 조직을 찾아 나섰다. “사실 유명 대기업에 입사할 예정이었어요. 입사를 전제로 한 장학생으로 선발됐거든요. 하지만 저는 보다 역동적인 분위기 속에서 재미있는 사람들과 치열하게 일할 수 있는 곳을 원했습니다. 그때 대학교 캠퍼스에 붙은 넥슨 공채 대자보를 봤어요. ‘게임 회사야말로 나랑 맞겠다’싶어 바로 지원했습니다”.

2017년 넥슨에 게임 기획자로 입사했다. ”마블 IP를 활용한 모바일 TCG 개발 프로젝트를 담당했습니다. 마블의 공식 작가와 게임 스토리를 짜고, 카드 디자인 기획까지 도맡았습니다. 10년의 미국 생활 덕에 영어가 유창했고, 덕후로 보낸 세월 덕에 마블 코믹스와 TCG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던 점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즐겁게 일하면서 게임을 성공적으로 출시하고, 운영까지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게임을 만든다는 건 스스로의 상자에 갇히지 않고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교류하는 과정임을 배웠습니다. 나라는 틀에서 벗어나니 더 창의적인 길이 보였거든요.”

손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놓지 않았던 TCG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창업했다. /손수현 대표 제공

2019년 하반기에 펍지(PUBG) 미국 법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펍지는 전 세계적인 열풍을 불러온 ‘배틀그라운드’로 유명한 게임사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모니카에 위치한 미국 법인에서 배틀그라운드 세계관을 구축하고 트랜스미디어(Transmedia, 하나의 세계관을 여러 매체로 변주해 전달하는 방식) 콘텐츠를 만드는 프로듀서로 일했습니다. 강력한 IP가 팬덤과 만났을 때 발생하는 폭발력을 경험했어요. 특히 서구권에서는 게임이 단순한 오락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문화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것도 배웠죠.”

화려한 커리어를 쌓아가던 그를 창업으로 이끈 것은 어린 시절부터 놓지 않았던 TCG에 대한 애정이었다. “TCG는 전 세계적으로 수조원의 거래가 일어나는 시장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특히 한국에는 희귀 카드가 수억원에 거래되면서도 가품을 검증해주거나 카드 상태를 평가하는 시스템이 없어요. 누구나 믿고 거래할 수 있는 TCG 거래 플랫폼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임 회사에서 일하면서, 게임에서 파생되는 2차 시장의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게 됐거든요. 게임 거래 플랫폼을 기반으로 새로운 TCG까지 만드는 아이디어로 2022년 정부 예비창업패키지에 선정됐습니다.”

◇카드 게임도 AI로 만든다, 디즈니를 사로잡은 아이디어

투자자들 앞에서 발표 중인 손 대표. /카드몬스터

처음엔 게임 카드 거래 플랫폼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이 모든 2차 시장의 정점에는 ‘게임 개발’이 있음을 깨달았다. 2차 시장은 원작 게임을 토대로 파생되기 때문이다. 마침 디즈니 IP를 활용한 TCG인 로카나가 출시됐다. 로카나는 출시 첫 분기에만 약 1100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고 세계적인 품귀 현상을 일으킨 카드 게임이다.

로카나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 게임을 한국에서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무작정 디즈니에 연락해 피칭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다. “디즈니와 처음 만났을 때는 반응이 미지근했습니다. 그런데 몇 달 뒤 다시 연락이 오더군요. 한국 시장에 테이블탑 게임이 필요하다는 내부적인 판단이 있었던 것이죠. 결국 2024년 초 디즈니와 파트너십을 맺었습니다. 현재 디즈니와 픽사의 모든 캐릭터권을 기반으로 게임 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후 아날로그 방식에 그쳤던 테이블탑 게임 제작 과정을 AI로 효율화하는데 주력했다. ”오프라인 테이블탑 시장은 2030년까지 40조원 이상으로 성장할 전망이지만, 개발 방식은 여전히 낡아 있습니다. 저희는 시장에 변화를 주기 위해 AI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시중에 존재하는 1만5000여개 이상의 게임 룰을 학습 시켜 AI를 파인튜닝(Fine-tuning) 했어요. 파인튜닝이란 대규모 데이터로 사전에 학습된 AI 모델을 특정 목적에 맞춰 추가로 훈련시키는 기술인데요. 이를 통해 ‘게임 기획자처럼 생각하는 AI’를 만들 수 있습니다.”

카드몬스터는 AI로 테이블탑 게임 개발 기간을 단축했다. /더비비드

파인튜닝된 AI는 게이머 사이의 긴장과 극적인 재미까지 고려한다. “일반적인 AI는 기계적으로 룰과 게임 상황을 생성하는데 그치는데요. 파인튜닝한 AI는 ’사람이라면 미안해서 공격하지 않는 상황‘같은 비이성적 행동 패턴까지 계산해서 게임을 개발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게임의 재미를 더하면서 게임 개발 시간은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서로 다른 캐릭터 카드 100장이 싸우는 게임의 균형을 맞추려면 사람이 수백회 테스트를 해야 해서 몇 년이 걸립니다. 하지만 저희는 AI 시뮬레이션으로 테스트를 실행해 가장 적합한 게임 규칙의 최적 값을 찾아내기 때문에 시간을 획기적으로 아낄 수 있습니다. 또한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모든 오프라인 게임을 만들기 때문에, 향후 PC나 모바일 버전으로 쉽게 출시할 수 있습니다.”

◇보드게임 문화 깊게 뿌리내린 미국 시장 겨냥

2025년, 카드몬스터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과 미국의 유명 VC 500글로벌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글로벌 스타트업 지원 사업의 첫번째 타자로 선정됐다. /카드몬스터

카드몬스터는 현재 두 가지 사업 모델로 테이블탑 게임 시장에서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자사 IP로 개발된 테이블탑 게임이 없는 경우, 카드몬스터가 게임 개발부터 유통까지 전부 맡습니다. 자사 IP로 개발된 테이블탑 게임이 있는 경우에는 카드몬스터가 기술 설루션을 제공해요. 게임 시제품을 만들어 테스트 플레이를 진행하고 기술적인 환경을 제공하죠. 반복작업은 저희가 대신하니 게임 기획자와 IP 보유사는 창의적인 의사결정에만 집중하면 됩니다.”

한국보다 테이블탑 게임 문화가 발달한 유럽, 미국 같은 서구권 시장을 우선 겨냥할 계획이다. “미국은 각 가정이 최소 주 1회 게임 나이트를 열 정도로 보드게임 문화가 깊게 뿌리내렸습니다. 시장 규모도 한국보다 수십배 크죠. 투자자들을 만날 때도 미국 시장은 규모를 설명할 필요가 없어요. 그래서 저희는 미국 시장을 기본값으로 잡고 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해외 진출 과정에서 도움의 손길을 받기도 했다. 2025년, 카드몬스터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과 미국의 유명 VC 500글로벌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글로벌 스타트업 지원 사업의 첫번째 타자로 선정됐다. “감사하게도 500글로벌로부터 프리시드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디캠프는 현지 파트너 발굴, 북미 유통 네트워크 개척 등 미국 시장 진출 발판 마련에 큰 도움을 줬죠. 현재는 디캠프의 스타트업 육성 공간인 마포 프론트원에 입주해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요즘 뉴욕에서 인기라는 파티의 정체

카드몬스터에서 개발한 보드 게임들. /카드몬스터

현재 카드몬스터는 디즈니, 데브시스터즈, 컴투스 등 두터운 팬덤층을 보유한 IP홀더를 고객사로 두고 있다. 디즈니 IP에 한국적 색채를 더해 출시한 카드 게임 ‘단청’은 첫 출시 당시 24시간 만에 완판을 기록했다. 올해 3~4개 이상의 글로벌 타이틀을 출시해 130억원 이상의 매출을 달성하는 게 목표다.

K-콘텐츠 영역을 테이블탑 게임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세계 어딜 가나 한류가 화두라는 걸 느껴요. 외국 게임 관계자들 및 게이머들에게 ‘왜 K-게임은 없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꼭 만들어야겠다 생각했어요. 현재 뉴욕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예술가들과 한국적 정서와 미학이 담긴 게임을 개발 중입니다. 카드 게임으로 출시할 예정인데요. 디지털 버전까지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손 대표는 보드게임은 사람을 연결하는 가장 직관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게임 기획자는 근본적으로 경험을 설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뉴욕에서 500명 이상이 모여 보드게임을 즐기는 파티가 요즘 인기입니다. 사람들은 늘 연결에 목말라 있습니다. 평소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과 교류하며 웃고, 성장할 수 있도록 게임 그 이상의 콘텐츠와 환경을 만드는 기업이 되는 것이 카드몬스터의 꿈입니다.”

/김지은 외부기고가,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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