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층의 해리스 비호감도, 트럼프보다 높아…유색인종·여성에 대한 ‘벽’ 여전히 견고
전국 득표수 이겼지만 선거인단 수에서 진 2016년 ‘힐러리의 악몽’도 회자돼
(시사저널=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
미국 대선 날짜가 11월 첫째 월요일이 있는 주의 화요일로 정해진 건 1845년이다. 그 전에는 1792년 연방법에 따라 12월 첫 수요일 이전 35일 중에 각 주가 알아서 선거일을 정할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1845년 미 의회가 전국 선거일을 통합한 것이다. 화요일로 정해진 데도 사연이 있었다. 일요일은 교회에 가야 하고 토요일은 주말이라 제외하고, 목요일은 미국을 식민지배했던 영국의 선거일이라 피했다. 월요일이나 금요일은 평일의 시작과 끝이라 적당하지 않았다. 말이나 마차를 타고 다니던 시절이라 투표소까지 가는 데 하루, 돌아오는 데 하루 해서 꼬박 이틀이 걸리는 유권자도 많았다. 당시 수요일에도 교회에 가는 사람이 많아 화요일에 투표를 해야 그나마 왕복 이틀을 써도 한 명이라도 더 투표가 가능했다고 본 모양이다. 한 명이라도 더 투표에 참가하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고려가 반영된 결정이었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에 한 명이라도 더 투표에 참가하도록 배려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사전투표도 현대에 들어서면서 계속 확대 도입되는 추세다. 미국에서는 1997년 우주비행사들도 우주 투표를 허용하는 법안이 텍사스주에서 통과되기도 했다. 같은 해 우주정거장에서 최초의 우주 투표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올해도 국제우주정거장에 있는 미국인들이 부재자투표를 신청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선거일이 공휴일이 아닌 미국에서는 부재자투표나 사전투표가 투표율을 올리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미국 대선에서 사전투표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2년 약 30%, 2016년 약 40% 수준으로 점점 높아졌다. 특히 2020년 대선에서는 우편 45%, 투표소 방문 22%를 합해 사전투표 비율이 67%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경합주 사전투표 규칙 놓고 수싸움
9월6일 노스캐롤라이나주가 우편 투표용지를 발송하면서 이번 미 대선의 본격적인 투표 일정이 개시됐다. 투표용지를 받은 유권자는 기표한 뒤 지역별로 정해진 날짜까지 선거관리위원회에 회송한다. 투표소 현장 방문 방식의 사전투표도 시작됐다. 최대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가 16일, 버지니아와 미네소타가 20일, 버몬트가 21일, 일리노이가 26일 현장 사전투표를 개시했다. 현재 해리스 대 트럼프 초박빙 구도가 펼쳐지고 있어 사전투표를 둘러싼 경쟁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양측은 펜실베이니아, 노스캐롤라이나, 조지아 등 주요 경합주에서 사전투표 규칙을 놓고 치열한 수싸움 중이다.
이번 대선의 최대 격전지인 펜실베이니아주에서는 우편 투표용지를 선관위가 동봉한 봉투에 넣지 않아 무효표로 처리된 것에 반발한 유권자들이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의 요구는 자신들을 잠정(provisional) 투표자로 인정하고 현장 투표를 허용해 실수로 잃은 투표 기회를 달라는 것이었다. 잠정 투표는 투표 자격이 불확실한 유권자의 투표를 일단 허용한 뒤 이들의 투표 자격이 추후 확인되면 유효표로 집계하는 방식이다. 펜실베니아주 대법원은 9월24일 이들에게 현장 투표를 허용했다. 지지층의 사전투표 참여율이 높은 민주당은 환영했다. 공화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주당 인사가 다수를 차지한 노스캐롤라이나주 선관위는 대학생들이 학교에서 발급한 모바일 신분증으로 대선 투표 때 신분 확인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는데 공화당이 이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다.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대학생들이 쉽게 투표하도록 놔두면 안 된다는 셈법이다. 공화당 인사가 많은 조지아주 선관위는 전자 개표가 아닌 수작업 개표만 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2020년 대선에서 조지아주는 재검표까지 한 터라 개표 정확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민주당에서는 공화당이 대선 패배 시 개표를 지연하며 혼란을 야기할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해리스와 트럼프 두 후보 지지율은 초접전 양상을 계속 보이고 있다. 9월24일 CNN과 여론조사기관 SSRS의 전국 지지율 조사에서 해리스는 48%, 트럼프는 47%를 기록했다. 같은 날 퀴니피액대 조사에서는 트럼프가 48%, 해리스가 47%의 지지율을 얻었다. 9월10일 TV 토론 이후 한동안 해리스가 4~5% 이상 격차를 벌리며 앞서 나가던 지지율 구도가 다시 백중세로 접어들고 있다. 18일 갤럽이 발표한 두 후보의 호감도 조사에서도 해리스가 44%, 트럼프가 46%를 기록해 초접전 중이다.
다만 비호감도에서 해리스가 상대적으로 높은 점은 눈에 띄는 대목이다. 두 후보 모두 비호감도가 호감도보다 높았는데 트럼프는 53%, 해리스는 54%를 기록해 각자의 호감도보다 각각 7%, 10%포인트 높게 나왔다. 특히 중도층에서는 트럼프의 경우 호감도 44%, 비호감도 53%로 나타났고 해리스는 호감도 35%, 비호감도 60%로 집계됐다. 해리스는 대선후보로 나서기 전인 6월 조사에서는 34%에 머물렀던 호감도가 8월 조사에서는 47%까지 올라갔지만 비호감도도 함께 올라가고 있다. 특히 중도층의 비호감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점은 유색인종과 여성에 대한 미국 사회의 견고한 벽이 아직 높다는 점을 보여준다.
안정세 강한 트럼프 vs 유동성 큰 해리스
트럼프의 경우 호감도가 지난 8월에 41%까지 하락했다가 9월 갤럽 조사에서 다시 44%로 올라갔다. 이는 지난 6월 호감도 조사와 동일한 수치였다. 트럼프는 지지도나 호감도에서 계속 40% 중반대를 유지하며 흔들리지 않는 지지층이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확장성이 부족하지만 유동성은 낮은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반면 해리스는 확장성이 있지만 경우에 따라 유동성이 높을 수도 있는 불안정성을 내포하고 있다. 사전투표가 시작된 현재 그리고 한 달 조금 넘게 남은 대선까지 해리스는 확장성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초접전 중인 경합주 일부를 내준다면 전국 득표수에서는 이기지만 선거인단 수에서는 지는 2016년 힐러리의 악몽을 맛볼 수도 있다. 선거일만 같을 뿐 주마다 다른 선거규칙으로 인해 전망이 복잡할 수밖에 없는 미국 대선, 40일 후 해리스가 특유의 함박웃음을 지을지 아니면 트럼프가 다시 주먹을 불끈 쥐고 팔을 치켜올릴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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