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가해자 85%가 직장 동료, 동급생, 친족 등 지인"
불법 합성(딥페이크)을 통한 '지인 능욕' 범죄가 국가적 문제로 대두된 가운데, 성폭력 가해자의 약 85%가 직장 동료, 동급생, 친족 등 지인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전국 133개 상담소로 구성돼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지난 9일 2023년 성폭력 피해자 지원 현황 분석 보고서를 내고 이같은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성협이 2023년도에 지원한 성폭력 피해 사건의 가해자 유형을 살펴보면, 가해자 총 16424명 가운데 직장 관계자가 17.5%(2877명)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 단순 대면인 또는 기타 지인이 13.7%(2252명), 동급생‧선후배‧친구 12.6%(2077명), 친족 및 친인척 9.7%(1606명, 부모 595명, 기타 친인척 570명, 형제‧자매 384명, 조부모 32명, 자녀 25명) 순으로 나타났다.
모르는 사람은 9.33%(1533명)이었으며, 그 다음으로는 채팅 상대자 9.3%(1530명), 전‧현 애인 7.0%(1153명), 데이트 상대자 2.0%(343명), 배우자 1.9%(312명), 이웃 4.9%(816명) 순이었다.
전체 가해자 가운데 모르는 사람 9.33%(1533명), 미파악 5.2%(855명)을 제외하면 적어도 85.4%(1만4036명)가 면식범이었던 셈이다.
2022년도 통계와 비교하면, 가해자가 직장 관계자인 비율은 1년 사이 10.3% 상승해 큰 폭의 상승률을 보였다. 전성협은 이에 대해 "우리 사회에는 권력을 기반으로 한 성폭력‧성희롱이 만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동급생 선‧후배 및 친구는 5.6%, 친족 및 친‧인척은 전년 대비 26.3%, 채팅 상대자도 15.6% 상승했다.
전성협은 "아는 관계, 친밀한 관계를 기반한 성폭력 사건의 경우 다양하고 친밀한 관계, 깨기 어려운 일상 등은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신고하기 어렵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울 수 있음이 충분히 설명된다"며 "특히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대표적인 예로 친족 성폭력의 경우 피해자의 연령이 낮을수록 범죄 피해가 드러나기 어려워 신고가 늦어질 뿐 아니라 피해가 장기화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사건이 감춰지거나 축소되기도 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했다.
가해자를 연령별로 살펴 보면, 19세~65세 미만 가해자는 2023년 줄어든 반면 19세 미만 가해자는 늘어나는 양상을 보였다. 전성협은 "정보통신기술 발달로 인해 아동‧청소년이 다양한 폭력 및 콘텐츠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으며, 무분별하게 범람하고 있는 온라인의 잘못된 성관련 정보와 이를 통한 왜곡된 인식을 습득하여 모방하며 성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폭력은 잘못된 자신의 인식에서 비롯된 판단과 그로 인한 개인적인 책임도 있지만 올바른 성 가치관 및 인식을 가르쳐주지 않는 제도, 성폭력에 대해 미약한 처벌을 남발하는 사법 시스템, 성범죄로부터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는 사회적 책임이 더욱 크다"고 지적했다.
피해 유형은 전년과 유사하게 강간 및 유사강간, 강제추행, 카메라 등 촬영, 통신매체음란, 성희롱 순으로 나타났는데, 이 가운데 강제추행 건수가 크게 늘었다. 전성협은 이에 대해 "(피해자들이)자신에게 일어난 경험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으려는 의식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했다.
전성협은 특히 상당수의 성폭력 피해는 한 가지 유형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교제폭력, 스토킹, 경제적 착취, 디지털성폭력 등 복합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을 지적했다. 단체는 "실제 한 사례의 경우, 연인 사이에서 강간 및 신체적 폭력이 지속적으로 발생되던 중 피해자가 이별을 통보하자 가해자가 집과 회사로 찾아오고 수백 통의 연락을 시도했으며 성관계 영상을 유포하겠다 협박하기도 했다"며 "이러한 복합 피해 유형을 다층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축적된 피해자 지원 경험의 전문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딥페이크 성범죄 대응과 관련해선 "디지털성폭력은 폭력 피해에 대한 대응, 피해 촬영물 삭제 지원, 피해자 보호, 수사‧법률‧의료 지원 등 다양한 피해자 지원체계가 유기적으로 네트워크하며 발 빠르게 지원하는 것이 요구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지원 예산을 삭감하고, 젠더 폭력 각 분야의 전문성과는 상관없이 지원체계를 통‧폐합하는 것으로는 성폭력의 발생 구조나 인권 중심적 법과 제도로의 사회를 만들 수 없다"며 "정부는 성폭력상담소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다양하고 복합적인 피해 지원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서어리 기자(naeor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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