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위기 [세계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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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한 정책으로 세계가 휘둘리고 있다.
미국을 제조업 강국으로 만들려는 정책은 트럼프 대통령의 구호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의 핵심이다.
가까운 미래에 고율 관세 정책에 대한 미국 내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고, 트럼프 대통령은 정책 재검토를 강요받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수와 심판을 동시에 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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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구치 지로 | 일본 호세이대 법학과 교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한 정책으로 세계가 휘둘리고 있다.
고율 관세는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미국 경제에도 타격이 된다. 세계 각국, 특히 인건비가 싼 아시아 국가들에서 많은 것을 수입하는 미국 입장에선 수입을 줄이면서 국내 제조업을 되살리려 해도 공장이 바로 세워지는 게 아니다.
미국을 제조업 강국으로 만들려는 정책은 트럼프 대통령의 구호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의 핵심이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낮은 꿈이다. 가까운 미래에 고율 관세 정책에 대한 미국 내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고, 트럼프 대통령은 정책 재검토를 강요받을 것이다. 관세 발동을 90일 유예한 게 그 징조다. 미국은 정치에서도 심각한 위기에 빠지고 있다. 헌법과 법률에 기반한 정치라는 근대 국가의 대원칙이 위협받고 있다는 뜻이다. 헌법의 위기는 최근 10여년간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 공통된 현상이다. 미국의 혼란은 아시아 사람들에게도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최근 유럽과 미국의 정치학에서는 민주주의와 헌법의 위기를 분석한 책들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요점만 정리하면, 미국 정치의 붕괴는 ‘법에 의한 지배’가 ‘사람에 의한 지배’로 퇴행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 헌법 이전 국가는 왕의 소유물이었다. 세금은 왕의 재산, 관료는 왕의 하인이었다. 국민들로서는 왕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재산을 뺏기거나 체포·투옥되는 일은 고통스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국민들은 혁명을 일으켰고, 정부가 세금을 부과하거나 체포·구금할 때 정해진 법에 근거해야 한다는 원리를 정착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흐름을 거꾸로 되돌려놨다.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마음에 들지 않는 정부 부처를 폐쇄하고, 많은 공무원을 해고했다. 불법 이민자를 ‘범죄자’로 부르며 조사나 재판 없이 강제 송환했다. 법원이 이를 위헌으로 판단해 송환 취소를 명령했지만, 트럼프 정부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 행정부가 사법부 명령에 맞서는 헌법의 위기가 출현한 것이다. 법치주의를 스포츠에 견줘 설명하면, 선수와 심판을 구분하는 것이다. 선수는 경기 도중 자유롭게 움직이지만, 심판이 반칙을 선언했을 때 멈추지 않으면 경기가 성립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수와 심판을 동시에 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어쩌다 이다지 멋대로이고, 난폭하게 행동하는 인물이 최고 권력자가 됐을까? 많은 사람이 경제적 어려움과 다양성의 확대에 따른 문화·사회적 마찰 확산에 불만을 품고 있다. 규칙을 깨더라도 정체된 삶을 타개할 강력한 리더십을 원한다는 설명이 나온다.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0년대 후반 일본에서는 아베 신조 정권 아래서 권력 남용이 만연했다. 국유지가 총리 지인에게 헐값에 넘어가고, 의혹이 불거지자 관련 공문서가 조작되거나 폐기됐다. 총리와 가까운 언론인에게 성범죄 혐의 체포 영장이 발부됐지만 경찰 고위 간부가 직권 취소하는 일도 있었다. 또한 한국에서는 지난해 말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으로 독재를 시도했다. 다만 일본에서는 아베 전 총리 퇴진 뒤 자민당의 지지율 하락과 선거 대패로 권력의 사적 사용은 일단 멈췄다. 한국은 탄핵 소추가 인용돼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세계적인 민주정치의 혼란 속에서도 일본과 한국은 상대적으로 건전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여전히 과제는 많다. 한국은 차기 대통령이 정치에 대한 국민 신뢰를 회복할지 물음표가 달려 있다. 일본은 올여름 참의원 선거 결과에 따라 이시바 시게루 정부가 붕괴되고, 나라가 더 큰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국민은 규칙을 존중하는 상식적 인물을 선택할 책임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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