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조정 승부수 던진 ‘KT 김영섭호’... 정치권 외풍 정면 돌파하나

전효진 기자 2024. 10. 1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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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2년차 김영섭 KT 대표, 1만9000여명 직원 중 3분의 1 구조조정 예고
신설 자회사 2곳에 네트워크 관리, 인력 이관… “AICT 기업 도약 위한 후속조치” 시각도
野 “인프라 관리 역량 약화되면 통신대란 우려”… 25일 종합감사서 집중 질의 목표
“인력 구조조정으로 또 다시 정치권 압력 시작”

“분쇄하자 조직개편! 사수하자 생존일터!”

지난 16일 오후 4시 KT 광화문 사옥 앞. 전국 KT 노조 간부 280여명이 “KT는 구조조정 즉각 철회하라” “노동조합 근간을 흔드는 조직개편 결사 반대한다”는 구호를 외쳤다. 권중혁 KT 노조 사무국장은 이날 “1차적으로 인력 구조조정 추진을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며 “이동하는 직원의 고용 안전을 보전하고, 자회사에서도 본사 소속에 준하는 대우를 받도록 명문화해 달라”고 했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린 이유는 KT가 10여년 만에 구조조정 카드를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KT는 지난 15일 이사회를 열고 ‘현장 인력구조 혁신 방안’과 자회사 KT OSP와 KT P&M(가칭) 설립 안건을 의결했다. 자회사에 전체 직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의 인력을 이관하고 동시에 희망퇴직도 실시한다.

그래픽=손민균

노조 측 관계자는 “회사 측은 ‘업무 효율화’라고 하지만 이 단어는 3년 전부터 나온 이야기”라면서 “당시에도 다수 직원이 고객관리(CM)로 발령을 받았다. 그런데 이제와서 다시 구조조정을 한다는 것은 김영섭 대표가 KT에 대한 큰 비전 없이 가장 쉬운 방법으로 타깃(목표)을 처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김영섭 KT 대표가 마이크로소프트(MS)와 손잡고 인공지능(AI)에 사업 역량을 집중하기로 하면서 인건비 절감을 위해 갑작스럽게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노조와 정치권에서는 KT가 AI만 쫓다가 회사의 근간이자 본업인 통신 분야에서 기술력·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회사 관계자는 “AICT 회사로의 전환을 위한 인력구조혁신을 추진하게 됐으며, 효율화가 필요한 일부 직무 및 인력을 재배치 하는 것”이라면서 “고용안정성에 대해 심도있게 고민해 직무와 인력 재배치 추진하며 합리적인 수준의 처우, 보상, 고용연장의 기회 제공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 밖에 구체적인 인력구조 혁신 방안은 노조와 협의할 예정이라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 ‘AICT 전환’ 강조하는 김영섭… “인위적인 구조조정 없다” 약속 뒤집어

김 대표는 지난해 8월 취임 이후 줄곧 ‘AICT(인공지능+정보통신기술) 기업으로의 전환’을 강조해왔다. 특히 취임 당시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AI 등에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 되면서 대규모 구조조정 카드를 꺼내들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에 추진하는 구조조정 대상) 업무와 인력은 지난 2018년 아현지사 화재 당시 노후화로 인해 문제가 되었고 이듬해 KT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국회 청문회가 열릴 만큼 사회적으로도 이슈가 되었던 부분과 관계가 있다”면서 “이후 통신 엔지니어 인력을 보강하고 통신구와 전신주 점검 등을 수행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통신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통신 인프라 투자는커녕 KT가 AI에 막대한 투자금을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이라, 비용(인건비) 절감에만 치중한 게 아닌가 싶다. KT가 통신 인프라라는 강점을 스스로 버리는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했다.

KT 내부에서 유출된 ‘현장 인력구조 혁신방안’이라는 제목의 문서에 따르면 인력 재배치 대상은 본사 네트워크 관리 부문 직원 약 5700명이다. 전체 직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KT OSP는 관련 직무 담당자 4400명의 77%에 해당하는 3400명을, KT P&M은 420명의 90% 수준인 380명을 추려낼 예정이다. 자회사로의 이동을 원하지 않는 경우 희망퇴직을 시행하기로 했다. 희망퇴직 접수기간은 오는 22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이며, 근속연수에 따라 최소 165%에서 최대 208.3%까지 퇴직금을 지급할 계획이다.

다만 혁신을 위한 몸집 줄이기가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있다. 한때 3만 명이 넘는 임직원이 다녔던 ‘공룡 KT’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거쳐 2만명 이하로 몸집을 줄였다. 그러나 올 1분기에 KT가 인건비로 지출한 비용은 1조1009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3% 상승했다.

KT 노조는 16일 오후 서울 광화문 KT 사옥 인근에서 사측이 전날 발표한 인력 개편안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전효진 기자

◇ “국정감사 이슈로 번질 수도”… 통신대란 우려

정치권 일각에서는 KT의 대규모 구조조정이 인프라 관리 역량 약화로 이어지면 2018년 아현지사 지하 통신구 화재와 같은 통신대란이 재발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는 오는 25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종합감사에서 김영섭 KT 대표를 불러 이번 구조조정에 대해 집중 질의할 예정이다. 이훈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KT 대주주가 현대차그룹으로 바뀌자마자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들고 나왔다”면서 “구조조정을 철회하지 않으면 과거 아현사태와 같은 통신대란이 발생할 우려가 커지는 만큼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에 대해 집중 질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감축하려는 노동자들이 담당하는 업무를 KT가 맡지 않고 자회사 또는 외주화하는 것이 적절한지 심각한 의문이 든다”며 “노동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기업 경영은 불법 경영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안정상 중앙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는 “민영화된 지 20년이 지났음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주인 없는 대기업’인 KT는 혼란과 수난을 겪어왔다”면서 “KT를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기업으로 만드는 건 현 대표의 중장기적 과제인데, 인력 구조조정 때문에 또 다시 정치권의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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