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매물 없는데 갑자기 1억5000만 원 올려 월세 가야 할 판”

김건희 객원기자 2024. 9. 22.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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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 ‘시계제로’ 부동산시장] 서울 대치·잠실·전농·면목동 임대차 2법 시행 4년 실태

● 공급 부족, ‘빌라 포비아’, 인플레이션이 주원인
● 2학기 시작한 학군지, 전세 매물 희귀
● 전·월세 못 구한 서민들 경기 외곽 이동
● “임대차 2법, 폐지보다 탄력적 운영해야”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에 위치한 래미안크레시아는 2396가구의 대단지이지만 최근 시장에 나온 전세 매물은 18건에 불과하다. [김건희 객원기자]
9월 9일 임대차 2법(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 시행 4년을 맞았다. 이를 기점으로 갱신된 계약기간이 속속 만료하면서 서울의 부동산중개소들은 집주인에게 걸려오는 전화 응대를 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한 중개소에서 만난 중개인 이모 씨는 중년 여성 고객과 상담을 하는 와중에 걸려오는 문의 전화를 받느라 몸이 부족할 지경이다. 이 씨는 "임대차 2법 1차 만기가 시작된 7월 말과 8월 한 달 동안 전세 재계약 15건과 신규 전세 계약 10건을 각각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 씨의 부연 설명이다.

50일간 재계약 15건, 신규 계약 10건 체결

"4년 전 잠실동 고급 아파트 단지로 꼽히는 엘스, 엘리스, 리센츠, 트리지움, 레이크팰리스 등에 입주한 전세 세입자 상당수가 그사이 인상된 전세보증금을 맞추기기 어려워 재계약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보증금 부담이 덜한 송파구 다른 아파트 단지로 주거지를 옮기는 이가 많아져 전세 물량이 소진됐다. 전세 수요가 많은데 물건이 부족하니 가격이 점차 상승하는 추세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에 따르면 7~8월 계약갱신청구권이 만료된 아파트 전·월세는 전국 2만6416가구다. 올해 말까지로 확대하면 총 6만4309가구의 갱신계약이 만료될 전망이다. 임대차 2법은 세입자 보호를 위해 전·월세 계약 기간을 4년(2+2년) 동안 보장하고 전·월세 인상폭을 최고 5%로 제한하는 것이 골자다.

부동산중개소에 문의 전화를 걸거나 직접 방문해 상담하는 집주인들은 임대차 2법 시즌1 종료에 해방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시세를 반영해 전세보증금이나 월세 임대료를 크게 올릴 생각이다. 이번에 2년간 신규 계약을 체결하면 향후 4년 상승분까지 선반영해 보증금을 올리려고 한다"고 입을 모았다.

대치동 학군지에 있는 부동산중개소는 9월 2학기 개학과 함께 이사 수요가 몰리는 요즘, 집주인들의 상담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계약갱신청구권 만료의 영향으로 시세만큼 전세보증금을 올려 재계약을 체결하거나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하는 계약이 늘어나는 추세다. 한번 입성하면 대학 진학할 때까지 옮기지 않는 대치동 특성이 반영된 결과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부동산중개인 김모 씨가 운영하는 중개업소는 주로 단국대부속중과 단국대부속고 진학을 염두에 둔 학부모를 세입자로 둔 임대인의 전·월세 문의가 주를 이룬다. 이 씨는 "슬하에 아들 형제를 둔 학부모가 선호하는 1순위 대치학군이 바로 대치1동"이라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대치동에서 단대부중과 단대부고로 진학할 가능성이 큰 아파트 단지는 대치아이파크, 롯데캐슬리베아파트, 대치래미안2차아파트, 래미안대치팰리스1단지, 래미안대치팰리스 2단지 등이다. 이 가운데서도 아들 둘을 키우는 학부모가 가장 선호하는 단지는 대치아이파크다. 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2011년생 남학생 가운데 올해 단대부중에 배정되지 않은 학생은 한 명뿐이라는 얘기가 나돌 만큼 단대부중 배정 가능성이 큰 아파트로 꼽힌다. 아파트 단지 후문에서 횡단보도만 건너면 단대부중·단대부고 정문을 통과할 수 있고, 대치동 메인 학원가와도 가깝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학부모들은 "단대부중이 대치동 소재 중학교 가운데서도 중간·기말고사 문제가 어렵고 까다로운 데다 시험 과목 수도 압도적으로 많아 고등학교 진학 전 공부량을 늘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단대부고의 의학 계열 및 서울대 진학률은 전국에서 손에 꼽힐 정도다.

2396가구 대단지에 전세 매물 고작 '18건'

대치아이파크 108㎡(약 32평) 아파트를 소유한 집주인 A씨는 2018년 2월 아들 둘을 둔 40대 부부와 전세 계약을 체결했다. 세입자는 지방에서 거주하다 이 아파트로 이사 와 7년째 전세살이를 하는 중이라고 한다. A씨는 "부동산시장이 한창 뜨겁던 2021~2022년 이 아파트 전세가가 17억~18억 원으로 뛰었는데도 기존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해 전세보증금을 5% 이하로 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야 계약갱신청구권 계약이 끝나 협의 끝에 기존 세입자와 16억 원에 전세 계약을 체결했다"고 말했다.

이와 반대로 근심 섞인 표정으로 재계약을 체결하는 세입자들도 눈에 띄었다.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에 위치한 래미안크레시티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40대 주부 이은주 씨는 "임대차 2법 덕에 4년간 집주인의 무리한 전세보증금 인상을 피할 수 있었는데, 8월 중순 계약기간이 종료됐다. 전세 매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더라. 집주인의 요구대로 전세보증금을 올려주는 게 낫겠다 싶어 재계약을 체결했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는 2396가구가 사는 대단지로 2013년 지어졌다. 단지 바로 옆에 전농초와 동대문중을 끼고 있어 도보로 이동이 가능한 데다 10분 거리에 지하철 1호선·수인분당선·경의중앙선 청량리역과 청량리롯데백화점, 청량리롯데마트, 청량리시장 등이 위치해 초·중·고생 자녀를 키우는 세입자들의 전세 수요가 높다. 2024년 9월 이 단지의 전용면적 112㎡(34평) 기준 전셋값은 7억5000만 원. 전년(5억6500만 원) 대비 1억8500만 원이 올랐다.

동대문구의 한 중개업소 중개인은 "실수요자들이 선호하는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매물 부족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래미안크레시티의 경우 2000가구 넘는데 최근 올라온 전세 매물은 18건에 불과하니 임차 수요가 꾸준한 상황에선 전셋값 상승 거래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다만 지속적인 가격 상승에 대한 부담감으로 인해 전셋값 상승폭은 요 며칠 사이에 다소 축소된 상황"이라고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전세살이에 이어 서울살이 포기

그렇지만 자금 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세입자들은 임대차보호법 시행에 따른 부작용을 고스란히 감내하고 있다.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실수요 선호도가 높은 일부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최근 전셋값이 큰 폭으로 뛰면서 서민 주거 불안을 부추기는 양상이다. 9월 5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9월 첫째 주(2일 기준)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이 기간 서울 전셋값은 전주 대비 0.15% 오르며 2023년 5월 넷째주를 시작으로 68주 연속 오름세를 이어갔다. 다만 9월 1일부터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시행되면서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축소된 데다 금융당국의 압박에 시중은행들도 대출 문턱을 잇따라 높이고 있어 상승 폭은 전주(0.17%)에 비해 줄어들었다.
서울 성동구 서울숲대림아파트 전경. 이 아파트 전세가는 전용면적 102㎡(약 33평) 기준 7억1500만 원의 시세를 형성하고 있다. 같은 평수 아파트는 보증금 4억 원에 월세 170만 원이다. [김건희 객원기자]
‌서울 성동구 서울숲대림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한 세입자는 "아파트 전세를 구하던 차에 임대차 2법이 시행됐다. 4년 사이 우리 아파트 단지의 전셋값이 1억4000~1억5000만 원 올랐다"며 "이번에는 분명 전세금을 시세에 맞춰 올리거나 월세로 전환하자고 할 텐테 벌써부터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4년 전 전세보증금을 마련할 때 전세대출을 받은 터라 자금을 더 구하기가 어렵다"며 "전세 매물이 귀해 마땅한 집을 구하지 못하고 결국 월세 사는 신세가 되겠구나 싶다"고 말했다. 현재 이 아파트의 전세가는 전용면적 102㎡(약 33평) 기준 7억1500만 원의 시세를 형성하고 있다. 같은 평수 아파트는 보증금 4억 원에 월세 170만 원이다.

서울 외곽지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 중랑구 면목아너스빌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한 세입자는 "세입자가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집을 고를 수 있어야 심리적 주거 안정감을 느끼는데, 내 집 마련은커녕 전세살이도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영·유아를 키우는 부모로서 붙박이장과 키친아일랜드가 있는 넓고 쾌적하고 따뜻하고 편리한 신축 아파트에 살고 싶은데, 수중에 가진 돈으로는 지은 지 17년 넘은 구축 아파트 59㎡(25평) 월세만 가능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고 토로했다.
서울 중랑구에 위치한 면목아너스빌아파트 단지 전경. 임대차 2법 시행 이후 4년 만에 전용면적 79㎡(23평) 기준 아파트 전셋값이 1억 원가량 올랐다. [김건희 객원기자]

2023년 5월 공급 넘어선 전세 수요

임대차 2법 1차 종료가 전·월세 시장에 미치는 파장에 따라 서울에서 경기 외곽으로 거주지를 옮기는 세입자도 만날 수 있었다. 서울 중랑구 빌라촌에 전세로 사는 40대 남성은 2020년 9월 49㎡(약 15평대) 방 3개, 화장실 2개, 베란다, 주차장과 엘리베이터를 갖춘 빌라의 전세 계약을 2억2500만 원에 맺었다. 9월 27일 갱신 계약 종료를 앞둔 현재, 이 빌라의 전세보증금은 3억5000만 원으로 4년 새 1억2500만 원이 올랐다.

그는 집을 알아보면서 두 가지를 포기했다고 한다. 첫째가 전세살이다. 빌라 전세가마저 큰 폭으로 올라 월세 시세를 알아봤으나 매달 75만 원에 이르는 월세 부담이 크게 느껴졌다. 이내 그는 빌라 전·월세 사기의 우려로 비아파트 기피 현상이 심화된 분위기를 파악하고 서울 거주를 포기했다. 서울에서 네 식구가 거주할 만한 곳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지금은 경기 양주 구축 아파트 전세로 옮기는 것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이 남성은 "이제 갓 결혼해 아이를 낳은 30~40대 부부 가운데 기존 전세대출금 이외 여윳돈 1억 원을 가진 경우가 얼마나 되겠느냐"며 "이제는 아예 갈 데가 없을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서울 아파트 전세가 상승 압력이 커진 까닭은 시장의 수급 균형이 무너진 데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한 서울 아파트 전세수급지수는 올해 5월 129.6으로, 직전 최고점인 127.9(2022년 9월)를 넘어섰다. 전세수급지수는 '0~200' 사이의 수치로 나타내며 200에 가까울수록 수요가 더 많음을, 0에 가까울수록 공급이 더 많음을 뜻한다. 기준선(100)을 돌파한 수치는 전세 수요가 공급을 넘어섰음을 의미한다. 여기에 신규 입주 물량이 감소하고 임대차 2법 만기 영향 등이 겹치면서 올해 하반기 서울 아파트 전세 가격의 추가 상승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2024년 하반기 서울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은 총 1만8577가구로, 그중 11월 입주 예정인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1만2032가구)을 제외한 물량은 6545가구에 불과하다. 임대차 시장은 공급과 수요 영향을 크게 받는데 서울의 경우 일부 구에만 공급이 한정돼 당분간 아파트 전세가 상승 압력이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임대차 2법 폐지에 무게를 두기보다는 개정을 통해 제도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계약갱신청구권은 2+2년이 기본인데, 세입자가 학령기 자녀를 둔 경우라면 '3+1년'을 허용하는 등 계약기간의 자유를 주자는 것이다. 익명을 원한 서울 소재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대차 2법의 부작용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전세 시장을 뒤흔들 만큼 파장을 미친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갱신계약 시 과도한 임차료 인상 제한으로 시장에 3중 가격(신규 계약, 청구권 사용한 기존 계약 갱신, 청구권 사용하지 않은 기존 계약 갱신)이 형성되고, 신규와 갱신 계약 간 임대료 격차가 커지는 등 혼란이 발생하는 만큼 인상률 제한을 획일화하는 것은 부작용이 크다. 임대차 2법이 부동산시장을 어지럽히지 않고 임대차 시장을 안정화하는 순기능을 하려면 상황에 맞는 탄력적 운용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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