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그랜저 하이브리드...평범하지 않다

조회수 2023. 1. 2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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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랜저 오너다. 지금은 아니고 오래전에 3세대(XG)를 탔다. 과거 오너로서 오늘날의 그랜저를 보노라면…. 솔직히 안 끌린다. 최고가 세단이던 1·2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 3세대까지만 해도 특별한 차를 타는 기분이 났는데, 지금의 위상은 마치 덩치 큰 쏘나타 같달까. 물고기 얼굴 닮은 6세대 후기형은 그랜저라는 이름이 다 아까웠다.

5m 넘는 기다란 차체, 길쭉하게 늘인 뒤쪽 오버행, 바짝 깎은 앞쪽 오버행이 어우러져 비율이 멋스럽다

그런 내가 다시 그랜저에 흔들릴 날이 올 줄이야. 최신 7세대를 마주하고 깜짝 놀랐다. 1세대 에쿠스 (5065mm)에 육박하는 길이 5035mm 덩치도 대단하지만, 길쭉하게 늘어뜨린 뒤쪽 오버행으로 꾸린 비율이 여유롭다. 이전보다 무려 50mm나 늘인 1170mm다. 반면 앞바퀴굴림 세단 비율 망치는 주범 앞쪽 오버행은 970mm로 15mm를 줄였다. 앞은 줄이고 뒤는 늘려 뒷바퀴굴림 세단 비율에 다가선 셈. 말끔한 정통 세단 윤곽 덕분에 우월한 비율이 더더욱 돋보인다. 결코 평범하지 않다.

네모 각진 대시보드와 1스포크 스타일 스티어링휠 등 레트로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버무렸다


프레임리스 도어 / 1세대 그랜저를 따른 쿼터 글라스

그랜저만의 특별함은 문짝에서 방점을 찍는다. 창틀이 없는 프레임리스 도어다. 3세대 탈 때 종종 “우와, 스포츠카 같다!”라는 감탄사를 듣던 매력 포인트다. 물론 그때보다 진보했다. 여닫을 때 유리창을 내렸다가 올려 실내 차폐감을 높인다. 그 안으로 비치는 실내 역시 1세대를 계승한 각진 대시보드와 1스포크 스타일 스티어링휠이 현대차보다 그랜저라는 브랜드에 집중한 모습이라 더 정이 간다.

운전 자세는 조금 의아하다. 세단다운 폭 파묻힌 감각을 기대했건만 시트 높이가 높다. 등받이를 세워 앉으면 천장에 머리가 닿을락 말락 스칠 정도. 주행모드를 스포츠로 바꾸면 에르고모션 시트가 쿠션 속 공기를 빼 높이를 낮추는데, 평소 주행모드에서도 똑같이 설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 스티어링휠 앞뒤 조정 거리도 살짝 짧은 편이다.

누가 하이브리드 아니랄까봐 주황색 범벅이다

시승차는 직렬 4기통 1.6L 터보 엔진에 전기모터를 맞물린 하이브리드 모델이다. 보수적인 나로서는 달갑지 않다. 그랜저가 4기통? 더욱이 1.6L라니? 그랜저 역사상 첫 2.0L 아래급 엔진이다. ‘라테는 말이야’ 화법으로 말하자면 2.0L는 한국 고급 세단의 뿌리다. 1980년대를 주름잡던 대우 로얄 살롱이 2.0L였고 현대 그라나다도, 그랜저도 처음엔 2.0L였다. 터보와 전기모터가 판치는 요즘은 다 쓸모없는 얘기다. 그냥 ‘나 때는’ 그랬다고.

정숙성이 나쁘기라도 했다면 거품 물고 불만을 쏟았겠지만,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은 6기통이 부럽지 않았다. 최대토크 26.9kg·m 전기모터가 저속에서 엔진을 잠재워 주차장을 미끄러지듯 누빈다. 도로 위에서는 엔진이 수시로 깨지만 충격이 없어서 운전자는 지금 어떤 동력원으로 달리는지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낭창낭창하게 힘을 뺀 서스펜션과 어우러져 주행감각은 무척 매끄러웠다.

하이브리드 배터리를 얹으면서 뒷좌석 리클라이닝 기능은 사라졌다


트렁크 용량은 일반 가솔린 모델과 똑같은 480L다

하, 또 세단 상사병이 도져버렸다. 스티어링휠을 꺾어 코너를 도는데, 운전자 엉덩이 한참 뒤에서 따라오는 뒷바퀴 감각이 느긋하다. 휠베이스 2895mm는 동급 앞바퀴굴림 세단 가운데 가히 최장이다. 요철을 더 여유로이 넘고 스티어링휠 반응은 한층 진중하다. 애매하게 역동성을 더하려던 이전과 달리 지향점이 또렷하다.

속도가 오르면 오를수록 매력은 배가됐다. 그랜저는 자잘한 진동을 꿀꺽 삼키면서도 안정적으로 내달렸다. 잔진동 대응 성능을 높인 댐퍼(주파수 감응형 고성능 쇽업소버)와 무게 중심을 끌어내린 3세대 플랫폼이 주된 비결이다. 그리고 조용하다. 3세대 프레임리스 도어는 바람 소리가 들이쳤기에(심지어 태풍을 만나면 물방울도 샜다) 다소 걱정했지만 7세대는 달랐다. 되려 제네시스를 넘볼 만큼 정숙하다. 문짝을 3중으로 틀어막고 바닥에 흡음층과 차음층을 나눈 카펫을 깔았으며 전 좌석 이중 접합 차음 유리, 흡음재를 씌운 타이어까지 아낌없이 쓴 노력의 결과다.

조용하고 부드럽고 안락하고…. 그렇다고 이 차가 마냥 고리타분한 세단은 아니다. 최고출력 180마력 1.6L 터보 엔진과 60마력 전기모터가 힘을 합친 시스템출력 230마력 성능은 1.7t 덩치를 가뿐히 내몬다. 저속 토크 좋은 단어 ‘터보’와 ‘전기모터’가 한데 뭉친 만큼 저속 가속은 호쾌하고, 높은 출력 수치로 엿볼 수 있듯 고속 가속도 거뜬하다. 백미는 하이브리드 구동계로 구현한 토크벡터링과 앞뒤 무게 배분 기술이다. 토크벡터링은 선회 시 코너 안쪽 바퀴에 제동을 걸고 바깥쪽 바퀴는 가속해 차체를 코너 안쪽으로 비틀어 넣는다. 무게 배분 기술을 전기모터 가감속으로 앞바퀴와 뒷바퀴에 싣는 무게를 조율해 선회 성능을 높인다. 다만 체감은 해보지 못했다. 사진 속 배경을 보라.

시승 중간에 찍은 연비. 최종 연비는 1L에 16.1km였다

시승 기간 동안 기록한 누적 연비는 1L에 16.1km다. 눈이 펑펑 내린 도심을 주로 달렸던 상황을 고려하면 썩 만족스러운 연비다. 가혹한 환경 속에서도 공인 복합 연비 1L에 15.7km를 살짝 넘어섰다. 5m 넘는 대형 세단의 높은 효율을 보고 있노라니, 처음 마주했을 때 2.0L보다 작은 배기량에 대한 불만은 온데간데없이 녹아버렸다.

과거 3세대 그랜저는 지금까지도 가장 만족스러운 기억으로 남은 자동차다. 말끔한 스타일과 남다른 고급스러움이 좋았고 여유로운 승차감과 준수한 연료 효율(V6 2.0L+수동이었다)이 매력적이었다. 최신 7세대 그랜저를 보며 그 차가 떠올랐다. 더없이 깔끔하고 비율은 멋스럽다. 안락한데다 효율까지 빼어나다. 무엇보다 옛날 그랜저처럼 특별하다. 진정한 그랜저가 돌아왔다.

윤지수 사진 이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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