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도로 풍경은 참 지루합니다. 검은 아스팔트와 잿빛 건물들, 차종을 막론하고 무채색으로 칠해진 데다 요즘 같은 겨울철에는 가로수마저 앙상하니 지루함을 넘어서 삭막함까지 느껴지는데요.
이런 와중에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워지는 차들이 있습니다. 바로 도로 위를 알록달록 수놓는 소형차들이죠. 그중에서도 강렬한 컬러가 유난히 잘 어울렸던 우리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한 비운의 소형 해치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해치백 무덤' 대한민국에 괜스레 발을 들였다 출시 1년 만에 사라져 버린 '유럽 소형 해치백의 제왕', 이번 시간에는 르노 '클리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해치백 클리오는 르노삼성의 모기업 르노의 주력 차종 중 하나로, 아시다시피 프랑스 출신입니다.
예술과 명품의 나라이자 동시에 유럽 특유의 실용주의가 어우러진 프랑스는 대부분의 유럽 국가가 그러하듯 오래된 도시가 많아 만성적인 주차난에 시달렸고, 비좁은 도로를 누빌 일이 많다 보니 소형차가 발달하게 됐는데, 그중에서도 기동성과 실용성이 뛰어난 해치백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옆 나라 일본도 비슷한 이유로 예전부터 해치백이 많이 팔리는 시장이었죠.

이로 인해 역사 깊은 프랑스 브랜드들은 예로부터 대형차보다는 소형차를, 세단보다는 해치백을 만드는 데 더 집중했고, 전 세계 어느 브랜드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뛰어난 소형차를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대형 세단이나 SUV에는 영 힘을 못 쓰다 보니 지금도 대중 차, 고급 차 할 것 없이 작은 차에 집중하는 모양새죠. 고작 투싼 크기의 'DS7'을 대통령 의전 차로 쓰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에요.

또 뛰어난 효율을 위한 디젤 엔진 역시 상당한 기술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유럽 내 승용차뿐만 아니라 상용차 시장에서도 만만치 않은 존재감을 가지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B 세그먼트', 우리나라로 치면 프라이드급에 속하는 클리오는 1990년 출시되어 현재 5세대에 이르고 있는 전통 있는 모델입니다. 홈타운인 프랑스는 물론 소형 해치백의 격전지 유럽 시장 안에서 푸조 '200시리즈', 폭스바겐 '폴로', 포드 '피에스타' 등 쟁쟁한 경쟁 차들 사이에서도 늘 제왕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르노의 주력 상품이에요.

물론 해치백의 대명사격 모델인 폭스바겐 '골프'만큼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는 차는 아니지만 유럽 내 입지는 상당하고, 그저 동급에서 잘 팔리는 수준을 넘어서 유럽에 판매되는 모든 차량 중에서 톱 3 안에 드는 어마어마한 모델입니다.
국내에서는 만나볼 수 없지만, '클리오 R.S', '트로피' 등 고성능 라인업까지 갖추고 있고, 각종 모터스포츠에 참가해 걸출한 성과를 기록하는 것은 물론, '클리오 컵' 같은 자체 원메이크 레이싱을 개최할 정도로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상위 모델인 '메간' 해치백과 함께 각종 레이싱 게임에도 단골로 등장하죠.

르노 삼성이 이런 클리오를 국내에 들여온다는 소식에 소비자들은 기대감을 내비쳤습니다. 'SM6'와 'QM6'가 연이어 대박을 터뜨린 가운데 내친김에 본토에서 인정받은 유러피언 해치백까지 추가해 포트폴리오를 강화한다는 전략이었고, 앞서 터줏대감 현대 '엑센트'와 기아 '프라이드'가 차례로 국내 시장을 포기했기 때문에 타이밍도 적절해 보였어요.
먼저 유럽 시장에서 르노 '캡처'로 판매되는 소형 SUV를 'QM3'라는 이름으로 판매한 것으로 미루어 'SM2'로 출시될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지만, 예상과 달리 2017년 서울 모터쇼에 선보인 그 모습 그대로 르노 로고를 달고 본명인 '클리오'로 출시됐죠.

국내에 판매된 모델은 2011년 출시된 '4세대 클리오'의 페이스리프트 버전으로, 수차례 디자인과 파워트레인이 개선된 최후기형 모델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르노 브랜드를 통해 정식으로 소개된 첫 번째 르노 차량이라는 것에 그 의미가 컸는데요. 물론 오래전 쌍용이 수입한 '르노 25' 세단과 소형 전기차 '트위지'가 있기는 하지만, 좀 특수한 케이스라 넘어가도록 하고요.

외관은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차급을 떠올리면 호화 사양인 LED 헤드램프와 리어램프, 이에 모자라 안개등까지 LED로 채워 강렬한 인상을 만들어냈고, 휠 하우스를 가득 메우는 거대한 17인치 휠, 운동으로 다져진 매끈한 몸매를 보듯 유려함과 탄탄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바디라인은오히려 SUV 'QM3'보다도 짱짱해 보이는 정말 옹골찬 생김새였습니다.

여기에 국내 소비자들에게 생소한 마름모꼴 '로장쥬' 로고까지 어우러져 프리미엄 브랜드로 착각할 만큼 고급스러웠고, 당시 풀체인지를 앞두고 있는 모델이었음에도 누가 말 안 해주면 그 해 신차로 출시됐다고 해도 믿을 만큼 디자인이 멋스러웠죠.
쉐보레 '스파크'처럼 뒷문 손잡이를 C 필러에 숨겨 언뜻 보면 3도어 쿠페 같아 보이기도 했고, 일부 색상은 적재적소에 레드 포인트를 더해 더욱 스포티한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실내는 탄식이 절로 나왔습니다. 오로지 운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의도한 것인지 구성이 아주 간결했는데, 앞서 출시된 형제 차인 QM3와 많은 부분을 공유하는 만큼 못생긴 실내도 판박이였어요.
직물 소재를 즐겨 쓰는 프랑스 브랜드답게 직물과 가죽이 혼용된 세미 버킷 시트는 과격한 주행에서도 몸을 잘 지지해 줬고, 스티어링 휠은 림이 두툼해 쥐는 맛이 좋았습니다.

너머에 자리한 계기판은 3개의 실린더가 겹쳐진 구성으로 디지털 속도계의 아날로그 타코미터가 조합된 독특한 구성이었습니다. 연료 게이지가 유별나게 큰데, 연비가 또 유별나게 좋아서 바늘이 거의 고정돼 있더라고요.
상단에는 운행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표기해 줬지만, 현지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전부 영어로 표기됐는데요. QM3에도 동일한 구성을 쓰면서 이 차는 왜 안 해 줬는지 의문이에요.

순정 T-MAP 내비게이션은 깔끔한 마감과 태블릿 PC를 조작하는 듯한 UI가 돋보였습니다. 실제로 갤럭시 탭을 탈착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대체하도록 한 'T2C'라는 독특한 옵션을 제공하기도 했죠. 여기에 7개 스피커의 BOSE 사운드 시스템을 마련해 차급을 감안하면 꽤 괜찮은 음질을 선사했습니다.
특히 후방카메라 화면을 이어 붙여 마치 어라운드뷰 같은 화면을 제공하는 'EZ파킹'이라는 독특한 기능이 있어서 주차할 때 은근히 도움이 됐어요. 가만 보면 르노와 푸조 같은 프랑스 차들만 이 기능을 쓰고 있는데, 아이디어가 참 좋더라고요.

다만 최신 모델들과 달리 카플레이나 안드로이드 오토 같은 폰 커넥트 시스템을 이용할 수 없어 아쉬웠고, 계기판이 너무 단순해 차선이탈 경고 등 주행 안전장치에 대한 정보를 센터 모니터에서 확인해야 하는 건 골 때리는 부분이었습니다.
하단에 자리한 누가 봐도 매뉴얼처럼 생긴 공조기는 사실 풀 오토 방식으로, 보기에는 영 그래도 조작 편의성은 뛰어났고, 하이패스 룸미러와 락폴딩 사이드미러 등 국내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편의 장비를 나름 충실하게 챙기기도 했어요.

뒷좌석은 외관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넉넉한 크기는 아니었고 체감상 스파크나 모닝보다 살짝 큰 수준이었습니다. 나중에 추가된 최상위 트림에는 널찍한 글라스 루프를 제공, 개방은 안 되지만 개방감을 높일 수는 있었어요.
그래도 트렁크 공간은 경차와 비교하면 확실히 넉넉했는데, 6:4로 나뉘는 등받이를 접으면 소형 SUV 부럽지 않은 광활한 적재공간이 펼쳐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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