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 수술한 중견수…정작 글러브는 17년 낡은 것만 고집

신조 쓰요시 SNS

40년 전의 주문서

일본 후쿠오카에 있는 업소다. 유명 스포츠 용품점의 지점이다. 이곳 업주가 보관하고 있는 편지가 있다. 받은 게 벌써 40년 전이다.

“글쎄요. 이걸 왜 아직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누가 준 것인지는 또렷이 기억하죠. 아버지 손을 잡고 자주 가게를 찾던 단골손님이었어요.” (업주의 얘기)

편지는 B5 용지에 적혔다. 일종의 주문서 같은 형식이다. 원하는 (야구) 글러브의 제작을 의뢰하는 내용이다. 꽤 상세하고, 구체적이다. 요구 사항이 조목조목 적혔다.

일단 모델명이 분명하다. ‘C-300 KSG-SPT’로 명시됐다. ‘구보타 슬러거’의 외야수용이다. 키나 체격이 어느 정도 되는 성인용 규격이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다. 갖가지 옵션도 첨부된다. 오렌지 색이어야 한다. 표피의 소재도 언급된다. 부드럽지만, 어느 정도 그립감이 있어야 한다.

그림도 있다. 마크의 위치가 정확히 표시됐다. 그 외에도 세세한 요구 사항이 들어있다. 배송 시기도 대한 신신당부도 잊지 않는다.

“대회까지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빨리 마무리해서 보내주시면 좋겠습니다.” (편지 내용)

얼마나 마음이 급했을까. 봉투에 흔적이 역력하다. 봉인을 풀이나 테이프로 하지 못했다. (의료용) 반창고로 대신했다. 아마 서두른 탓이리라.

하지만 배송은 물론, 제작도 이뤄지지 않았다. 특별한 요청에 결격 사유가 있어서다. 바로 글러브의 크기다. “보통 제품보다 2cm 정도 길게 만들어주세요”라는 항목이다.

업주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렇게 만들면 규정 위반이다. 게임 때는 쓸 수 없게 된다.” 그러나 훗날 실제로 제작됐다. 기념품으로 소장하기 위해서다.

고교생 신조가 편지로 보낸 글러브 주문서. 매체 Nishispo Web Otto 캡처
고교생 신조가 주문한 글러브(오른쪽)가 훗날 실제로 제작됐다. 매체 Nishispo Web Otto 캡처

드래프트 5번으로 프로 선수

40년 전의 엉뚱한 주문서다. 발신자는 다름 아닌 신조 쓰요시(54)다. 그가 고교 시절(니시니폰 단기대 부속 고교) 보냈던 편지의 주인이다.

현역 시절은 주로 한신 타이거스(1990~2000)에서 활약했다. 메이저리그에도 갔다. 뉴욕 메츠(2001, 2003), SF 자이언츠(2002)를 거쳤다. 일본 복귀는 삿포로에서 이뤄졌다. 니폰햄 화이터즈(2004~2006)에서 은퇴했다.

현직은 감독이다. 니폰햄의 사령탑을 맡고 있다. 2022년에 부임했다. 올해가 5년 째다.

당돌한 고교생의 실력은 어땠을까. 유감스럽게도 ‘별로’였다.

일단 출발 자체가 늦다. 입학을 일반 학생으로 했다. 어찌어찌 야구부에 들어갔다. 하지만, 주전은 턱도 없다. 아니, 학교 자체가 야구 명문이 아니다. 내내 지역 예선만 돌았다. 3년 동안 문턱을 넘은 적이 없다.

그나마 3학년이 돼서 출전 기회가 늘었다. 1번 타자, 중견수가 그의 자리였다.

두어 차례 사이클링 히트도 기록했다. 극적인 끝내기 안타를 치기도 했다. 덕분에 지켜보는 눈들이 생겼다.

훗날 알려진 메모다. 당시 한신 스카우트가 적은 노트다. ‘타격 B, 주력 A, 송구 능력 특A’라는 평가였다. 고교생의 어깨 치고는 놀랍다는 주석이 달렸다.

드디어 지명을 받았다. 드래프트 5번으로 프로 선수가 됐다. 꿈의 고시엔 구장이 홈 그라운드(한신)가 됐다. (계약금 3700만 엔/연봉 360만 엔. 약 3억 5000만 원/6000만 원)

물론 1군은 꿈도 꾸기 어렵다. 고교 출신이, 그것도 야수(타자)가 넘볼 곳이 아니다. 데뷔는 2년째에 이뤄졌다. 내야 빈 곳을 메우는 임무였다. 지금으로 치면 유틸리티인 셈이다.

일본 아사히 TV 6채널 ABC-TV 공식 유튜브 채널

연예인급 인기를 누린 전성기

그는 분명 인기 스타다. 한신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선수가 됐다.

그러나 순전히 야구 실력 때문이 아니다. 다른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우선 모델 같은 외모 덕분이다. 182cm, 78kg의 체격이다. 체지방율은 3% 이하로 내려간다.

그런 몸에도 근력이 장난 아니다. 악력이 좌우 79kg, 88kg으로 측정됐다. 스모 선수에도 뒤지지 않는 수치다. 허리 힘은 220kg로 기록됐다. 팀 내 최고였다.

여기에 화제의 퍼포먼스도 종종 선보인다. 익히 알려진 강한 어깨다. 그걸 바탕으로 마운드에 오르기도 했다. 1999년 시범 경기에 등판했다. 최고 143km의 공으로 1이닝을 삭제했다. 3자 범퇴였다. 이도류의 원조격이다.

같은 해 6월에는 ‘역사에 남을’ 끝내기 안타를 쳐냈다. 연장 12회 말 1사 3루였다. 그의 타석이 되자, 상대는 고의 4구를 택했다. 멀찍이 빠지는 공을 연달아 던졌다.

그런데 2구째가 조금 완만했다. 그걸 놓치지 않는다. 매서운 스윙으로 3ㆍ유간을 정확히 뺐다. 타구는 좌익수 앞으로 구른다. 그 사이 3루 주자가 홈을 밟았다. 경기 끝이다.

상대가 천적 요미우리였다. 그래서 더 극적인 순간이다. 사령탑이던 노무라 가쓰야 감독이 헛웃음을 짓는다. “저 녀석은 우주인이야”라며 기발함에 탄복했다.

이 장면은 두고두고 논란이 됐다. 타석을 벗어난 부정 타격이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본인도 방송에 나가 솔직히 인정했다. “만약 비디오 판독이 있었다면, 아웃이었을 것”이라고 시인했다.

아무튼.

3할을 친 시즌이 한 번도 없다. 타율은 대략 0.250~0.270 정도였다. 가장 잘 친 것이 0.298(2004년 니폰햄)이다. 생애 통산은 0.254에 그친다.

홈런은 좀 쳤다. 20개를 넘긴 해가 5번 있었다.

평가받는 부문은 주로 수비였다. 뛰어난 중견수였기 때문이다. 폭넓은 범위, 탁월한 송구 능력으로 고시엔의 외야를 누볐다. 골든글러브를 10차례나 수상했다.

유튜브 채널 HTB 홋카이도 스포츠

프로 첫 월급으로 장만한 글러브

1년이 조금 넘었다. 그러니까 2024년 9월이다. 자신의 SNS에 게시물 하나를 올렸다. 낡은 글러브 사진이다.

이런 글이 달렸다.

“글러브는 야구 선수에게 심장과 같은 것입니다. 나는 이 7500엔짜리 글러브 덕분에 아슬아슬한 플레이를 성공시켰습니다. 다행히 공이 안으로 들어와 줬고, 기억에 남는 플레이가 탄생했습니다.”

담담한 고백이다. 얘기는 이어진다.

“어릴 적 아버지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모쪼록 장사하는 사람은 도구를 소중히 해야 한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그 뜻에 따랐습니다. 17년간 프로 생활 동안 수선을 거듭하면서 사용했습니다. 한 번도 바꾸지 않고 현역 마지막 경기까지 썼습니다.”

놀라운 일이다. 정상급 프로 선수다. 유명 업체에서 맞춤형 제품을 제공하는 게 일반적이다. 요즘은 동호인들도 몇 십만 원짜리를 쓴다. 그런데 그의 경우는 아니라는 말이다.

구입 시기는 1990년이다. 한신 입단 초다. 프로가 돼서, 첫 월급으로 산 글러브다. 당시 가격이 7500엔, 우리 돈으로 7만 원 정도다. 그걸 애지중지하면서 간직했다는 얘기다.

한 번은 스파이크에 밟혀 찢어졌다. 몇 번은 강한 타구에 줄이 끊어지기도 했다. 그때마다 대수술과도 같은 수선 작업을 거쳤다. 그렇게 닦고, 다듬고, 꿰매고, 고쳐 가면서 긴 시간을 함께 했다.

그는 연예인 기질이 다분하다. 겨울이면 한국을 찾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성형 수술한 경험을 굳이 숨기지도 않는다. 그걸 가리기 위해 마스크를 쓴다는 얘기도 비밀이 아니다.

게다가 명품족이다. 한 벌에 몇 천만 원짜리 맞춤 슈트도 애용한다. 차는 두말할 것도 없다. 타고 다니는 슈퍼카만 여러 종류다.

그런 빅보스(감독 첫 해 등록명)도 정색하는 대목이 있다. SNS에는 후배들에 대한 당부도 빠지지 않는다.

“지금은 멋진 글러브가 많기 때문에 매년 바꾸는 선수의 기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프로라면 플레이로 (멋진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장비를 소중히 하는 사람은 인간도 소중하게 여기고, 다른 이들도 그를 소중히 여길 것입니다.”

신조 쓰요시 SNS
신조 쓰요시 SNS

에필로그

2011년의 일이다. 그의 부친이 세상을 떠났다. ‘도구를 소중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준 인물이다.

평생 힘든 일(조경업)을 했다. 넉넉한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아들 뒷바라지는 마다하지 않았다.

어느 겨울이었다. 평생 뭘 사달라고 한 적 없는 고교생 아들의 푸념이다. “손이 시려, 훈련을 못하겠어요.” 그러자 아버지가 지갑을 연다. 작업용 장갑을 사려고 모아 뒀던 돈이다. 그걸로 털장갑을 마련했다. 아들 손에 꼭 쥐어 준다.

장례 마지막 날이다. 고인을 보내 드릴 시간이다. 아들은 누운 아버지 곁(관)에 뭔가를 살포시 넣어 놓는다. 평생 소중했던 것, 그의 오늘을 있게 한 것, 17년간 고이 간직하던 것, 아버지와 자신의 꿈이 고스란히 깃든 것.

바로 그 7500엔짜리 낡은 글러브였다.

신조 쓰요시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