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盧 명품시계 보도 국정원발…고대영한테 들어"

김도연 기자 2023. 3. 19.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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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규 전 중수부장 회고록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
고대영 "국정원이 하라는데 국영방송이…" 발언 기술
"KBS 보도는 국정원에서 취재한 것" 사실 확인서도
고대영 "회고록 사실과 달라…정상적 절차 거쳐 보도"
이인규 "SBS 논두렁 보도에도 검찰 개입한 적 없어"

[미디어오늘 김도연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시가 2억 원 상당의 피아제 명품 시계 2개를 받았다는 2009년 KBS 보도 배후에 국가정보원이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 가족들의 뇌물 혐의를 수사했던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은 최근 출간한 회고록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에서 당시 고대영 KBS 보도국장(전 KBS 사장)을 만나 들었던 이야기를 공개했다.

이인규 “고대영, 국정원이 시켜서 보도했다고 말해”

회고록에 따르면, 이 전 부장과 고 전 사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으로 수사가 종료된 2009년 6월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천'이라는 한식집에서 만났다. 이 자리는 경동고등학교 출신 공직자 모임으로, 고 전 사장이 경동고 1년 선배였다.

고 전 사장이 이 모임에서 “9시 뉴스에서 보도한 노 전 대통령 부부의 시계 수수 사실은 국정원에서 준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게 이 전 부장의 주장이다. 이 전 부장이 고 전 사장에게 “시시하게 시계 수수 사실을 보도해서 전직 대통령에게 망신을 주느냐”고 묻자, 고 전 사장은 “국정원 대변인 이종태가 우리 고등학교 친구잖아. 국정원에서 하라는데 국영방송이 어떻게 하겠어”라고 답했다. 국정원의 보도 지시를 거절할 수 없었다는 취지로 읽히는 대목이다.

▲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회고록/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조갑제닷컴

회고록을 보면 이 전 부장은 지난해 1월14일 오후 같은 한식집에서 이종태 전 국정원 대변인을 만나 “고대영 선배가 2009년 4월22일 KBS 9시 노 전 대통령 시계 보도는 선배님이 시켜서 한 것이라고 하는데 사실이냐”고 물었고 이 전 대변인은 “맞다”고 시인했다.

KBS '뉴스9'은 노 전 대통령 수사가 한창이던 2009년 4월22일 <회갑 선물로 부부가 억대 시계>라는 제목으로 박 회장이 2006년 9월 노 대통령 측에 개당 가격이 1억 원에 달하는 스위스 피아제 명품 시계 2개를 건넸다고 보도했다.

'국정원 연루' 의혹 고대영 “정상적 절차 거친 보도였다”

이 전 부장 주장은 공영방송 보도국장이 국정원의 보도 요구 또는 지시 하달에 무비판적으로 응한 것으로 해석돼 논란이 예상된다. 더욱이 고 전 사장은 '국정원 공작'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은 전력이 있다.

지난 2017년 11월 언론노조 KBS본부는 2009년 7월31일자 KBS 보도위원회(보도 실무자와 책임자가 KBS 보도에 대해서 논하는 자리) 녹취록 일부를 공개한 적 있는데, 당시 고대영 보도국장은 노 전 대통령 시계 수수 보도에 추궁이 이어지자 “내가 사이드(side)로 취재해봤다”며 “내가 이미 소스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고 발언했다.

고 전 사장은 KBS 사장 시절인 2017년 11월 국정감사에서 '사이드'가 누구냐는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검찰 측에 내가 물어봤다”며 소스를 국정원이 아닌 '검찰'을 지목했고 “기자가 취재원 밝혀야 하느냐. 취재원은 밝힐 수 없다”면서 국정원과의 유착 의혹을 부인했다.

2009년 5월 이명박 정부 국정원은 '고대영 보도국장 협조'라는 문건을 작성했다. 문건에는 '국정원의 노무현 수사 개입' 의혹을 비보도 요청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고 전 사장은 19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이 전 부장 주장은) 사실과 좀 다르다”며 “우리는 정상적 취재 절차를 거쳐 보도했다”고 반박했다. 당시 보도 출처에 대해선 “(검찰 외에도) 여러 소스가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미 지난 일이고 본인(이인규)이 그렇게 써놓은 것에 왈가왈부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 사람(이인규)이 지난 5년 동안 (정권으로부터) 많이 당해 그렇게 (기록)한 모양”이라고 했다.

이인규 “'논두렁' 표현 만든 건, 국정원 정보비서관”

이 전 부장은 KBS 보도뿐 아니라 한 달여 뒤인 2009년 5월13일자 SBS <“시계, 논두렁에 버렸다”> 기사도 국정원 소스라는 입장이다.

이른바 SBS '논두렁 시계' 보도는 권양숙 여사가 남편 몰래 시계를 받아서 보관했다가 수사가 시작되자 봉하마을 논두렁에 버렸다는 내용으로 검찰이 악의적으로 노 전 대통령 진술을 흘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에서 명품 시계에 “집사람이 수사가 시작된 후 밖에 내다버렸다”고 진술했을 뿐 '봉하마을 논두렁'이라는 표현은 노 전 대통령 수사 기록 어디에도 없다고 이 전 부장은 반박했다.

앞서 이 전 부장은 2018년 6월 “SBS 논두렁 시계 보도 배후에 국정원이 있다는 강한 심증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가 그해 11월 SBS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피소됐다. 회고록에 따르면 이 전 부장은 고 전 사장에게서 “2009년 4월22일 KBS 9시 뉴스 보도는 국정원에서 취재한 것”이라는 확인서를 받아 검찰에 제출했다. 검찰은 4년 만인 지난해 10월 이 전 부장에게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다.

이 전 부장은 이종태 전 국정원 대변인 발언을 인용해 '논두렁'이라는 표현을 원세훈 국정원장 측근에서 정보를 다루는 정보비서관 고아무개씨가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회고록에 따르면, 이종태 전 대변인은 '누가 논두렁이란 단어를 만들었느냐'는 이 전 부장 질문에 “국정원에도 검찰과 같이 원장 측근에서 정보를 다루는 '정보비서관'이라는 직책이 있다. 그 당시 정보비서관이 고○○이란 사람인데 그 친구 작품”이라고 했다.

▲ 고대영 전 KBS 사장. ⓒ미디어오늘

한편, 이 전 부장은 '논두렁 시계'를 검찰의 전직 대통령 망신 주기라고 비난한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해 “노 대통령 내외가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2억 원이 넘는 피아제 남녀 명품 시계를 받은 사실은 감추”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전 부장은 문 전 대통령을 겨냥해 “검찰이 허위 사실로 죄 없는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등 '논두렁 시계' 프레임으로 국민을 속이고 있다”며 “검찰은 '논두렁 시계' 관련 보도에 개입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전 부장은 이번 회고록에서 박연차 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건넨 640만 달러와 피아제 명품 시계는 뇌물이며 유죄를 받을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전 부장의 수사 내용 폭로에 비판도 거세다. “이미 피의자가 사망한 마당에, 책임 검사가 법정이 아닌 곳에서 세상에 떠벌리듯 하는 것은 지극히 무책임하고 황당한 짓”(한국일보 18일자 사설)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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