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해운사들의 경쟁력을 들여다봅니다.

팬오션이 글로벌 톱 티어 벌크선사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배경은 장·단기 계약 비중을 탄력적으로 조율하는 노하우에 있다. 시황 하락기에는 장기 계약을 통해 영향을 최소화하고 회복기에 맞춰 단기 계약을 확대해 수익을 극대화한다. 특히 불가피하게 시황에 노출되는 단기 계약은 보수적인 선대 운용 정책으로 민감도를 낮추고 있다.
시황 따라 유연하게 장·단기 계약 비중 조정
2023년~2024년 기준 팬오션의 장·단기 계약 비중은 '4대 6' 수준을 유지했다. 올해도 이와 비슷한 흐름을 보일 것으로 관측된다.
팬오션과 마찬가지로 철광석, 석탄, 곡물 등 벌크화물을 운송하는 다른 선사들은 대부분 장기 계약에 기반한 수익 구조를 갖고 있다. 예컨대 폴라리스쉬핑은 장기운송계약 매출 비중이 70%에 달한다. 이와 달리 팬오션은 장·단기 계약을 병행하고 있다.
운임료가 고정되는 장기 계약은 시황이 하락해도 기본적인 운송 수익이 보장되기 때문에 시황 하락기 적절하게 활용하면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다만 자사선과 장기용선을 통해 조달한 선박이 투입되기 때문에 유류비 등 고정비 지출이 크다. 반대로 단기 계약은 시황이 오를 때 장기 계약만으로 확보하기 어려운 초과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이 두가지 방식을 병행하면 운임 지수가 급등락을 반복하더라도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실제로 벌크 화물 종합 지표인 2023년 평균 BDI(발틱운임지수)가 1378포인트로 전년도 수치(1934포인트) 대비 큰 폭 하락하자 팬오션은 30% 수준인 장기 계약 비중을 40%대로 끌어올렸다. 작년에는 BDI가 1755포인트로 회복하자 단기 계약을 소폭 확대했다.
하림그룹에 편입되기 전 STX팬오션 시절 단기 계약 비중이 70%를 웃도는 때도 있었지만 기업회생 절차 이후 대주주가 바뀌면서 시황 민감도를 낮추려는 경향이 짙어졌다는 평가다.

글로벌 네트워크 기반 '맞춤 운항'
벌크선사들이 장기 계약을 중심으로 선대를 운용하는 것은 우량 화주와의 관계를 고려해서다.
철강사, 발전사들은 원료 가격과 생산 계획에 맞춰 수입량과 시기를 조절하기 때문에 적시에 원하는 장소로 적정 인력을 갖춘 선박 배치를 필요로 한다. 항로와 일정이 고정적이지 않은 만큼 선사는 전용선을 내줘 화주가 안정적으로 원료를 실어나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이때 화주와 선사는 장기운송 계약을 맺는다.
팬오션도 이러한 방식으로 포스코, 발레, 현대제철, 수자노 등의 화주를 유치했다. 최근에는 카타르에너지만을 위한 신규 LNG 운반선을 발주하는 등 비벌크 분야에서도 장기 계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러나 팬오션의 핵심 경쟁력은 화주가 돌발 변수에 직면했을 때 대응 능력이다. 예를 들어 지정학적 리스크로 A지역의 원료 수급이 충분하지 않아 당분간 B지역의 원료를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장기 계약 중심의 선사는 여기에 대응하기 쉽지 않다. 반면 팬오션은 적시에 B지역에 선박을 배치하는 노하우를 갖추고 있다.
팬오션은 미국, 싱가포르, 중국, 일본, 브라질, 베트남, 호주 등에 현지 법인과 사무소를 두고 있다. 이 밖에 다수의 글로벌 해운중계업체와 교류하면서 획득한 정보를 바탕으로 화물과 선박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단기 계약 역량을 파악하고 화주들이 팬오션을 찾는 것이다.
한 신평사 관계자는 "선주, 화주 양쪽 모두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어 불특정수요가 발생했을 때 자선 또는 다른 선주 선박을 배치하는 것이 가능하다"며 "이러한 경쟁력을 갖춘 곳이 국내에선 팬오션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현금흐름으로 투자비 충당…견조한 재무구조
팬오션의 매출의 약 60%는 벌크 화물 운송에서 발생하고 있다. 수익 구조가 편중돼 있다보니 운임 실적에 따라 등락이 반복됐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비벌크 분야를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LNG 운반 실적이 반등하고 있다. 기존 동북아 및 신흥 개도국의 LNG 수요, 최근 유럽의 LNG 수입 다각화에 따른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미국, 중동 등에서 대규모 프로젝트가 개시된데다 IMO 규제 등 친환경 대체 연료 수요로 전망도 밝다.
실제 팬오션의 LNG 운반 매출은 2023년 829억원에 머물렀지만 이듬해 1026억원으로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 매출은 1433억원으로 이는 지난해 연간 실적과 맞먹는 수준이다.
팬오션은 2005년 한국가스공사의 LNG 수송 사업자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LNG 화물을 수송을 시작했으며 현재는 쉘, GALP, 카타르에너지 등 글로벌 화주와 계약을 맺은 상태다.
다만 LNG선 사업은 초기 투자 비용이 벌크 화물 대비 많이 든다. 클락슨 리서치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기준 벌크선은 18만DWT 기준 척당 7300만 달러(1036억원)인 반면 LNG운반선은 17만4000CBM 기준 2억5500만 달러(3621억원)로 신조 가격 격차가 상당하다.
팬오션은 대규모 투자 비용을 감내하고 2022년 수주한 카타르에너지와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다수의 신규 선박을 발주했다. 2023년 LNG선은 4척에 그쳤지만 올해 상반기 12척으로 증가했으며 연말 1척이 추가 도입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유형자산·선박도입선급금 지출을 합산한 자본적지출(CAPEX)은 2022년 3680억원, 2023년 4573억원, 2024년 6381억원으로 매년 늘었다.
그러나 팬오션의 부채 비율이 100% 이내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다른 해운사와 비교해 안정적인 수준으로 평가된다. 올해 상반기 말 기준 차입금 잔액은 약 4조원이며 이마저도 대체로 국적취득조건부나용선(BBCHP) 계약 방식의 선박 차입금이어서 차입 부담이 덜하다. BBCHP은 조선소 또는 선박금융회사가 대신 건조 후 선박 소유하며 팬오션은 계약 기간 동안 매달 일정 수준의 임대료를 지불하는 것이다. 해당 임대료는 사실상 차입 거래에 해당하기 때문에 부채로 잡힌다.
팬오션의 재무 비율이 양호한 것은 현금 위주의 운영 전략을 펼치고 있는 까닭이다. 팬오션의 영업활동현금흐름은 2022년 1조4107억원, 2023년 7508억원, 2024년 6762억원으로 CAPEX를 상쇄할 만큼의 현금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
신평사 관계자는 "10년전 기업 회생을 거치면서 채무 변제가 어느 정도 이뤄진 데다 리스크가 덜한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하면서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확보했다"며 현재는 현금만으로도 투자비를 충당할 수 있을 만큼 재무 구조가 견조하다"고 말했다.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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