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도 선택" "죽음의 질 높이면 돼"…어떤 죽음? 어떤 삶? [스프]

안혜민 기자 2024. 10. 1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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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뉴스] 데이터로 보는 안락사2
 

하나의 이슈를 데이터로 깊이 있게 살펴보는 뉴스레터, 마부뉴스입니다.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마부뉴스에서는 지난 1편에 이어 안락사 논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편에서는 스위스의 ‘자살캡슐’ 논란과, 현재 안락사를 합법화하고 있는 국가들의 현황에 대해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지금부터는 안락사를 두고 찬성하는 입장과 반대하는 입장이 서로 어떻게 다르게 주장하고 있는지, 데이터를 가지고 이야기를 조금 더 풀어보겠습니다.

입장 1. "죽음도 개인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먼저 안락사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입장입니다. 안락사 도입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선택권도 역시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고통을 느끼며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환자들에게는 죽음도 충분히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안락사 관련해서 가장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 국가는 바로 네덜란드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적극적 안락사를 합법화한 국가 역시 네덜란드죠. 참고로 네덜란드 제46대 총리를 역임했던 드리스 판아흐르 총리는 부인과 함께 동반 안락사를 선택하면서 전 세계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습니다.
위 그래프는 네덜란드 안락사검토위원회(RTE, Regionale Toetsingscommissies Euthanasie)의 자료를 가지고 만든 네덜란드의 안락사 사망 건수입니다. RTE에서는 매년 연간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는데, 이 보고서에는 안락사 사망 수치가 담겨 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네덜란드 RTE에 보고된 안락사 건수는 모두 9,068건. 전체 네덜란드 사망자 수 16만 9,363명 중 5.4%에 해당합니다. 안락사 신고 건수는 70대가 3,129건으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으로는 80대(2,453건), 60대(1,662건) 순이었습니다. 그래프를 보면 알겠지만 2020년 이후 매년 안락사 사망 건수는 최고치를 경신 중입니다.

네덜란드에서 안락사에 대한 논의는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됐어요. 1967년, 당시 21살의 환자가 수술을 받다가 불가역적 코마 상태에 빠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담당의사는 인공호흡기를 제거하자고 주장했고, 환자의 아버지는 의사 의견에 강력히 반대하면서 큰 이슈가 됐죠. 이 사건을 계기로 불가역적 코마 상태에 빠진 환자가 살아 있는 것인지, 죽은 것인지에 대한 담론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런 환자를 계속 치료하는 게 맞는지에 대한 고민도 이어졌고요.

그러다가 1984년 네덜란드 대법원에서 처음으로 적극적 안락사에 대한 판결이 이뤄졌습니다. 대법원은 자신의 환자에게 적극적 안락사를 시행한 의사에게 무죄를 선고했어요. 당시 환자는 6년 넘게 자신의 담당 의사에게 치료를 받아왔는데, 죽기 전 담당의에게 적극적 안락사를 요구했습니다. 의사는 환자의 아들, 그리고 자신들의 동료들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 뒤 치사량의 약을 투여했죠.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네덜란드는 안락사에 대한 범국가적 조사를 실시합니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안락사 법안이 만들어졌고, 2001년 4월 10일 안락사합법화법안이 네덜란드 상원을 통과해 전 세계 최초로 의사가 환자에게 약물을 투여하는 형태의 안락사가 합법화됐습니다. 입법 초기에는 환자가 만 12세 이상일 경우에만 안락사가 허용됐는데, 2023년 4월엔 12세 미만 어린이까지 확대 적용하고 있습니다. 무작정 다 안락사가 이뤄지지는 않고 환자의 고통이 개선의 전망 없이 견딜 수 없는 상태여야 하고, 환자의 안락사 요청이 자발적이며, 시간이 지나도 지속되어야 하는 등 6가지의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해야 합니다.
네덜란드가 첫 스타트를 끊은 뒤, 벨기에, 룩셈부르크, 캐나다 등 일부 국가에서도 적극적 안락사가 합법화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점점 안락사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죠. 캐나다의 경우 늘어나는 속도가 상당히 빠릅니다. 유럽에서도 최근 환자의 죽을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장해 달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2021년엔 가톨릭 신자 비율이 높은 스페인에서도 안락사 합법화 법안이 통과됐고, 포르투갈 역시 안락사를 합법화하는 법안이 통과됐어요.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안락사 합법화 여론이 커지고 있습니다. 역시나 개인의 선택권을 보장해 달라는 여론이 크죠. 영국에서는 현재 의료진이 안락사를 도울 경우 현행법상 살인죄로 처벌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달 영국 하원에서 '조력사망에 관한 보고서'를 발간하는 등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고 있어요. 프랑스에서도 관련 법 개정을 위한 논의가 이제 막 시작되는 모습입니다.

입장 2. "안락사보다는 완화 의료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안락사 확대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제대로 치료도 받지 않은 채 안락사를 선택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특히 정신질환의 경우 이런 케이스가 경우가 많을 수 있거든요. 전문가들은 정신질환은 아직까지 치료가 불가능한지 여부를 충분히 예측하기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죽음에 대한 환자의 욕구도 일정하지 않아서, 개인의 선택권에만 방점을 둘 경우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치료를 통해서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안락사로 돌이킬 수 없게 된다면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요.

현재 네덜란드에서는 정신질환으로 인한 고통도 안락사의 범위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2023년 네덜란드에서 안락사로 사망한 9,068명의 환자 가운데 138명은 정신질환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죠. 캐나다에서도 정신질환자가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법률을 개정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캐나다 의회가 아직 보건 체계가 준비되지 않았다며 우려를 표했어요. 왜냐하면 정신질환을 정확히 진단해서 안락사 필요 여부를 판단할 의사 수가 부족했거든요. 결국 정신질환만으로는 안락사를 불허한다는 현재의 조항을 연장하기로 했습니다.

안락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안락사 대신 완화의료 시스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완화의료 시스템은 질병 말기 단계에 있는 환자, 혹은 가족들을 대상으로 고안된 의료 서비스인데, 환자의 신체적, 정신적 증상을 관리하고 환자와 가족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죠. 

위의 그래프를 봐 볼까요? 위 그래프는 2015년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소속 분석기관인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의 ‘죽음의 질(Quality of Death)’ 데이터입니다. EIU에서는 주요 80개 국가들을 대상으로 죽음의 질을 평가했습니다. 죽음의 질 수치는 각 국가의 의료 서비스와 지역 커뮤니티, 정부 지원은 잘 이뤄지는지, 경제적인 여건에 따라 차이는 없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산출했고요.

2015년 당시에도 안락사가 합법이었던 네덜란드나 스위스의 순위를 보면 그렇게 높지가 않습니다. 네덜란드는 80.9점을 차지해 8위를 기록했고, 스위스는 76.1점으로 15위였죠. 가장 죽음의 질이 높다고 평가된 건 다름 아닌 영국이었는데요. 영국은 100점 만점에 무려 93.9점을 차지했습니다.

영국은 호스피스, 완화의료 분야에서 세계적 선도 국가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시한부 환자들을 위한 호스피스 운동을 처음 확립한 게 1967년 영국의 의사 시슬리 손더스이기도 하고요. 영국은 이때부터 호스피스를 체계적으로 발전시켜 왔습니다. 전국적으로 1,000개의 완화의료 병상이 갖춰져 있고, 약 220개의 독립적인 호스피스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22-23년에 전국적으로 30만 명 넘는 환자와 가족이 호스피스와 완화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정도니까요.

안락사 합법화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영국의 사례처럼 완화의료 제도가 잘 갖춰진다면, 굳이 안락사를 합법화하지 않더라도 죽음의 질은 충분히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연명의료 중단제도, 벌써 38만 명 환자들이 선택했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나라는 2018년부터 연명의료 결정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제도 시행 이후 연명의료를 중단하기로 결정한 환자 수는 꾸준히 늘고 있고요. 시행 이후 10만 명을 돌파하는 데는 2년 5개월이 걸렸는데, 20만 명 돌파에는 2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30만 명 돌파까지는 1년 6개월 걸렸고요. 2024년 9월까지 누적된 환자 수는 37만 9,268명으로 38만 명에 육박합니다.
현재 국내에서 연명의료 결정제도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만 적용됩니다. 하지만 지난해 말, 60대 척수염 환자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하기도 했어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는 아니지만, 극도의 통증으로 고통받는 환자가 의사 조력을 통한 사망을 원하는데 관련 법이 없다는 이유로 말이죠. 헌법재판소에서 지난 1월에 이 건을 본격적으로 다뤄보기로 결정한 만큼, 조력자살이나 안락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18일부터 헌법재판관 3명의 자리가 비게 돼서 시간이 더 걸릴 가능성은 있어요.

정부는 연명치료결정제도뿐 아니라 호스피스와 완화의료에 대한 제도도 운영하고 있는데요, 호스피스 이용률로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2008년엔 7.3%에 불과했던 이용률은 2023년엔 25.0%를 기록할 정도죠. 호스피스 기관을 이용한 환자 가족들의 만족도도 90.0%를 넘게 기록할 정도로 높게 조사되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까지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유럽완화의료협회에서는 인구 100만 명당 최소 50개의 완화의료 병상이 있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2023년 기준으로 인구 100만 명당 31개에 불과하거든요. 인프라가 부족하다 보니 입원 대기 중에 사망하는 환자들도 많죠. 그래서 정부는 2028년까지 호스피스 전문기관을 2023년 188개소에서 360개로 확대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이용률 역시 50%까지 끌어올리려고 하고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안혜민 기자 hyemina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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