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질해설사 박태웅의 지구 속 이야기]
원시 지구가 '번듯한' 지구가 되기까지
애초에 원시 지구가 형성되는 데 가장 중요했던 요인은 미(微)행성들과의 충돌이었다. 이 사건에는 의미 있는 역학 관계가 작용한다. 미행성들 중 일부는 중력만 있는 원시지구와 충돌한 후 튕겨져 나갔으나 충돌한 대부분 미행성은 완전한 탄성력을 갖는 것들이 아니었다. 충돌 횟수가 많아지면서 튕겨나가는 탄성력보다 '중력에 의해' 모이는 물질의 힘이 더 우세해졌다. 지구는 작은 돌들이 모이는 정도가 아닌, 아주 강력한 충돌을 겪으면서 태어났다. 만일 지구가 작은 돌들이 모이는 방식에 의해서만 만들어졌다면, 지구는 생명이 태어날 수 없는 차가운 돌덩이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행성 크기만한 운석들이 지구에 깊이 박힘으로써 지구는 크기가 커진 데다가 열기까지 받아들이게 되어 녹은 암석인 '마그마의 바다'를 이루었고 결국 열과 물, 기체 성분 등을 보존할 수 있었다.(지구가 적절한 대기를 갖게 된 것은 태양과의 거리가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아서이기도 하다.) '마그마의 바다' 상태에서 철, 니켈 등 밀도가 큰 금속 성분들은 중심으로 가라앉아 핵이 되었고, 규소와 산소 등은 지각과 맨틀(지각과 핵 사이에 자리하는 암석층)이 되었다. 지구는 대기에 질소, 이산화탄소, 수증기 등만을 갖던 시기를 지난 후 광합성 생물의 활동으로 산소까지 갖추게 되었다. 이것이 지구 대기(大氣)의 역사다.

달이 떨어져 나간 뒤 암석이 나타났다
외부에서 날아온 운석들이 지구에 깊이 박힌다는 말은 상상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정밀한 시뮬레이션 결과, 45억년 전 지구 크기의 반 정도인 '테이아(Theia)'가 지구에 강력한 충격을 가함으로써, 지구 표면으로부터 3200㎞ 깊이에 자리한 핵 근처에 대륙 크기의 잔해로 떠다니고 있다고 한다. 이를 헤아리면 상상은 가능해 보인다. 이 충돌로 떨어져 나온 큰 조각은 지구의 위성인 달이 되었고, 충돌의 부산물인 열은 지구에 남아 판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마그마가 완전히 굳은 40억년 전 캐나다 아카스타 지역에 마침내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암석이 만들어졌다. 마그마가 식어 만들어진 화강암이 높은 압력에 의해 성질이 변하며 형성된 '편마암(片麻岩)'이다. 호주 서부 잭 힐스 지역에서 44억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영 섬록암(閃錄岩) 속 지르콘(지르코늄으로 이루어진 규산염 광물) 조각이 화제가 되었으나, 암석 자체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석영 섬록암은 석영이 5% 이상 함유된, 화강암과 비슷하지만 더 어두운 암석이다.
미생물이 새로운 지판을 만들었다
'물의 행성'이라 할 어린 지구에 대륙이 생긴 것은 초기의 미생물(微生物)과 균류, 식물 덕분이었다. 그들은 작은 바위를 녹이고 분해해 해양 밑바닥의 좁은 곳인 해구(海溝)에 퇴적물을 계속 쌓으며 해양지각을 더 두껍게 했다. 해양지각에 서식하는 미생물들이 에너지와 영양분을 얻기 위해 산(酸)과 효소로 현무암을 용해해 축축한 점토 광물을 생성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생물에 의해 풍화된 ‘물을 머금은 퇴적물들’은, 하나의 지판(地板)이 다른 지판 아래로 들어가게 하고 맨틀에 더 많은 물이 흘러들게 함으로써 새로운 땅을 만드는 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지구물리학자 로버트 헤이즌의 말이 관심을 끈다. ‘지구 이야기’의 저자인 헤이즌도 미생물에 대해 이야기했다. 즉 미생물은 초기 해양 지각을 넓게 변질시키는 열수(熱水)를 도와 광물 다양성을 증진시킴으로써 어린 지구의 표면 환경을 조성했다고 언급했다. 같은 차원에서 약 35억년 전 호주 서부 필바라 지역에서 생성된 드레서층(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층에서 복잡한 미생물 생태계의 활동으로 만들어진 여러 켜의 암석층이 발견되었다. 박테리아 남조류(藍藻類: 시아노박테리아)가 분비하는 끈끈한 점액에 모래나 점토들이 달라붙고, 주위에 퇴적물들이 쌓여 버섯과 비슷한 형태의 구조가 됐다.

그리고 진짜 생물이 태어났다
주름진 돔 같기도 한 이 퇴적구조를 '바위 침대'라는 뜻의 스트로마톨라이트라 부른다. 스토로마톨라이트는 화석화한 퇴적암으로 분류된다. 시아노박테리아가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얕은 물에서 서식하면서 만들어내는 퇴적구조가 '스트로마톨라이트'다. 독특한 층상 구조를 만들어낸 이 고대 미생물들은 생명이 막 출현한 초기 지구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원시지구의 대기에 산소를 공급하기 시작한 시아노(짙은 청록색이란 뜻)박테리아는 앞 부분에서 말한 바 있는 최초의 광합성 생물들이다.
생물학자 닉 레인의 말대로, 지구에서 다채로운 생명체의 진화가 일어난 것은 최근 6억년 동안의 일이고, 그 이전 30억년 동안에 볼 수 있었던 생명체라곤 세균과 원시적인 진핵생물인 조류(藻類) 정도뿐이었다. 20억년 전 하나의 세균을 조금씩 진화를 거듭하던 원시진핵세포가 삼킨 사건이 있었다. 살아 남아 몇 세대를 거쳐 진화하던 세균은 완전한 세포의 일부가 되었고 미토콘드리아로까지 진화했다.

닉 레인은 "세포 내에서 에너지를 생산하는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와의 (극히 희박한) 합체(合體) 사건이 없었다면 우리도, 다른 지적 생명체도, 진정한 다세포 생물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 말한다. 초기 산소(酸素) 생성, 대륙 생성, 지적 생명체이자 다세포 생물인 인간의 기원 등과 관계된 미생물은 알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우리는 땅을 딛고 서 있다
암석, 원시진핵세포, 햇빛 등과의 만남으로 우리를 있게 했고 지금도 변함없이 중요한 미생물의 위상은 놀랍다. 우리를 있게 한 것은 미생물만이 아니다. 지판(地板)도 큰 역할을 했다. 이에 대해 서곡(序曲)에 해당하는 부분만을 먼저 말하면 이렇다.
‘지판은 지각과 암석권을 함께 부르는 말이다. 지각은 지구 표면의 밀도가 낮은 암석층이다. 암석권은 지각 아래에 자리하는 100㎞두께의 딱딱한 층이다. 암석권 아래에 자리한, 유체처럼 흐를 수 있는 맨틀은 연약권이다. 지구의 10여 개 판은 1년에 몇 ㎝씩 느린 속도로 쉼없이 움직인다. 지판들은 만나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하고, 서로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기도 하면서 많은 결과를 낳는다.’

판구조론이 이야기하는 것들은 거대한 대륙판 및 해양판의 움직임, 지진 및 화산 폭발, 판의 움직임에 의해 약 2억 년마다 지구 표면이 다시 구성되는 메커니즘에 대한 얘기다. 대륙판은 지구 표면을 구성하는 육지의 판, 해양판은 바닷물 아래의 판이다. 2억 년이란 옛 해앙판이 양쪽으로 벌어지는 경계(틈)로 마그마가 올라와 새롭게 형성되는 해양판이 수평으로 움직이며 옛 해양판을 밀어내다가, 퇴적물이 쌓여 두터워지고 무거워져 지구 중심으로 내려가는(섭입대: 攝入帶) 순환 주기가 최대 2억년을 넘지 않는다는 의미다.
※ 박태웅 자연 칼럼니스트는 자연과 인문의 창의적 어울림을 목표로 하는 독서인이다. '새와 생명의 터(Birds Korea)'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평소에는 서울 역사/문화해설사(2017년~ )로 활약중이다. 특히 한탄강(연천) 세계지질공원해설사(2020년~ ) 일을 하고 있다, 해인사(海印寺) 월간지 해인지 등에 기고했다. 저서로는 ’공공역사를 실천중입니다‘를 출간(2023년; 푸른역사 刊 공저)했고 ’한국의 세계지질공원‘을 집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