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단 하루, 기후현 히다 후루카와의 '산테라마이리' 방문기

202212월 홋카이도 여행에서 마주한 생경한 풍경은 남부지방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새로운 환상이었다. 세상 모두에 켜켜이 쌓아 올려진 하얀 눈과 그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눈이란 겨울 중 찾아오는 질척하고 귀찮은 이벤트에 불과했던 나에게 일본의 설국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7fed8275b58369f451ee82e141837c73e0276dfdf283ca6ee560e55e8c81a0

그 후 1년여가 지나 다시 일본을 여행하게 되었을 때, 나는 당연하게도 또다시 눈으로 덮인 세상을 보고 싶었고 910일간의 여행 동안 나고야에서 렌트카로 출발해 시라카와고-다카야마-스와-후지를 거쳐 도쿄로 향하는 일정을 계획했다. 일정에 대한 여러 정보를 수집하던 중, 다카야마에서 차로 30분여가 걸리는 시골 마을 히다현 후루카와에서 1년에 단 한번, 매년 115일 밤에 개최되는 산테라마이리라는 독특한 연래행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밤중 동행한 친구 넷과 히다 후루카와 역 주차장에 도착했다.

a04424ad2c06782ab47e5a67ee91766dc28ff1ecdaacc4c0bf10dac65ad3de21912b0367aea24d0ac8a5918e1fb445

그런데 사람과 차가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만 제설이 된 주차장에서 겨우 빠져나와 큰 거리로 향해보니, 축제 분위기는커녕 오가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잘못된 정보를 보고 내 고집으로 친구들을 데려온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함이 엄습했고 각종 짜증과 비난이 시작되었다그 와중 일본 촌 동네의 칼바람은 계속해서 패딩을 찢고 들어왔고, 오전엔 시라카와고, 오후엔 다카야마를 관광한 피로는 아스팔트 빙판길을 감당하지 못했다.

0490f719bd816bf520b5c6b236ef203e42d2866a46fde06340

각종 비난이 인신공격으로 바뀌어 갈 때쯤 다행히 너의 이름은 성지순례로도 유명한 히다 후루카와 역의 모습이 보였고, 역사 앞에 장식돼 있던 두 거대한 촛불의 모습은 그래도 뭔가가 이곳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0490f719bd816df020b5c6b236ef203e5e3850cdda8da993b3

어딘가로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점점 보이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이내 인파로 변했으며 길 중간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불꽃을 태우는 거대한 눈 촛불의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0490f719bd816bf020b5c6b236ef203ea9bc69506874fee279

0490f719bd816bf120b5c6b236ef203ecd18a8822baddab386

산테라마이리는 2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후루카와의 연래 행사로, 그 본질은 마을에 위치한 3개의 영험한 절을 하룻밤 만에 모두 참배하는 것이다. 역에서 가장 가까운 첫 번째 절 엔코우지부터 본격적으로 행사장이 조성되어 있었으며, 우리 또한 엔코우지를 방문하는 것으로 행사를 본격적으로 즐기기 시작했다

몹시 추운 날씨와 칼바람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자신의 기도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고, 마을 전체의 뜨거운 축제 분위기는 어릴떄의 명절 분위기를 떠올리게 해주었다.

0490f719bd816cf520b5c6b236ef203e8eabe4e84495407ab4

곳곳에서 나무로 불을 피우며 손을 녹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그 옆에서 마을 사람들이 직접 만든 모주와 찹쌀떡을 매우 싼 가격에 판매하고 계셔 복을 나눠 받기 위해 얼릉 사먹었다한잔에 100엔 정도의 원가만 받는 가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분명 마을 청년회 같은 곳에서 부스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모두가 하나같이 웃고 있는 모습이 참 정겨웠다.

0490f719bd816cf020b5c6b236ef203ec11e454e8c6c60006c

0490f719bc8469f220b5c6b236ef203ec007997fb2b8f2c6e1

따뜻한 모주는 마치 뜨거운 막걸리 찌꺼기와 술빵의 맛이 났는데날씨가 너무 추워 따뜻한 게 목구멍으로 들어오니 그저 맛이 좋았다찹쌀떡 또한 평범한 맛이었으나나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장소에서 소망을 이어가고나누기 위해 힘쓰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다는 기분이 정말 신비로웠다.

0490f719bd816bff20b5c6b236ef203eebc499cd3d0ea8bc35

마을 중간을 가로지르는 개울에서는 산테라마이리의 상징이자 하이라이트라고 하는 풍경이 펼쳐졌다. 수많은 사진사가 모여 기모노를 입은 기도하는 여인 무리를 촬영하고 있었는데, 원체 유명한 광경이라 마을에서 고용한 일종의 모델들이라는 말을 들었다.

0490f719bc8a60f220b5c6b236ef203ec1d4e0182878437224

작은 개울을 따라 저마다의 소망을 담고 따뜻하게 눈을 비추고 있는 붉은 촛불들의 모습은 인간에게 바람과 믿음이 어떤 의미인지를 조금이나마 가늠케 해주었다.

0490f719bd816df120b5c6b236ef203e4ec7164d1a163f4edb
0490f719bc8469f020b5c6b236ef203eca7131fb94d90d7fd1
0490f719bd816dff20b5c6b236ef203e3ca41989f4544af8ba

촛불을 따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걸어가다 보니 다른 두절혼코우지와 신슈우지에 자연스럽게 도착했고 막바지에 이른 행사의 열기가 서서히 사그라드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0490f719bd816ef620b5c6b236ef203eefc50c7ced6135596e
0490f719bd816ff720b5c6b236ef203e77c930941ae215b490

불앞에 모여 추운 날씨를 이겨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은 왁자지껄 하기보단 마냥 따뜻했다.

0490f719bc8a60f420b5c6b236ef203eec756262f3b000637e
0490f719bd816ff020b5c6b236ef203e89e3296aff5488a922

어쨌든 우리는 행사를 그저 관광하러 온 이방인이었고, 날씨도 너무 추웠기에 현지인들과 함께 줄을 서서 참배하지는 않았으나, 남녀노소 모두가 이 추운 날 속에서 무언가를 기도하고, 즐거움을 나누고 있는 모습은 이 전통이 오랜 시간 동안 마을에서 지켜져 온 이유를 가늠하게 해주었다.

0490f719bc8a6fff20b5c6b236ef203e09b90427703a38570a

그렇게 행사 구경을 모두 마치고 다시 추운 빙판길을 걸어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동안, 아까 촛불을 발견하기 전까지 마냥 춥고 쓸쓸하게만 보였던 겨울밤 후루카와 마을의 풍경이 새롭게 보였다. 이렇게 집과 상점의 불이 모두 꺼져있는 이유는 아마도 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두 모이는 큰 행사가 열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고, 그곳에서 사람들은 누구보다 즐겁게 새로운 한 해의 다짐과 소망을 쌓아 올리고 있을 것이다.

0490f719bc846af320b5c6b236ef203e295f803404e5693632
0490f719bc8a6ff020b5c6b236ef203e7332db40973c12a658

또 언제 이렇게 아름다운 눈보라 속의 일본 마을 풍경을 볼 수 있을까 싶어 가져간 오래된 필름 카메라로도 사진을 많이 찍었다.

0490f719bd8160f120b5c6b236ef203eef334770675e02261e

여행 기간, 일정 속 우연히 그 시간이 겹쳐 방문한 한 시골 마을의 아름다운 행사 덕분에 새로운 한해에 대한 다짐과 소망을 작게나마 마음속에 간직하고 한 해를 시작할 수 있었다.

0490f719bc8469f620b5c6b236ef203e22b2d18e355e7c08e0

벌써 3개월밖에 남지 않은 올해를 되돌아보며, 지나간 시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만약 내가 먼 훗날 후루카와의 산테라마이리에 또 방문한다면 그때는 어떤 소망을 비는 사람이 되어 있을까그때의 나는 마을 사람들의 소망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