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아섭은 지금,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기묘한 FA 협상 테이블 위에 앉아 있다. 통산 최다 안타 기록을 보유한 살아있는 전설. 골든글러브 6회, 타율왕 1회, 안타왕 4회.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도 부족하지 않을 커리어를 가진 선수가, KBO 리그에서 단 한 팀과도 계약을 맺지 못한 채 2월을 맞이했다. 그가 서 있는 자리와, 한화가 손에 쥔 카드, 그리고 시장이 던지는 냉혹한 시그널 사이에는 긴장감이 팽팽하다.

먼저, 상황을 간단히 정리해보자. 손아섭은 지난 시즌 중반 NC에서 한화로 트레이드됐다. 당시 한화는 2026 신인드래프트 3라운드 지명권과 현금 3억 원을 내주며 그를 데려왔다. 그만큼 베테랑 리드오프에 대한 기대가 컸고, 실제로 손아섭은 한화에서 35경기에 출전해 타율 0.261, 1홈런 17타점이라는 무난한 성적을 남겼다. 포스트시즌에서는 한국시리즈 첫 출전이라는 개인 커리어를 더했고, 타율 0.333으로 분전했다.
하지만 FA 시장은 냉정했다. 손아섭은 C등급 FA로 분류되며 보상선수는 없지만, 이적 시 원소속 구단 한화에 7억 5,000만 원의 현금 보상만 요구되는 구조였다. 이는 보상부담이 적은 구조지만, 동시에 손아섭에게 주전 자리를 보장하지 못하는 팀 입장에선 "지나치게 비싼 보험"처럼 느껴졌을 수 있다.

한화 역시 쉽게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애초에 한화는 손아섭을 2026 시즌 주전 외야 요원으로 간주하지 않았던 분위기다. 이미 외야는 문현빈(좌익수), 페라자(우익수), 이원석·이진영(중견수 경쟁)이 중심을 이루고 있고, 강백호와 채은성이 지명타자 및 1루 포지션에서 번갈아 기용된다. 여기에 신인 오재원까지 경쟁에 가세하면서 손아섭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그리 넓지 않다.
한화는 1월 말 손아섭 측에 최종 계약안을 전달했다. 유력하게 거론되는 조건은 1년 단년 계약. 연봉은 1억 원 내외, 옵션을 포함하더라도 지난해 5억 원에서 대폭 삭감된 조건이다. 이른바 '보험성 계약'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하주석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해 B등급 FA였지만, 시장의 반응이 싸늘했고 결국 1년 1억 1천만 원의 계약으로 한화에 잔류했다. 이후 성적으로 반등해 자존심을 지켰다.

손아섭도 이 시나리오를 따를 수 있다. 다만 변수가 있다면 그의 커리어 자체가 훨씬 크다는 점이다. 그는 이미 롯데에서 4년 98억, NC에서 4년 64억의 FA 계약을 성사시킨 바 있고, 총 162억 원을 FA 시장에서 벌어들였다. 그런 선수에게 단기 계약, 대폭 삭감은 결코 가벼운 선택이 아니다.
트레이드 당시 한화가 지불한 대가 역시 협상에서 중요한 기준점이 된다. 3라운드 지명권과 3억 원 현금. 이는 그가 단순한 '노장'이 아니라 당시 한화가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 선택한 확실한 카드였음을 보여준다. 그런 선수를 불과 반 년 만에 헐값 계약으로 되돌리려 한다면, 선수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다.
흥미로운 건 한화가 사인앤트레이드(S&T) 카드까지 꺼냈다는 사실이다. 구단은 손아섭이 타 팀으로 이적할 경우 발생하는 보상금 7억 5천만 원을 줄이기 위한 방안까지 제안했다. 즉, 구단 입장에선 여러 시나리오를 열어두고 최선을 다했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는 손아섭에게 "이제 결정은 당신 몫"이라는 신호다.

문제는 시장이다. FA 시장은 이미 대부분의 스쿼드를 완성한 상태고, 스프링캠프도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손아섭을 데려갈 팀은 없다. 하지만 시즌은 길다. 시범경기나 시즌 초반, 주전 선수의 부상이나 전력 공백이 생기면 손아섭 같은 베테랑은 언제든 다시 주목받을 수 있다. 단, 그때는 지금보다 더 낮은 조건을 받아들여야 할 수도 있다.
결국 선택은 두 가지다. 첫째, 자존심을 굽히고 한화와 1년 계약을 체결한 뒤, 반등을 노리며 다시 시장에서 가치를 높이는 방법. 둘째,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 다른 팀의 오퍼를 기다리는 것. 이 경우 은퇴라는 단어도 현실이 될 수 있다.
한화는 손아섭에게 마지막 FA 기회를 "예우"로 포장하며 손을 내밀었다. 그는 그 손을 잡을 것인가, 아니면 홀로 시장에서 다음 기회를 기다릴 것인가. KBO 리그의 마지막 리빙 레전드 중 한 명이 선택할 이 한 수는, 어쩌면 선수 커리어의 마지막 문장을 장식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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