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제표 읽기] 변화하는 환경 속 회계 정보의 활용
최근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AI로 인해 사라질 직업'에 대한 관심이 다시 한번 커지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예측은 이미 10년 전부터 반복돼 왔으며, 모두 현실화 하지 않았다. 따라서 AI를 우려하기보다는 자신의 직종에서 AI를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라고 충고해주고 싶다.
'사라질 직업'이라는 개념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3년 옥스퍼드 마틴스쿨의 연구에서 비롯됐다.
연구에 따르면 향후 20년 내 사라질 가능성이 높은 직업군으로 단순 반복적이거나 정보 전달이 주된 역할인 직종이 꼽혔다. 텔레마케터, 유통 종사자, 시계 수선공, 스포츠 경기 심판, 계산원(캐시어)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망과는 다르게, 시간이 흐르면서 텔레마케터는 단순직이 아닌 감정노동자로 분류됐다. 계산원은 키오스크로 일부 대체되었지만 이는 기술 발전보다는 인건비 절감이 주된 이유였다.
전문직에 대한 AI의 영향도 과거 연구에서 과장된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회계사의 자동화 가능성이 94%에 달해 회계사라는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회계사의 역할을 단순 회계처리 실무자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회계감사(Auditing)와 같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은 이러한 분석에서 배제됐고, 결과적으로 예측 오류가 발생했다.
물론 AI의 발전으로 많은 회계 업무가 자동화되고 있다. 장부 작성, 세금 신고, 기본적인 회계 분석 등은 AI 기반의 소프트웨어가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회계정보의 본질적인 역할은 단순히 데이터를 입력하고 회계원칙을 적용하여 재무제표를 산출하는 것이 아니다.
회계 전문가는 복잡한 회계 원칙을 해석하고 기업의 재무 상태를 분석하며, 재무적 리스크를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영역은 AI가 단순히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전문성과 판단력이 요구된다.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은 AI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지적 영역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당시 AI가 바둑에서 인간을 이겼다는 사실은 큰 충격을 주었지만, 지금은 AI가 그림을 그리고, 소설을 쓰며, 작곡을 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챗GPT와 같은 대화형 AI는 우리 생활 속에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 AI 고도화 시대가 도래하면 회계정보는 어떤 면에서 유용성을 가질까?
회계기준은 단순한 수학적 공식이 아니다. 사회적 합의와 경제적 환경을 반영한 규칙이다. 예를 들어 기업의 재고자산 평가, 매출채권의 회수 가능성, 무형자산의 손상 여부 등은 단순한 데이터 분석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회계처리는 기업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회계 전문가의 경험과 직관이 필요하다.
회계감사에서 재무제표의 신뢰성을 평가하는 과정 또한 단순한 숫자 계산이 아니라, 기업 담당자와의 인터뷰, 재무제표 작성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과정이 포함된다. 손상, 충당, 상각, 재평가 등의 다양한 회계처리 과정은 기업의 전략적 의사결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기업의 숫자는 선택의 결과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숫자만으로 기업을 판단한다면, 동일한 기업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가 없다. 그러나 실제로는 같은 기업을 두고도 평가자에 따라 다른 분석이 나올 수 있다. 이는 회계정보가 숫자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기업의 의사결정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AI 기술의 발전은 회계 전문가 뿐만 아니라, 일반 경영자나 투자자에게도 큰 혜택을 제공한다. 기존에는 기업의 재무제표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이 전문가의 영역이었지만, AI 기반 회계 분석 도구를 활용하면 누구나 쉽게 재무 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챗GPT와 같은 AI는 복잡한 회계 데이터를 쉽게 해석하고 시각적으로 제공하여, 회계 지식이 없는 사람도 기업의 재무 상태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사용자가 단순히 '최근 S기업의 재무제표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변화는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만 해도 AI가 분석을 제공할 수 있다. AI는 기본적인 재무비율 계산, 이상 거래 탐지, 산업 내 비교 분석 등의 작업을 수행해, 회계사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필자는 AI가 더욱 발전한 미래를 상상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는 AI가 회계 전문가를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AI는 과거 데이터를 학습하여 패턴을 찾아내는 데 강하지만, 미래의 불확실성을 해석하는 능력은 부족하다. 예를 들어, AI는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부정회계(Fraud) 가능성을 탐지할 수 있지만, 기업이 새로운 회계 정책을 도입했을 때 그 영향을 분석하는 것은 쉽지 않다.
둘째, 회계정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기업이 선택한 전략과 의도를 담고 있다. AI가 기업의 숫자를 분석할 수는 있지만, 그 숫자에 담긴 기업의 의사결정과 이해관계자의 영향을 해석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다.
셋째, 최종적인 의사결정은 인간의 몫이다. AI는 강력한 분석 도구이지만, 이를 해석하고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은 인간의 역할이다. 기업의 회계처리 방법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법적, 윤리적, 경제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며, 이러한 과정에서 회계사의 판단력이 필수적이다.
필자는 AI가 회계 전문가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회계 전문가의 역할을 보조하고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예를 들어, AI를 활용하면 샘플조사에서 벗어나 전수조사가 가능해지고, 이상 거래 패턴을 실시간으로 감지하여 감사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이는 회계 전문가의 반복적인 작업에서 벗어나 보다 중요한 가치 판단과 전략적 의사결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 AI는 기업의 경영 환경 변화에 실시간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AI 기반 재무 예측 모델은 기업의 현금 흐름을 분석하고, 미래 리스크를 예측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최종적인 판단과 의사결정은 여전히 인간의 역할이며, AI는 단순한 분석 ‘도구’로 활용될 뿐이다.
따라서 AI는 인간의 경쟁자가 아니라, 강력한 보조 도구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회계 전문가는 AI를 활용해 보다 정교한 분석과 전략적 역할을 수행할 것이며, AI 기술을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회계정보를 필요로 하는 인간에게 중요한 역량이 될 것이다.
AI 시대에도 회계 전문가는 여전히 필요하다. 오히려 AI의 발전은 회계 전문가의 역할을 더욱 고도화하고, 보다 중요한 의사결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다.
AI와 협업해 단순한 숫자 해석을 넘어 보다 정교한 재무 예측과 리스크 관리를 주도하는 것이, AI 시대의 회계정보의 사용자에게 요구되는 새로운 역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