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올백' 사건 하나에 두 번 열린 수심위… 무용론 다시 고개

강지수 2024. 10. 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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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린 결론에 검찰은 '원래 판단대로'
개최 기준도 불명확... 규정 미비 지적
의견서·PT '수박 겉핥기식' 판단 한계
"법령 근거 마련해야" "그냥 폐지해야"
김건희(왼쪽 사진) 여사와 최재영 목사. 연합뉴스·뉴시스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디올(DIOR) 가방 수수 사건이 '관련자 전원 불기소'로 일단락된 뒤 '사실상' 같은 사안에 대해 두 번 열린 검찰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 무용론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검찰의 내부 개혁 방안의 일환으로 도입된 제도가 지닌 한계가 이번 사건으로 여실히 드러나면서 폐지 목소리까지 나온다.


'같은 사건 쪼개기 수심위' 가능했던 이유

수심위는 도입 초기부터 세부 사안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었다. 검찰 공소권 독점의 폐해를 해소하기 위해 검찰 외부 시각으로 사건을 살피기 위한 취지로 만들어져 법률이나 '법무부령'이 아닌 '대검찰청 예규'(검찰 내부 규정)만 뒀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 기조에 발맞추되 검찰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한 거라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 재량으로 예규로 제도를 도입했고, 법령에 근거는 없지만 융통성 있게 위원회를 운영하겠다는 의지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제정된 수심위 운영 지침은 △개최 절차 △위원 선정 방식 △의결 방식에 대한 큰 틀의 규칙만 정해졌을 뿐 상황별 세부적인 판단 기준이나 절차가 구체적으로 명시되진 않았다. 공백은 대부분 위원장이 재량으로 메워가고 있다.

이런 탓에 '디올백'처럼 사실상 하나의 사건에 대해 2회 이상 수심위가 열리는 상황이 생겼다. 규정상 수심위는 ①총장의 직권 회부 ②사건관계인의 신청과 해당 검찰청 검찰시민위원회의 부의 결정 ③관할 검찰청 검사장의 소집 요청과 총장의 승인 3가지 경우에 개최된다. 구체적인 개최 요건에 대한 규정이 없어 사건별, 피의자별 '쪼개기' 수심위가 가능하다. 이원석 전 검찰총장이 직권소집한 '피의자 김건희'에 대해 수심위가 결론을 낸 이후에도 '피의자 최재영'의 신청으로도 별도 수심위가 열린 이유다. 수심위별로 위원 구성이 달라지기에 이번 사건에서 보듯 결론이 엇갈릴 수도 있다. 사실상 하나의 사건을 놓고 복수의 수심위가 다른 결론을 내린 건 제도의 신뢰성 훼손으로 직결됐다.

게다가 복수의 수심위 결론이 같다면 '굳이 여러 번 할 필요 있냐'는 지적이, 결론이 갈릴 경우 '어떤 걸 따라야 할지'를 두고 이견이 늘 뒤따르게 된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실상 '같은 사건이라면 이중으로 (수심위 개최를) 하지 않는다'는 기준 하나만 있었더라도 이런 상황은 막을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수심위 의결·권고에 구속력이 없다는 점도 치명적인 한계다. 법령상 근거가 없기 때문에 국민 자유를 구속하는 수사나 기소 여부를 강제할 수 없다. 검찰이 입맛에 맞는 수심위 결론을 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사건을 처리하면서 검찰 관계자가 "수심위 판단을 존중할 필요는 있지만 결론이 엇갈렸다"며 "입증 책임을 지는 검사가 법리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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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 근거 부족" 수심위원들도 '아쉬움'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연합뉴스

운영상 아쉬운 점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사안의 중대성에 비해 '충분한 토의'가 불가능하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이번 사건에 남긴 기록은 1만1,500쪽에 달하는데, '최재영 목사 수심위'에선 5시간 넘는 양측 입장 설명과 질의응답을 거치긴 했지만, 토의 시간은 1시간 남짓이었다. 해당 수심위에 참석한 A씨는 "수사 기록 대신 각각 30쪽 분량의 양측 의견서와 파워포인트(PPT)를 이용한 구두 설명만 가지고는 판단이 어렵다는 의견을 전한 위원도 많았다"고 전했다. 방대한 사건 내용을 파악하고 토의해 결론을 내리기엔 짧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직역별 전문가 구성 비율을 위원장이 정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평가도 있다. 최 목사 수심위에 참여한 B씨는 "지난번(김 여사) 수심위 때보다 법조인 비율을 높였다는 위원장 설명이 있었다"며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현재 수심위원 풀(pool)은 △변호사 △법학교수 △시민단체·종교·기타 전문직 △비법학교수·언론인·퇴직공직자 등 직역별 4개 그룹으로 약 250명인데, 위원장은 안건 성격에 따라 그룹별 할당 인원을 먼저 정한다. 이후 무작위 추첨으로 위원들을 선정한다.


"살려보자" vs. "이미 늦었다"

일각에선 "검찰수사의 절차·결과에 대한 국민의 신뢰 제고"라는 수심위 운영 목적 자체가 무색해졌다고 비판한다. 장 교수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 대해 검찰이 외부 심의를 받아서 외부의 압력을 좀 완화시키는 수단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무용지물은 아니다"라면서도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수심위원 구성이나 활동 기준을 법령상으로 명확하게 규정하는 작업이 필요할 때"라고 제언했다. 수심위 결론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자는 대안도 거론되지만, 검찰 실무를 모르는 외부인 판단에 주요 사건 처리를 맡기는 건 위험성이 따른다.

폐지론도 만만치 않다. 2018년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을 맡아 수심위 제도 도입 논의에 참여한 김한규 변호사는 "수심위가 검찰의 명분을 강화하기 위한 것에 불과한 도구가 아니었나 싶다"며 "자꾸 다른 결론이 나와도 묵살하고 간다"고 지적했다. 그는 "예산과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그냥 검찰이 수사하고 검찰이 책임지게 하는 게 맞는 것 같다"며 "이제 수심위는 폐지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수심위 제도 설계에 참여했던 박준영 변호사 역시 폐지론에 목소리를 냈다. 박 변호사는 지난달 '김 여사 수심위' 직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회의 과정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에 대한 기록 자체를 남기지 않았으며, 의결 결과 찬반이 몇 명이었는지도 공개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 신뢰회복을 위해 도입한 제도의 운영을 이런 식으로 하면서 제도의 취지와 논의 결과의 권위를 말할 수 없다"며 "더 이상 세금 쓰지 말고 폐지하는 게 나아 보인다"고 쓴소리했다.

역대 주요 검찰수사심의위원회 결과. 그래픽=이지원 기자

강지수 기자 soo@hankookilbo.com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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