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연합이 지난해 중국산 전기차에 최고 45%가 넘는 고율 관세를 부과하며 ‘중국차 견제’를 선언했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중국 자동차 브랜드들은 순수 전기차가 아닌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와 현지 생산 전략으로 관세 장벽을 손쉽게 우회하며 유럽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규제의 칼날이 무뎌지는 사이, 전장은 하이브리드 기술과 생산 거점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현지 공장까지 세운 BYD·샤오펑… 유럽산처럼 둔갑한 전기차들
지난 1년 새 중국차의 유럽 판매량은 두 배 이상 늘었다. 특히 PHEV 판매는 10배 이상 폭증하며, 유럽에서 팔린 PHEV 8대 중 1대가 중국 브랜드다.

BYD, 체리, 상하이자동차의 MG 등이 내놓은 신형 PHEV들이 시장 상위권을 휩쓸고 있다. 유럽 소비자들이 ‘완전 전기차(BEV)’의 충전 불편함 대신 ‘PHEV’의 실용성을 택하면서, 중국 업체들의 선택은 전략적으로 적중했다.
EU의 관세가 BEV에만 집중된 점도 중국 업체들의 기민한 대응을 부추겼다.
BYD의 ‘씰 U’, 체리의 ‘재쿠 J7’, MG의 ‘HS’ 등이 빠르게 점유율을 높였고, PHEV 비중은 5월 디젤차를 넘어 10%대에 진입했다. ‘전기차=중국차’라는 인식이 유럽 소비자 사이에서 확산되는 이유다.
중국은 이제 BEV도 유럽 현지에서 생산하기 시작했다. 샤오펑은 오스트리아 공장에서 SUV를 만들고, BYD는 헝가리 세게드 공장을 11월 가동할 예정이다. 튀르키예에도 2공장을 세워 관세를 피하고 물류비를 줄이려는 전략이다.
현대·기아, 유럽에서 ‘중국 전기차 공세’에 맞서 생존전 돌입

반면 현대차와 기아는 치열한 경쟁 속에 고민이 깊다. 체코에서 생산되는 ‘인스터’는 무관세지만, 국내 생산 ‘EV3’는 10% 관세를 물고 수출된다.
중국차들이 현지 생산 체계를 완성하면 가격 경쟁에서 불리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일부 시장에서는 비슷한 성능의 중국 전기차가 절반 수준의 가격에 팔리고 있다.
유럽은 지금 ‘전기차의 본고장’이 아닌 ‘전기차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 보조금 축소와 충전 인프라 부족으로 BEV 성장세가 둔화된 사이, 중국은 현실적인 대안인 PHEV로 틈새를 파고들었다.
EU의 관세가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보다 중국 기업의 전략적 전환을 부추긴 셈이다. 규제가 장벽이 아닌 길잡이가 되어버린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유럽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은 서서히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