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초 황금연휴를 의미없이 보낼 수는 없었다. 이럴땐 바이크여행이 제격이다. 어디를 갈까? 뭘 타고 갈까? 전국일주도 몇번 했는데 좀더 특별한 곳은 없을까? 그때 섬여행이 떠올랐다. 보통사람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이쁜 섬들을, 일반사람들에겐 익숙하지않은 바이크를 타고 가기로 마음 먹었다. 시승을 위해 선택한 바이크는 모토구찌의 'V100 만델로', 목적지는 '12사도의 집 순례길'로 유명한 신안의 기점ㆍ소악도와 '윤선도의 섬' 보길도로 정했다.

'V100 만델로'는 국내 바이크 매니아들에겐 레트로 감성 충만한 바이크로 꾸준한 사랑을 받는 모토구찌에서 야심차게 내놓은 물건이다. 숫자 '100'은 100년 역사를 의미하고, 만델로는 모토구찌의 고향격인 이탈리아의 북부 '만델로 델 라리오( Mandello del Lario)'에서 따왔다. 외형으로 봐서는 스포츠 바이크 같기도 하고, 네이키드 느낌이 나기도 하고, 투어러라고 볼 수도 있다. 모토구찌 특유의 '세로 배치 V트윈 엔진'이 장착됐다.

공랭식만 고집하던 모토구찌가 수냉식 엔진을 들고 나온 건 같은 피아지오그룹 계열사인 아프릴리아의 기술력 덕분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 라이딩을 해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엔진 필링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12사도 순례길이 시작되는 대기점도나 소악도에 들어가려면 신안군 지도읍 송도항이나 압해읍 송공항으로 가서 카페리를 타야 한다. 일단 송도항으로 목적지를 잡았다. 서울 용산에서 출발해 430km 쯤 가야하는 곳이다. 출발 당일인 5월3일 봄비가 내렸다. 비가 잦아들길 기다려 이슬비로 바뀔 때쯤 출발했다. 저속에서부터 굵직한 박동이 '토크(최대토크 105Nm/6750rpm)빨'이 만만치 않다는 걸 느끼게 해줬다. 속도가 빨라지자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봄은 왔는데 봄이 아닌 듯한 날씨 때문에 차가운 바람이 온 몸을 파고 들었다. 이때 나를 구해준 것이 'V100 만델로'의 가변식 에어로다이내믹 시스템이었다. 연료통 양쪽으로 장착된 전자식 날개가 설정에 따라 자동으로 나와서 주행풍을 줄여주고, 전자식 '윈드실드'는 라이더가 버튼으로 조정하는 방식이었다. 'V100 만델로'는 '가변 에어로 윙'이 적용된 세계 최초의 모터사이클이라고 한다. 뭔가 특별한 바이크를 타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비에 젖은 길을 낯선 바이크로 달린 다는 것은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레인모드로 선택하고 10분 정도 달리자 이내 편안해졌다. 묵직한 느낌이면서도 브레이킹이 안정적이었다. 너무 칼같이 잡아주는 브레이크도 아니고, 내 의지와 달리 슬슬 밀리는 나약한 제동력도 아니었다. 233kg이나 되는 육중한 녀석이었지만 아주 적당한 느낌의 브레이크 성능 덕분에 라이딩이 점점 행복해졌다.

남쪽으로 갈수록 날이 개면서 도로도 말랐다. 급가속, 급제동을 해보고 와인딩 구간에서 바이크를 눕혀보기도 했다. 스포츠 모드, 투어 모드 등으로 세팅을 변경해 가면서 타는 재미도 쏠쏠했다. 6단기어에 최고출력 115마력(8700rpm)이라는 'V100 만델로'의 첫인상은 곰에 가까웠는데, 점점 근육질의 치타 느낌으로 바뀌고 있었다.

송도항에 도착해 마지막 배를 타고 병풍도로 들어갔다. 송도항에서는 병풍도를 통해 대기점도로 들어갈 수 있다. 서울 등 북쪽에서 차량을 이용해 들어가는 관광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항로라고 한다. 압해읍 송공항에서는 대기점도나 소악도쪽으로 연결된다. 이 배편도 카페리이지만 주로 차를 선착장에 세워두고 들어가서 도보 순례하는 관광객들이 이용한다. 병풍도는 가을에 맨드라미 축제로 유명한 곳이다. 마을 지붕을 모두 핑크에 가까운 붉은색 계통으로 칠했다. 맨드라미를 상징하는 색이라고 한다. 곳곳에 조성된 꽃밭이 예술이었다.

병풍도에서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로 가기 위해서는 노두길을 건너야 한다. 노두길은 갯벌에 돌을 쌓아 썰물 때 왕래할 수 있도록 만든길을 뜻한다. 징검다리라는 뜻의 남도사투리에서 나온 말이다. 노두길은 밀물이 되면 바다에 잠긴다. 대기점도로 들어가는 노둣길은 975m로 제법 길었다. 시속 30km 정도로 달리는데도 그 어느 라이딩 때 보다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상쾌함이 밀려왔다. 어차피 이곳은 스피드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감성이나 영성을 느끼러 오는 곳이다.

대기점도에는 민박집들이 10여개 있다. 병풍도에서 노두길을 건너면 옹기종기 민박집들이 모여 있는 게 보인다. 새롭게 단장한 게스트하우스도 있다. 민박집이라고 하지만 아주 깔끔하게 관리돼 있다. 민박집 마다 특유의 느낌을 살려 마당과 장식을 해놓아서 사진 찍기도 좋다.보통 작은 방에 5만원 숙박비를 받고, 식사는 1인당 1만원을 받는다. 석화무침, 시금치국, 생선, 파김치, 계란말이 등을 비롯해 푸짐한 한상은 눈과 입과 코까지 온갖 감각의 호사를 누리게 한다. 대부분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서 찾아오는 관광객, 아니 순례자들이 많아서인지 술을 찾는 사람들도 별로 없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밥을 먹고 노두길이 바닷물에 잠기는 걸 보니, 그 옛날 섬사람들의 팍팍한 삶이 조금은 공감이 됐다. 민박집 주인은 "예전에는 병풍도에 있는 교회에 간다고 갯벌을 1시간 정도 건너 다녔다"고 했다.


12사도 순례길은 '섬티아고 순례길'이라고도 불린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따온 말이다.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 딴섬 등 5개의 섬에 예수님의 제자 12사도의 흔적과 순교 정신을 담았다. 2019년 전라도가 '가고싶은 섬' 사업으로 노두길을 잇는 '기적의 순례길'을 만든 덕분에 생긴 명소다. 마을 주민들도 기꺼이 땅을 기증했다. 작업에 필요한 재료도 같이 날랐다고 한다. '섬티아고 순례길'은 평온한 마음과 치유,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어주는 영성 가득한 곳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다른 종교단체에서 "왜 기독교 색채의 이름을 붙였느냐"는 항의가 들어오는 바람에 지금은 사도의 이름과 함께 지혜의 집, 기쁨의 집 등 다른 이름이 쓰이고 있다. 안내도에 보면 순서대로 건강의 집(베드로), 생각하는 집(안드레아), 그리움의 집(큰 야고보), 생명평화의 집(요한), 행복의 집(필립), 감사의 집(바르톨로메오), 인연의 집(토마스), 기쁨의 집(마태오), 소원의 집(작은 야고보), 칭찬의 집(유다 타대오), 사랑의 집(시몬), 지혜의 집(가롯 유다)으로 표시 돼 있다. 12개의 독특한 기도 공간은 11명의 국내외 작가들 작품이다. 한국 작가 6명과 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 등 외국작가 5명이 함께 했다.

건강의 집(베드로)에서 옆에 있는 종을 치고 순례를 시작하고, 마지막 지혜의 집(가롯 유다)에서 종을 치고 순례를 마치는 게 기본 순서다. 하지만 지혜의 집은 썰물 때 직접 모래톱을 걸어서 건너야만 방문할 수 있기 때문에 물때에 맞춰 순서를 바꾸는 경우도 많다. '바다타임' 사이트에서 물때를 확인하거나 민박집에서 미리 물어보고 일정을 잡는 것이 좋다. 감사의 집은 호수 가운데 있어서 가까이 갈 수 없는 곳이다. 순례길 길이는 12km 쯤 된다. 송공항에서 들어오는 관광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대기점 선착장에는 전기자전거가 있다. 이걸 이용하면 조금은 빠르고 편하게 섬티아고 순례길을 마칠 수 있다. 어린 아이가 있거나 일행중에 몸이 다소 불편한 사람이 있는 경우는 차량으로 들어오는 걸 추천한다. 걸어서 돌 경우 4시간이 넘게 걸리기 때문에 만만치 않은 순례길이다. 마지막 가롯 유다의 집을 나와 소악도로 돌아오는 해변에 있는 최후의 만찬 벽화도 새로운 명물로 꼽힌다.

섬에 사는 사람들은 기독교인이 대다수라고 한다. '섬 선교의 어머니'로 불리는 문준경 전도사라는 분이 1932년 본격적인 선교활동을 하면서 복음을 전파한 덕분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소악교회 입구에 보면 작은 보따리와 검정 고무신이 놓여 있다. 문준경 전도사가 1년에 고무신 9켤레가 닳도록 섬들을 돌아다니며 전도했다는 것을 상징하는 전시물이다. 문준경 전도사는 1943년 신사참배 거부로 일본 경찰에 모진 고문을 당했고, 1950년 10월 북한군에 의해 증동리 백사장에서 순교했다.

섬사람들의 신앙생활이 궁금해 소악교회의 주일예배 현장을 찾았다. 인터넷에서 어렵게 찾은 정보에 따르면 10시 시작이었는데, 9시30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순례객들이 예배를 보고 물때와 배시간에 맞춰 순례를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고 한다. 어린 아이부터 연세 지긋한 어르신, 그리고 섬을 처음 찾은 이방인들까지 10여명이 함께 하는 시간은 도시의 여느 교회들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대기점도와 병풍도에도 교회가 있다.

다시 배를 타고 섬을 떠나기 위해 병풍도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작은 페리를 이용할 때 차량들은 후진으로 들어간다. 배안에서 차를 돌릴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하선할 때 편하다.후진으로 늘어선 차량들 앞에 'V100 만델로'를 세워 놓으니 다들 한마디씩 말을 건넨다. 빨간색 색상이 워낙 강렬해서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송도항 선착장에 내려 다시 남쪽으로 향했다. 무안을 지나 완도로 이어지는 길은 생각보다 좋다. 라이더들에게는 아름다운 풍경과 깨끗한 도로 상태가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곳이다. 라이더들이 전국 일주를 할때 해안을 따라 도는 '777코스'의 일부 이기도 하다. 7번국도와 77번 국도를 거치는 코스다.

'V100 만델로'는 거침이 없었다. 시승 바이크는 기본 모델이라 퀵시프트가 없었지만, 세계일주를 하는 게 아니라면 그리 부담스러울 것 같지 않았다.(상위 모델은 퀵시프트가 장착돼 있다.) 다만 중립에서 1단으로 변속할 때 덜컹하는 느낌이 거슬렸다. 실제 주행중 변속때는 아무 문제가 없다. 시트고 815mm는 높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시트 폭이 넓은 편이다. 175cm 정도 키라면 양발바닥이 지면에 다 닿기는 어렵다. 또 핸들 조향각이 일반 바이크에 비해 작은 편이다. 정지 상태에서 서서히 방향을 전환하려고 할 때 핸들이 생각보다 더 돌아가지 않아서 자칫 잘못하면 제꿍을 할 위험이 있다. 적응하기 전까지는 신경을 써야 한다. 바이크 옆쪽에 'V100' 표시를 보고는 시골 노인 한분이 "100cc 오토바이가 이렇게 크냐?"고 물어오셨다. 100주년 표시에 대한 오해였다. 이 바이크는 1042cc짜리다.
17L 용량의 탱크에 연비는 리터당 21km라고 한다. 실제로는 조금 못 미치는 듯했지만 큰 차이는 아니었다. 다만 90km 정도 갈 수 있다고 표시하던 계기판에 갑자기 주유경고등이 떠서 당황스럽게 했다. 물론 경고등이 뜨고도 50km 이상 갈 수 있겠지만, 심리적인 압박을 받지 않으려면 100km 정도 주행거리가 남았을 때 미리 연료를 보충하는 게 마음 편하다.

완도로 가서 노화도 가는 배를 타고 보길도를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완도여객터미널에는 노화도 가는 배가 없었다. 9km 정도 떨어진 화흥포항이 출항지였다. 부랴부랴 이동해서 겨우 배를 탔다. 노화도의 동천항에 내려 다리를 건넌 뒤 보길도를 돌았다. 윤선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세연정, 동천석실을 비롯해 공룡알해변, 송시열의 글씐바위 등 볼거리가 넘쳤다. 특히 세연정에서는 몇시간 멍하니 앉아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숙박을 하고 싶었으나 어디에도 숙소가 없었다. 허름한 여관, 민박까지 만실이었다. 결국 8시 밤배를 타고 완도로 나왔다. 축제가 열리는 완도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결국 밤길을 달려 자정쯤 영암에 있는 24시간 사우나 찜질방에서 누울 수 있었다. 'V100만델로'의 헤드라이트는 야간 라이딩때 어두컴컴한 지방도에서도 불안한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충분한 광량과 각도로 길을 안내했다.

다음날 오후 늦게 비가 온다는 예보에 서둘러 서울로 향했다. 새만금 방조제를 거쳐 복귀하는 코스로 잡았다. 두말할 것 없이 바이크 라이딩의 매력을 느끼기에 최고의 장소다. 중간중간 휴게소에 들어갈 때마다 다른 라이더들이 관심을 보인다. 흔히 보던 바이크가 아니기 때문에 이것저것 관심있게 물어봤다.
바이크를 타고 하는 섬여행은 특별했다. 특별한 바이크 'V100 만델로'와 함께 했기 때문에 더욱 특별했던 것 같다. 2025년 5월의 연휴는 평생의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게 분명하다.
/조정훈(모터칼럼니스트) tigercho333@hanmail.net, 사진=조정훈 제공, 모토구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