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 6천만원 된 '윌슨'.. 배구공까지 완벽했던 영화

양형석 2022. 8. 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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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대배우' 톰 행크스의 무인도 생존기 <캐스트 어웨이>

[양형석 기자]

사람들은 한 번쯤 친구나 지인들과 "만약 무인도에 표류한다면 어떤 물건을 가지고 가고 싶어?"라는 주제로 수다를 떨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만큼 무인도와 생존은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주제다. 과거 인기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도 '무인도 특집'이 인기리에 방송됐고 김병만 족장을 중심으로 오지에서의 생존기를 그린 <정글의 법칙>은 무려 10년 넘게 방송되면서 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이것이 예능의 범위를 벗어나 현실이 된다면 무인도에서의 표류만큼 상상하기 싫은 일도 드물다. 무인도에서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먹는 문제와 자는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고, 힘들게 누울 자리를 마련한다 해도 매일 밤 야생동물의 습격을 걱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없는 막연한 외로움이야말로 무인도 생활의 가장 힘든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기 때문에 힘든 무인도 생활 역시 소설 <로빈슨 크루소>나 영화 <김씨표류기>의 김씨(정재영 분)처럼 주어진 현실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백 투 더 퓨처> 시리즈와 <포레스트 검프>를 연출한 로버트 저메스키 감독이 2000년에 선보였던 <캐스트 어웨이> 역시 무인도에 표류한 한 남자를 통해 생존에 대한 인간의 의지를 잘 보여준 수작이다.
 
 <캐스트 어웨이>는 국내에서도 서울 73만 관객을 동원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 CJ엔터테인먼트
 
잭 니콜슨-멜 깁슨-톰 행크스의 상대역

1963년에 태어나 10대 시절부터 연기활동을 시작했던 헬렌 헌트는 연극과 영화, TV드라마를 넘나들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헬렌 헌트가 국내를 비롯한 세계 관객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진 작품은 1996년에 개봉해 세계적으로 4억 94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한 얀 드봉 감독의 재난영화 <트위스터>였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그리고 헌트는 이듬해 차기작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 대배우 잭 니콜슨을 만났다.

헌트는 '로맨틱 코미디는 멋지고 젊은 배우들의 전유물'이라는 공식을 깨버린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를 통해 잭 니콜슨과 함께 아카데미 남녀주연상을 휩쓸었다. 참고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잭 니콜슨과 헬렌 헌트 이후 한 작품에 출연한 남녀배우가 아카데미 주연상을 휩쓴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헌트에게는 물론 아카데미 역사에도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배우로서 터닝포인트를 만나야 할 중요한 시기에 잭 니콜슨이라는 대배우를 만나 한 단계 도약한 헌트는 2000년에도 2명의 대배우를 만났다. 로맨틱 코미디 <왓 위민 원트>에 함께 출연했던 멜 깁슨과 <캐스트 어웨이>에서 호흡을 맞춘 2년 연속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빛나는 당대 최고의 배우 톰 행크스였다. 물론 <캐스트 어웨이>에서 헌트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헌트는 섬세한 감정연기를 선보이며 척과 관객들의 감정을 흔들었다.

2004년 아직 신인 티를 벗지 못했던 스칼렛 요한슨과 함께 <굿 우먼>에 출연한 헌트는 2007년 직접 제작과 각본, 주연, 감독까지 맡은 <덴 쉬 파운드 미>를 통해 연출에 도전했다. 2012년에는 <세션 : 이 남자가 사랑하는 법>을 통해 '섹스 테라피스트'라는 이색직업(?)을 능청스럽게 연기하며 아카데미와 골든글러브 여우조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소재와 설정은 다소 자극적이지만 <세션: 이 남자가 사랑하는 법>은 결코 외설적인 영화가 아니다).

헌트는 2015년 두 번째 연출작 <라이드: 나에게로의 여행>을 통해 젊은 배우 브렌튼 스웨이츠와 모자연기를 펼쳤고 2018년 <미라클 시즌>에서는 리더를 잃고 의기소침한 팀을 살리려는 배구코치를 연기했다. 사실 국내에서는 이름만 들으면 얼굴과 출연작이 금방 떠오를 만큼 잘 알려진 스타배우는 아니지만 헌트는 출연하는 작품마다 믿음직한 연기로 관객들에게 높은 신뢰를 얻고 있는 '믿고 봐도 좋은' 배우다.

외롭고 힘든 무인도의 삶을 견디게 한 힘
 
 척 놀랜드가 지옥 같은 무인도 생활을 견딜 수 있었던 비결은 사랑하는 켈리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 CJ엔터테인먼트
 
2000년대 초반 충무로에서는 한창 주연으로 도약하는 배우가 특정영화의 서브주인공으로 출연할 경우 포스터와 엔딩 크레딧에 우정출연 또는 특별출연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사실 어느 정도 이름이 있는 주연급 배우들이 영화에서 분량이 많지 않은 역할로 출연하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출신의 헬렌 헌트는 <캐스트 어웨이>에서 기꺼이 분량이 크지 않은 켈리 역을 맡아 영화를 빛냈다.

실제로 <캐스트 어웨이>는 비행기 사고로 무인도에 표류하는 척 놀랜드(톰 행크스 분)의 생존기를 그린 작품이다. 초반부 비행기를 타기 전 척과 선물을 교환하는 장면에 잠시 등장하는 켈리는 후반부 척이 구조될 때까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 긴 공백 동안 켈리의 존재를 잊은 관객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척은 무인도에 갇혀 있는 동안 켈리가 선물한 회중시계를 보며 절망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힘들게 무인도에서 빠져 나와 극적으로 구조된 척 앞에 나타난 것은 켈리가 아닌 척의 치과 주치의이자 지금은 켈리의 남편이 된 제리(크리스 노스 분)였다. 척은 늦은 밤 켈리를 찾아가 회중시계를 돌려주며 작별 인사를 전하지만 켈리 역시 한 번도 척을 잊은 적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이미 남편과 아이가 있는 켈리가 자신과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척은 켈리가 탄 차를 켈리의 집 쪽으로 돌린다.

사실 <캐스트 어웨이>의 최대수혜자는 톰 행크스도, 헬렌 헌트도, 로버트 저메스키 감독도 아닌 영화의 제작지원을 해준 'F'운송회사였다. 이 운송회사의 로고는 영화 내내 등장하며 전 세계 관객들에게 간접광고를 해줬고 후반부에는 회사의 CEO가 직접 카메오 출연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 운송회사는 영화 개봉 후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높지 않았던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서 막대한 홍보효과를 누렸다.

최소한의 등장인물만 등장하는 영화 <캐스트 어웨이>는 90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져 세계적으로 4억 29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특히 톰 행크스는 <캐스트 어웨이>로 8편 연속이자 개인 통산 11번째 북미 1억 달러 흥행 기록을 세웠다(톰 행크스는 <토이스토리> 등 목소리 출연한 작품들을 포함해 총 21편의 북미흥행 1억 달러 흥행 영화를 보유하고 있다).

몸값 3억 6000만 원의 귀하신(?) 배구공
 
 척과 함께 무인도로 떠내려 온 배구공 윌슨은 척에게 하나 밖에 없는 친구이자 연인이었다.
ⓒ CJ엔터테인먼트
 
영화에서는 종종 생명이 없는 '소품'들이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아 캐릭터 상품으로 인기를 끄는 경우가 있다. < ET >의 자전거부터 <스타워즈>의 광선검, <매트릭스>의 빨간 약, 파란 약, <인셉션>의 펭이, <어벤저스>의 비브라늄 방패, 묠니르, 스톰 브레이커, 건틀렛 등이 대표적이다. <캐스트 어웨이>에서도 이 쟁쟁한 소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소품이 등장했다. 바로 척의 '애착인형'이자 유일한 친구였던 배구공 윌슨이다.

척과 함께 무인도로 떠내려 온 택배상자에 들어 있던 윌슨은 대화상대가 없었던 척의 유일한 친구였다. 일부 관객들은 <캐스트 어웨이>의 진정한 히로인은 헬렌 헌트가 아닌 윌슨이었다고 말할 정도. 실제로 척은 윌슨이 바다로 떠내려 갔을 때 마치 세상을 모두 잃은 사람처럼 오열했다. 참고로 영화 속에서 윌슨으로 쓰였던 배구공은 작년 영국의 한 경매사이트에서 무려 3억 6300만 원에 낙찰되며 여전히 '귀하신 몸'임을 인증했다.

켈리와 마지막 인사를 나눈 척은 무인도에 있으면서 끝내 뜯지 않았던 마지막 택배를 주소지에 전달한 후 사거리에서 어디로 갈지 고민한다. 이때 트럭을 몰고 베티나라는 여인이 나타나 4가지 방향의 길을 가르쳐 준 후 "행운을 빌어요, 카우보이"라는 말을 전한 후 유유히 사라진다. 척에게 새 출발에 대한 용기를 준 베티나를 연기했던 인물은 2018년1월 복막암으로 세상을 떠난 유명 컨트리 가수 고 래리 화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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