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끼리 싸울수도 있지”...데이트 폭력 피해자 죽음 내몬 경찰

박나은 기자(nasilver@mk.co.kr), 최예빈 기자(yb12@mk.co.kr) 2023. 5. 28. 18:4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금천 보복살인 부실대응 논란
데이트 폭력으로 신고했지만
연인간의 단순다툼으로 결론
가해자와 분리없이 귀가시켜
경찰서 나와 10분만에 피살
데이트 폭력으로 신고당해 경찰 조사를 받은 뒤 애인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A 씨가 26일 오후 경찰에 긴급체포된 후 서울 금천경찰서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서 발생한 30대 남성의 연인 살인 사건이 데이트폭력 신고에 불만을 가진 보복 범죄로 드러나면서 경찰의 소극적 대응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경찰이 피해자·피의자 분리조치와 피해자 보호 조치 등을 미흡하게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남부지법은 28일 오후 데이트 폭력으로 신고당해 경찰 조사를 받은 직후 연인을 살해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살인 혐의를 받는 피의자 김모 씨(33)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을 진행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26일 오전 서울 금천구 시흥동의 한 상가 지하주차장에서 연인 사이인 A씨(47)를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김씨는 범행 직전에 A씨의 데이트 폭력 신고로 경찰 조사를 받고 나와 A씨를 찾아가 미리 준비한 흉기로 살해했고, 범행 직후에는 A씨를 차에 태우고 도주했다가 같은 날 오후 경기 파주시 한 공터에서 긴급체포됐다.

김 씨가 자신을 경찰에 신고한 연인 A씨에게 보복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것이 경찰 조사를 통해 드러나면서 경찰이 피해자 보호조치에 소홀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이별 통보를 받은 뒤 재회를 요구하며 피해자 근처에 머물려 폭력을 저질렀지만 경찰이 이를 단순한 연인 간 다툼으로 판단해 접근금지 조치와 같은 피해자 보호조치를 하지 않은 것이다.

현행법상 가정폭력과 스토킹 범죄, 아동학대 등에서 접근금지 조치를 내릴 수 있지만 연인 사이 데이트 폭력에 대해서는 명확한 규정이 없다. 다만 경찰이 김 씨의 행위를 스토킹 범죄나 가정폭력으로 보는 등의 적극적 대처가 있었다면 비극을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미 스토킹처벌법 등 법률이 마련된 상황에서 이를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했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단순 연인 간 다툼이라고 안일하게 판단했기 때문에 벌어진 비극”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피해자가 피의자의 처벌을 원치 않았고, 폭행이 경미해 임의동행한 김 씨의 귀가를 막을 수단이 없었으며, 피해자에게도 스마트워치와 임시숙소를 권유했지만 거절당해 보호가 어려웠고, 피해자의 신고 내용만으로는 스토킹 범죄나 가정폭력 사건으로 판단하기 힘들었다고 해명했다. 또 가정폭력 사건으로 보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피해자가 ‘김씨가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씩 집에서 자고 갔다’고 진술해 사실혼 관계라고 판단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또 범죄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보복당할 우려가 있는 경우 경찰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범죄 피해자 위험성 판단 체크리스트’ 검사를 하는데, 이 검사 결과에서 보복 위험성이 낮게 나와 경찰이 잘못된 판단을 하는 데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매년 데이트폭력이 늘어나는 추세 속에서 경찰이 신고가 들어왔을 때 더 적극적으로 사건을 파악해 대응해 나가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로 경찰청에 따르면 데이트폭력으로 형사 입건된 인원은 2020년 8982명에서 2022년 1만2841명으로 크게 늘었다. 112 신고 건수는 2020년 1만8945건에서 2021년 5만7297건, 2022년 7만518건, 2023년 5월15일까지 2만7216건으로 매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위험성 판단 체크 허점이나 데이트 폭력에 대한 명확한 접근금지 조치 규정이 없는 제도적 사각지대도 분명 있지만 현장에서 판단하는 경찰들의 인식 개선도 함께 가야 한다”며 “이런 사안들에 대해 앞으로는 좀 더 세심하게 따져볼 수 있게끔 경찰 교육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