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장례 치르고 떠난 그 선수, 태풍 뚫고 일본서 우승까지

박현경(26·메디힐)이 29일 일본 지바현 카멜리아힐스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JLPGA투어 어스 몬다민컵에서 우승하며 일본 무대 첫승을 신고했다.

최종합계 12언더파 276타를 기록한 그는 공동 2위 고바야시 미쓰유키, 이나가키 나나코에 1타 차로 앞서며 정상에 올랐다.

총상금 4억엔(약 38억1300만원) 규모의 이 대회에서 박현경은 우승상금 7200만엔(약 6억8000만원)을 손에 넣었는데, 정작 이번 우승을 더 특별하게 만든 건 스코어가 아니라 대회 출전을 앞두고 겪은 가족의 부고였다.

이번 대회는 원래 28일 끝나는 일정이었으나, 26일과 27일 태풍으로 2·3라운드가 열리지 못해 일정이 통째로 밀렸다.

이 때문에 29일 잔여 라운드와 최종라운드가 한꺼번에 진행되는 54홀 스트로크 대회로 전환됐고, 월요일 최종라운드 개최는 2024년 이후 사상 다섯 번째 사례가 됐다.

박현경에게 이번이 JLPGA투어 네 번째 도전이었다.

지난해 월드 레이디스 챔피언십 살롱파스컵에 처음 출전해 8위에 올랐고, 이후 소니 일본여자프로골프 선수권대회와 V포인트·SMBC 레이디스에서는 14위에 머물렀다.

KLPGA투어에서는 지난해 5월 E1 채리티 오픈에서 통산 8승째를 따낸 뒤로 좀처럼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한 상태였다.

올 시즌 12개 대회에 출전해 10차례 컷오프를 통과했지만, 4월 덕신EPC 챔피언십과 5월 NH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는 모두 준우승에 머물렀다.

제40회 한국여자오픈에서는 거리측정기 사용으로 실격당하는 불운까지 겹쳤다.

흐름을 바꿀 계기가 필요했던 시점에, 지난 20일 KLPGA투어 인카금융 더 헤븐 마스터즈 대회 기간 중 조모상을 당하면서 박현경은 무거운 마음으로 발인을 마친 뒤 곧바로 일본으로 향했다.

공동 선두로 최종라운드에 나선 박현경은 버디 5개와 보기 1개를 묶어 4언더파 68타를 작성, 최종합계 12언더파 276타로 경기를 마쳤다.

2위 그룹인 고바야시 미쓰유키와 이나가키 나나코는 11언더파 277타로 박현경에 1타 뒤졌다.

같은 대회에 출전한 신지애는 4라운드 4언더파 68타를 더해 10언더파 278타로 단독 4위에 올랐고, KLPGA투어 통산 20승의 박민지는 최종라운드에서만 5타를 줄여 공동 5위(9언더파 279타)를 기록했다.

고지원도 7언더파 281타로 공동 9위에 올라, 이번 대회 톱10에는 한국 선수 네 명이 이름을 올렸다.

박현경은 우승 직후 "월요일에 우승한 건 개인적으로도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라며 함께 경기한 선수들에게 고마움을 전했고, "할머니 생각에 울컥했다"는 소감과 함께 "좋아하는 일본에서 9번째 우승을 차지해 기쁘다"고 밝혔다.

이번 우승이 갖는 의미는 단순히 일본 무대 첫승이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올 시즌 내내 두 차례 준우승과 실격이라는 기복을 겪었던 박현경에게는, 우승 공백을 끊어낸 결과라는 점에서 KLPGA투어 복귀 이후 흐름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거리측정기 실격이라는 이례적인 사고와 조모상이라는 개인적 상실이 한 달 사이 연이어 닥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우승은 경기력 자체보다 심리적 회복력이 더 크게 작용한 결과로 볼 여지가 있다.

일본 무대 적응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네 번째 도전 만에 거둔 첫승이라는 점은, 8위-14위-14위로 이어진 이전 세 차례 성적이 단순한 운이 아니라 점진적인 적응 과정이었다음을 보여준다.

박현경이 현지에서 외모와 실력으로 이미 인기를 모으고 있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이번 우승을 계기로 일본 무대 진출 확대 여부를 본격적으로 고민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다만 KLPGA투어와 JLPGA투어를 병행하는 선수들의 경우 일정 조율과 체력 관리 부담이 동시에 커진다는 점에서, 이번 우승이 곧바로 해외 진출 확정으로 이어질지는 별개의 변수로 남는다.

신지애·박민지·고지원까지 톱10에 함께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은, 이번 결과가 박현경 개인의 성과를 넘어 한국 선수들의 JLPGA투어 경쟁력을 다시 확인시켜준 대목이기도 하다.

박현경은 이번 우승을 발판으로 KLPGA투어에서의 우승 갈증도 풀어낼 수 있을까.

일본 무대 진출 확대 여부와 함께, 그의 다음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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